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Apr 05. 2023

포항에서 경주까지

23.01.21(토)

명절 연휴에도 축구를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축구를 하고 왔다. 축구를 하고 오자마자 씻고 준비를 했다. 오늘은 포항에 사는 아내의 친구 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막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을 정한 게 아니라 ‘그냥 그쯤’ 정도로 약속을 해서 그랬는지 준비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듯했다.


날씨가 참 좋았다. 동해 바다를 보며 가는 길이었는데 연신 감탄이 나왔다. 여전히 어색하면서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바다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게.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난 자연이 가까운 곳에서 자랐어’라고 말하는 게 자연스러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서윤이는 가는 길에 잠들었다. 유모차로 옮기면 조금 더 잘 법한 시간이라 도착해서 유모차로 옮겼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유모차가 들썩거렸다. 혹시 모르니 숨을 죽이고 기다려 봤지만 들썩거림은 더 커졌다.


“소윤아. 한 번 봐봐. 깼어?”

“네. 완전히 깼어여. 눈을 말똥말똥하게 떴어요”


아내의 친구 가족은 자녀가 둘이다. 여덟 살 딸, 다섯 살 아들. 엄청 자주 보는 건 아니어도 만날 때마다 잘 놀았다. 이사 온 뒤로는 제법 자주 만나기도 했고. 우리가 간 건 처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오랜만의 풍경이었을 거다. 집 곳곳에 가득한 장난감과 여러 놀거리들. 게다가 집에서는 도통 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실제로 온갖 장난감을 비롯해서 찰흙놀이도 했다. 마치 찰흙카페(라는 건 없겠지만)에 온 것처럼, 자유분방하게. 시간과 공간과 양의 제약을 받지 않고.


가자마자 점심을 먹었다.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식탁에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놓고 바로바로 구워서 먹었다. 엄청 먹었다. 아이들은 놀 욕심에 조금 먹고는 일어났다. 소윤이는 더 먹고 싶은 눈치였는데 다들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니 더 먹지 않고 일어났다. 나와 아내가 엄청 먹었다. 볶음밥까지 알차게 먹었다. 가기 전에 ‘고기를 너무 많이 산 거 아니냐’는 아내와 나의 우려가 민망했다.


자녀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내 친구의 둘째와 서윤이만 거실에서 놀았다. 아마도 놀이에 방해가 되니 다소 배척당한 듯했다. 둘이 통하는 게 있는지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오래 놀았다. 자기들만의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면서.


“00이 오빠. 끄까? 끄까?”

“아니이. 켜어”

“어. 알아떠”


아내들은 잠시 커피를 사러 나갔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했다. 한 세 번 정도는 왔다 갔다 할 만한 시간이 지나고 돌아왔다. 서윤이는 그 사이 여러 가지 허용되지 않은 간식을 많이 먹었다. 아내가 있었다면 더 강력하게 통제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줬더라도 매우 극소량을 줬거나. 난 그냥 먹으라고 했다. 서윤이는 마구 먹었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서윤이도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보다 더 풀어지는 날이었다. 아내들은 동네를 좀 걷다가 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했다. 날씨도 풍경도. 아이들을 데리고 잠깐 나갔다 와도 좋겠다면서, 상황을 보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자녀들이 방에서 노는 동안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배가 꺼질 틈이 없었다. 여러 과일이나 간식이 계속 제공됐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에 나갈 만한 시간을 놓쳤다. 중간에 한 번 나갈까 싶었는데 집에서 노는 게 너무 재밌었는지 다들 반응이 별로였다.


저녁도 대접 받았다. 아이들은 유부초밥, 어른들은 라면.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배가 부른 상태라서 양은 매우 조금이었는데, 아이들은 예상을 빗나갔다. 의외로 엄청 잘 먹었다. 오히려 부족해 보였다. 어른들은 라면을 두 개 끓였다. 아내들은 안 먹었으니 결국 남편들이 하나씩 먹은 셈이었다.


날이 깜깜해졌다. 집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는데 아내 친구의 가족도 함께 나간다고 했다. 경주에 잠깐 들러서 바람을 쐬기로 했다. 경주까지 가는 길이 힘겨웠다. 너무 졸려서 고생했다. 경주에 도착해서 밤바람을 맞으니 잠이 달아났다. 엄청 춥기는 했지만 너무 상쾌했다. 안압지를 빠르게 한 바퀴 돌았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태웠고, 나머지 자녀들은 열심히 뛰어다녔다(뛰어다니려고 하는 걸 통제하느라 정신이 없기는 했다). 생각보다 엄청 춥기는 했다. 날씨가 춥기도 했고 시간도 늦어서 엄청 오래 머물 상황은 아니었다.


주차장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집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서윤이는 잠들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깬 채로 왔다.


“소윤아. 오늘 뭐가 제일 좋았어?"

“오늘이여? 음, 찰흙 한 거?”

“시윤이는 뭐가 제일 좋았어?”

“음, 저는 경주 산책한 거”


내가 봐도 그래 보였다. 소윤이는 절제 없는 찰흙놀이로 쌓인 욕구를 푼 듯했고, 나처럼 경주까지 가는 길에 거의 잠들 뻔했던 시윤이는 내리니 기운을 차리고 엄청 뛰어다녔다.


아내는 엄청 피곤해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씻는 동안 아내도 씻으라고 했다. 아내는 배도 살살 아프다고 했다. 평소에 그렇게 많이 안 먹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일찌감치 잘 준비를 마친 아내도 바로 침대에 누웠다. 아내는 배에 핫팩을 올려달라고 했다. 아내는 일찍 잠들지는 않았다. 연휴와 남편의 조화로 인한 마음의 평화 덕분에 피곤도 이겨낸 게 아닌가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에, 우리끼리 명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