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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Apr 05. 2023

우리도 어디든 가자

23.01.22(주일)

어제도 자기 전에 소윤이에게 부탁을 했다.


“소윤아. 내일 아침에 엄마나 아빠가 여덟 시까지 안 일어나면 좀 깨워 줘”


소윤이는 충실하게 수행했다. 사실 소윤이가 깨우기 직전에 눈을 뜨긴 했다. 안 그래도 바쁜 주일 아침인데 요즘은 아내와 내가 찬양단을 해서 더 바빠졌다. 한 시간을 일찍 가야 한다. 자녀들이 매 주일, 아니 수시로 듣는 말이 있다.


“얘들아. 조금 부지런히 먹자. 시간이 별로 없어”


도대체 시간이 넉넉한 상황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을 품어도 할 말이 없다. 착한 자녀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아침을 먹고 각자의 준비를 했다. 소윤이는 거의 95% 이상, 시윤이는 60% 이상 스스로 준비가 가능하다. 스스로 준비하는 걸 넘어서 나를 도와줄 때도 많다. 특히 소윤이는 언제나 의지하는 존재다.


“소윤아. 준비 다 하면 서윤이 좀 챙겨 줘”

“아빠. 옷 뭐 입혀여?”

“글쎄. 소윤이가 적당하게 골라 봐”


새삼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걸 느낀다.


어제 미리 육수를 끓였다. 우리 가족끼리 보내는 명절이지만, 그래도 설이니 떡국은 먹어야지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주일 아침에 다 함께 둘러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서윤이는 오늘도 아동부 예배에 안 가고 우리(아내와 나)와 함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했다. 잠깐 고민하는 듯했지만 역시나 선택은 변함이 없었다. 아내와 내가 찬양단으로 선 첫 번째 예배 때는 앞 쪽에 앉혔는데, 잘 앉아 있다가 어느 장로님이 아는 척을 하자 울면서 앞으로 나왔다. 두 번째 예배였던 지난 주에는 아내가 없었다. 예배당 뒤쪽에 혼자 앉혔는데 마침 K의 아내가 서윤이를 맡아줬다. 서윤이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K의 아내 정도면 아마 가족 다음으로 친근하게 느낄 거다. 덕분에 아무런 문제 없이 반주를 했다.


오늘은 어떻게 될 지 궁금했다. 지난 주에 K의 아내가 옆에 앉기 전에도 혼자 잘 앉아 있기는 했다. 오히려 엄마가 아예 없다는 걸 아니까 그랬을지도 모르고 엄마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그랬을지도 모르고. 서윤이에게 설명은 충분히 했다. 서윤이는 얼마든지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서윤이는 잘 앉아 있었다. 찬양하는 엄마와 드럼 치는 아빠를 보며 잘 웃기도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서윤이에게 보내던 시선을 거뒀는데, 갑자기 서윤이가 울면서 예배당 앞으로 나왔다. 정확히는 아내를 향해 걸어왔다. 울음을 잔뜩 머금고. 나중에 들어 보니 사모님께서 서윤이에게 아는 척도 하고 과자도 주시고 그랬는데, 서윤이는 오히려 그게 무서웠나 보다. 사모님 정도면 충분히 친근하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사모님도 많이 당황하셨다고 했다. 아무튼 아내는 오늘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서윤이를 안고 찬양을 불렀다.


우리 가족끼리 있거나 우리처럼 부모님께 가지 않은 지인의 가족을 만날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명절 기분’을 오늘 많이 느꼈다. 예배가 끝나고 고향이나 부모님이 계신 곳에 간다는 분들이 많았다. 오늘에서야 ‘명절은 명절이구나’하는 기분을 느꼈다. 부러운 건 아니었지만 ‘아, 나도 누군가 만나러 가고 싶다’ 정도의 느낌을 강하게 느꼈다. 물론 딱히 만날 사람은 없었지만.


교회의 점심 음식도 떡국이었다. 아침에도 떡국을 먹었으니 지겨울 법도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만든 떡국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인지 소윤이는 이미 세 그릇을 먹었다고 했다. 맛있게 먹은 것도 모자라서 육수와 떡을 잔뜩 받아오기도 했다. 교회에서 싸 주는 음식은 너무 감사하고 든든하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에게 탄약이 가득 찬 탄창을 챙겨주는 것처럼. 한 주를 살아갈 무기를 제공받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건 아내가 더 여실히 느끼겠지만.


집으로 가기가 싫었다. 다들 어디를 간다고 하니 우리도 어딘가를 가고 싶었다. 그래 봐야 카페에 가거나 산책을 하는 게 전부였다. 명절 연휴라 많은 카페가 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평소에 우리가 즐겨 찾는 카페는 거의 다 장사를 하고 있었다. 시내로 나갈 건지, 동네 근처에 머물 건지 고민을 하다가 동네에 머물기로 했다. 동네에서도 여러 곳의 후보지가 있었는데, 아내는 디저트가 맛있는 카페를 선택했다.


가기 전에 잠시 집에 들렀을 때, 아내가 그림그리기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왔다. 자녀들의 카페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었다. 서윤이는 카페에 가는 길에 잠들었 아니 재웠다.


“서윤아. 지금 자. 그래야 이따 카페 가서 놀지”

“아빠아. 저 안 졸려어어”


5분 만에 잠들었다. 아주 곤히.


카페에 가서 커피와 프렌치 토스트를 주문했다. 언제나 그렇듯 눈 깜짝 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보통은 먹을 게 소진되면 카페 체류 가능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지만 오늘은 아내의 준비 덕분에 많이 연장됐다. 아이들은 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며, 엄마와 아빠가 커피를 음미할 시간을 허용했다. 서윤이는 충분히 자고 일어났다. 자기만 빼고 무언가 먹은 흔적을 발견하면 분명히 자기도 달라고 했을 거다. 그러기 전에 미리 서윤이가 먹을 만한 걸 샀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에게 선심을 쓰듯 조금씩 나눠주고 당당하게 홀로 즐겼다.


바닷가 산책도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는 바다인데, 볼 때마다 좋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나와 비슷해 보였다. 좋은 풍경과 날씨를 연료로 삼고 꽤 걸었다. 한참 재미있게 걷다가 마지막 즈음에 시윤이가 장난을 쳤다. 벤치에 앉더니 자는 척을 했다. 우리(아내와 나와 소윤이)는 바로 호응했다.


“시윤이 잠들었나 보다. 우리끼리 가자”


한참을 걸어가도 쫓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눈을 감고 아예 살피지도 않는 듯했다. 속으로 ‘뭐지. 시윤이’라고 생각하며 몰래 시윤이가 있는 쪽으로 돌아가서 안 보이는 곳에 숨었다. 시윤이는 그 뒤로도 그대로 앉아서 자는 척을 했다. 아내와 소윤이, 서윤이는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멀어졌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시윤이가 아내와 소윤이, 서윤이와의 거리가 꽤 멀어졌다는 걸 실감했는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표정은 조금씩 일그러졌다. 난 숨겼던 몸을 드러내며 시윤이를 불렀다.


“시윤아. 아빠 여기 있지롱”

“으아아아아아아악”


예상했던 반응하고 조금 달랐다. 시윤이는 울음을 넘어서 약간의 분노와 짜증을 표출하며 나에게 달려왔다. 시윤이를 달램과 동시에 이성의 끈을 놓지 않도록 약간은 단호한 어조로 말하기도 했다.


“시윤아. 짜증내지마. 소리지르지 말고. 많이 놀랐어?”

“으아아아아아악”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시윤이가 이런 얘기를 했다.

“왜 안 와아아아아아아”


장난은 네가 먼저 시작했고, 안 온 게 아니라 아빠는 아까부터 너의 곁에서 너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얘기하며 무분별한 짜증과 분노의 표출은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확대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시윤이의 성향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시윤이는 ‘와 주는 걸 바라는 자녀’다. 멀어지면 자기가 먼저 뛰면 되는데 끝까지 버티고 와 주기를 기다리는 녀석이다. 그러고 보니 평소(혹은 평일) 시윤이가 아내에게 요구하는 대부분의 사항은 ‘나에게 오라’였다. 울 때도, 짜증이 날 때도, 자다 깼을 때도. 자기가 자초한 일이고 상대의 잘못은 조금도 없는 일이라도, 시윤이는 자기에게 와 주기를 바라는 거다.


아무튼 시윤이는 금방 평정심을 찾았다. 아내는


“여보가 있어서 그런 거야. 평소 같았으면 한참 동안 난리났을 걸”


이라며 평소와 다른 시윤이의 모습을 은근하게 고발(?)했다.


아내는 오랜만에 자유부인의 시간을 가졌다. 사실 놀기 위한 시간은 아니었다. 오늘까지 써야 하는 글이 있었는데 그걸 쓰려고, 조금 더 집중해서 쓰려고 카페에 갔다. 자녀들이 눕기 전에 나가긴 했지만 씻기만 하면 될 때까지 있었고, 카페가 열 시면 문을 닫으니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자녀들은 어차피 엄마와 뭘 할 만한 시간도 아니고 그저 자는 것만, 그것도 이제 엄마가 재워주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나가는 걸 아쉬워했다.


자유부인에서 육아부인으로 돌아온 아내와 영화를 봤다. 내일도 쉬는 날이라는 해방감과 안도감이 가득한, 편안한 밤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매우 늦은 시간에 자려고 하는 찰나에 서윤이가 깼다. 영화를 볼 때도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긴 했다. 정량적으로 비교를 한 건 아니지만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소리나 횟수나. 아니나 다를까 열이 좀 있었다. 조금이 아니라 꽤 높았다. 39도가 넘었다. 바로 해열제를 먹였다. 소윤이나 시윤이는 해열제를 웬만해서는 안 먹였는데 서윤이는 경련 사건 후로 모든 일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편이다.


약을 먹은 서윤이는 여전히 불편해 했다. 아프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했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했다. 아내가 서윤이와 함께 안방 바닥에 눕고 난 침대에 누웠다. 막 잠이 들려고 했는데 서윤이의 ‘켁켁’하는 소리가 들렸다. 튕기듯 몸을 일으켰는데 이미 서윤이가 토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바로 옆에서 돕고 있었고. 꽤 토했다. 저녁 먹은 걸 그대로 넘긴 건 아니었고 어느 정도 소화가 된 게 넘어왔다. 서윤이는 토를 하고 나서도 힘들어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남은 연휴는 다시 간병인으로 지내야 할 듯한 느낌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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