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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y 29. 2023

어쩌다 보니 내일도 휴일

23.01.24(화)

서윤이가 아침에 갑자기 기운이 없었다. 조금 기운이 없는 게 아니고 아내와 내가 모두 이상함을 감지했을 정도로, 평소와 많이 달랐다. 축 늘어지고 아내나 내 옆에 붙어서 손가락만 빨았다. 글로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평소와 다르게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있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손을 부들부들 떨기도 했다. 또 어디가 아픈 건가 싶었는데 다행히 밥은 잘 먹었다. 밥을 먹고 10-20분 정도 지나자 서윤이가 괜찮아졌다. 그러고 보니 공복 시간이 길어졌을 때의 시윤이 모습과 비슷했다. 어제 저녁도 많이 먹지 않았고 오늘 아침도 평소에 비하면 좀 늦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기운이 없었나 보다. 그 뒤로는 계속 멀쩡했다.


사실 아침이 조금 늦은 게 아니라 많이 늦기는 했다. 이유는 당연히, 아내와 나의 늦잠이었다. 소윤이가 프렌치 토스트를 해 달라고 해서 아침에 빵을 사러 나갔다 왔다. 서윤이는 밥을 먹여야 할 거 같아서 먼저 따로 밥을 먹였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토스트를 차려 준 시간이 열 한 시가 넘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싶다. 연휴 기간 내내 이랬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자녀들이 아침에 좀 덜 깨우는 듯하다. 아내 혼자 있는 평일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주말이나 휴일에 적극적(?)으로 깨우는 건 거의 없다. 여전히 일찍 일어나서 소란을 떨긴 하지만, 이것도 예전에 비하면 엄청 자유로워졌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오늘처럼 늦게 일어나도 배가 고프니 얼른 밥을 차려 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언제나 그렇듯, 평일의 양상은 다를지도 모른다.


K네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오후의 끝자락 즈음에 집에서 나왔다. 날씨가 어마어마하게 추웠다. 잠깐만 밖에 있어도 날카로운 추위가 온 몸을 파고들었다. 어차피 집 안에만 있을 거라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오히려 점퍼 안에는 반팔을 입고 갔다. 집에 있으면 더우니까.


함께 저녁을 먹고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눴고 자녀들은 영화를 봤다. 소윤이가 책으로는 몇 번이나 읽은 ‘샬롯의 거미줄’을 봤다. 소윤이는 아주 어렸을 때 영화관에 갔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게 소윤이 인생의 유일한 (만화)영화였다. 시윤이는 아예 처음이었다. 자녀들 모두 집중해서, 무척 재밌어 하면서 봤다. 조금만 무서운 장면이 나와도 기겁을 하면서 못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또 한 번 자녀들의 성장을 체감했다.


자녀들이 너무 평화롭고 조용해서, 부모들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평화롭고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게 맞나’하는 생각을, 모두 했다.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자녀들에게도 나눠줬다. 매우 조금씩. 자녀들의 입이 많다 보니 뭐가 됐든 양껏 먹이려면 적지 않은, 아니 매우 많은 양이 필요하다.


“엄마. 더 없어여?”

“어. 오늘은 그것만 먹어요”


매번 ‘오늘은’이긴 하다. 그렇다고 불쌍하지는 않다. 잘 먹는다. 더 할 나위 없이. 매번 오히려 아쉽지 않을 정도로 풍성히 먹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꽤 늦게 집에 왔다. 원래대로라면 내일부터 일을 해야 하지만, 내일도 쉬게 되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는데 나의 아내와 K의 아내가 ‘내일부터 다시 일상이라니’라는 아쉬움을 강력하게 표현했다. 나와 K의 마음 속에도 ‘내일부터 출근이라니’라는 아쉬움이 진했고. 결국 내일까지 일을 쉬기로 했다. 내일도 만나서 놀러 가기로 했다. 남편들보다 아내들이 더 좋아했다.


“내일 진짜 쉬는 건가? 믿기지가 않네”


모두의 욕구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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