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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y 29. 2023

또 만났네 만났어

23.01.25(수)

원래 우리가 K네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함께 놀러 나가기로 했는데, K네 식구가 우리 집으로 왔다. 어제 한파의 여파로 K네 집에 물이 안 나온다고 했다. 아마도 어딘가 얼었을 거다. K네 식구는 우리 집에 와서 씻고 점심을 먹었다. 이럴 때 매우 가깝게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1년에 두어 번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반가움과 아쉬움을 나누던 사이에서, 의식주를 공유할 만큼 가까이 살게 되다니. 실감이 나면서도 믿기지가 않고 그렇다.


원래 좀 멀리(차로 한 시간) 가려고 했는데 점심을 먹고 어영부영 하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늦어졌다. 그냥 동네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할 지 잠시 고민했지만, 원래 가려던 곳에 가기로 했다. 아마 다들 늘어지는 시간이라 몸에서 다소 버겁다는 신호를 잠시 보낸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쥐약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운전을 하다가 도저히 버티기 어려워서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첫 번째 목적지는 바닷가의 한 카페였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왔는데, 그때는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거의 바로 돌아왔다. 그때의 아쉬움을 만회하고자 다시 방문했다. 엄청 좋았다. 오히려 처음 갔을 때보다 더 좋았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자녀들은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앉혔다. 커피와 함께 빵도 샀는데, 자녀들에게도 나눠줬다. 어제처럼 매우 조금씩. 어제의 데자뷔처럼


“엄마. 이거 더 먹고 싶어여”

“아, 아니야. 오늘은 그것만 먹는 거예요”


라는 대화가 오갔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미안하지 않았다. 그런 맛있는 빵을 먹는다는 자체가 감사할 일이니까. 어른들이라고 자녀들보다 엄청 많이 먹고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서윤이는 어른들이 앉은 자리에 함께 앉았다. 덕분에 언니와 오빠들 보다 빵을 조금 더 얻어먹었다.


가만히 보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자녀와 함께 오신 몇 분을 제외하면 우리가 월등히 나이가 많아 보였다. 우리처럼 자녀를 데리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짧은 상의와 펑퍼짐한 하의를 입은 사람이 많이 보였다. 그에 비해 우리는 매우 표준규격화 된 옷차림이었다. 하긴 자녀도 보통 자녀가 아니고, 여섯 씩이나 데리고 다니니 그것만으로도 이질적이긴 했다.


카페에서 나와서는 백화점으로 갔다. 카페에서 30분 정도 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밖에서 놀기에는 날이 너무 추웠다. 한 공간에서 밥도 먹고 적당히 시간을 보내려고 하니 떠오른 곳이 거기였다. 도착하자마자 밥부터 먹었다. 식당가가 모인 층에 가서 가게마다 파는 음식을 살펴봤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음식이야 종류별로 다양했는데, 가격이 다소 비쌌다. 간식이야 ‘오늘은 그것만’을 얘기하며 줄일 수 있어도, 끼니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지불한 값만큼 맛이 있는지도 보장이 안 됐고.


지하의 푸드코트로 이동했다. 거기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아내들에게 음식 선택의 전권을 넘겼다. 나와 K는 자녀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렸다. 푸드코트의 특성상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꽤나 정신이 없기는 했다. 아내들은 돈까스와 텐동, 칼칼한 수제비를 사람 수에 맞춰 적절히 사 왔다. 나와 K가 각각 자기 집의 막내들 옆에 앉아서 밥을 먹이며 먹었다. 서윤이는 보통 알아서 먹지만, 오늘은 음식이 카레인지라 먹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온 사방에 낭자한 카레 자국을 상상하니 자연스레 먹여주게 됐다. 서윤이를 챙기느라 좀 바쁘긴 했지만, 환경과 인원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제법 무난하게 밥을 먹은 셈이었다.


K의 첫째는 서점에 가고 싶어 했다. 거기서 뭔가 하고 싶었던 게 있었는지 아니면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였는지 꼭 가고 싶어 했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백화점으로 오기 전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지만 밥을 먹으니 또 커피 생각이 났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마감이 여덟 시라고 했다. 카페의 마감 시간이 아닌 백화점 전체의 마감 시간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게 일곱 시 오십 분이었다. K의 첫째가 매우 서운해 했다. 거의 울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가 펄쩍 뛰어 오르며 아쉬워 했다. 괜찮은가 싶었던 소윤이도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의 품에 파묻혀 울었다.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울음은 아니었고, 정말 너무 아쉬워서 우는 거였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함께 즐겁게 보낸 시간을 떠올려 봐라. 얼마나 행복하고 좋았냐’는 위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건 소윤이도 K의 첫째도 모르는 게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아쉬울 따름인 거다.


눈물의 이별을 마치고 차에 탔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내가 K의 아내와 통화를 했다. 나에게도 통화 내용을 알려줬다.


“00가 집에 가서 물 나오는지 확인해 보고 안 나오면 우리 집에서 씻고 잔다고”


뒤에서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도청 아니 경청하던 소윤이가 얘기했다.


“제발. 물 안 나왔으면 좋겠다”


너무나 솔직한, 자기 마음의 표현이었다. 사실 소윤이의 바람대로 될 가능성이 크긴 했다. 기온은 여전히 영하였고, 언 수도관이 녹을 만한 날씨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K의 식구는 다시 우리집으로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누구보다 좋아했다. 함께 뭘 하는 것도 아니었다. K네 식구가 오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K네 식구가 오면 인사만 하고 바로 자야 했다. 같이 자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좋아했다.


어른들에게도 갑작스럽게 생긴 만남이었다. 자주(매우 자주) 보지만, 밤에 애들 재우고 나누는 수다의 매력이 따로 있다. 긴 연휴를 마치고, 내일은 일을 하러 나가야 했는데 대화의 재미를 참지 못하고 무려 세 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마저도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흐른 것을 아쉬워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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