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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05. 2023

우리 아빠는 조는 사람이었어

23.01.31(화)

저녁에 파스타를 먹기로 했다. 아내가 파스타를 만들기 위한 재료 손질을 미리 해 놨다. 내가 파스타를 만드는 동안 아내는 소윤이와 함께 우체국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소윤이가 뭘 보낼 게 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시윤이가 아내에게 얘기했다.


“엄마. 저도 갈래여”

“시윤아. 너 아까는 가기 싫다면서”

“저도 갈래여”

“아까는 가기 싫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누나랑 갔다 온다고. 그리고 어차피 우체국에 갔다가 바로 올 거야. 엄청 금방”


시윤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의 말로 유추해 보건대 아마 낮에 우체국을 가자고 했을 때는 시윤이가 가기 싫다면서 좀 짜증을 냈던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는 가겠다고 하는 거였다.


“시윤아. 그러니까 말을 함부로 막 하지 말라고”


아내는 단호하게 얘기하고 소윤이와 나갈 준비를 했다. 시윤이는 아내 옆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울었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건 아니었고, 흐느낌과 징징거림 그 어디쯤이었다.


“시윤아. 슬퍼서 우는 거면 울어도 되는데 원하는 걸 얻고 싶어서 우는 거면 소용없어. 운다고 해서 니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원하는 게 있으면 대화를 해”


아내와 소윤이는 나갔고, 난 파스타를 만들었다. 서윤이도 처음에는 따라가겠다며 조금 칭얼거리다가 오빠와 엄마, 아빠의 대화(?)를 보고는 바로 처신을 다르게 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했다. 시윤이는 자기 침대에 가서 마저 울었다. 일부러 혼자 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슬그머니 나와서 공부방으로 갔다.


“시윤아. 다 울었어?”

“네”

“뭐 해?”

“그냥 뭐 만들어여”


감정을 좀 추스른 것처럼 보였다. 이런 작은 경험을 통해 시윤이가 잘 배우길 원하는데, 오히려 슬픈 기억만 쌓이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내와 소윤이는 엄청 금방 돌아왔다. 한 30분도 안 돼서. 그 사이 파스타도 어느 정도 완성이 됐다. 양이 꽤 많았는데 남김없이 다 먹었다. 오늘은 웬일인지 면 종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 서윤이도 잘 먹었다.


아내는 저녁에 나가기로 했다. 오랜만의 자유시간이었다. 친구와 장도 보고 카페도 간다고 했다. 아내는 저녁을 먹고 바로 준비해서 나갔다. 난 저녁을 먹고 나니 졸림의 정도가 최대치까지 올랐다. 내가 가장 먼저 먹고 아이들이 먹는 걸 기다렸는데, 기다리면서 식탁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아이들이 다 먹고 나서도 소파로 가서 잠시 누웠다.


“소윤아, 시윤아. 들어가서 씻고 아빠 15분에 깨워 줘”


차라리 잠깐 눈을 붙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부탁하고 잠시 잤다. 소윤이는 내가 말한 시간에 나를 깨우지 않았다. 그것보다 15분 정도 늦은 시간에 알아서 깼다. 둘 중 하나일 거다. 아빠가 너무 피곤해 하니 조금이라도 더 자라는 배려, 아니면 조금이라도 자는 시간을 미루고 싶은 마음. 소윤이와 시윤이가 잘 준비를 모두 마친 뒤였다. 스스로 씻는 게 불가능한 서윤이만 내가 씻겼다. 그러고 나서는 각자 자리에 누웠다.


조금, 아니 많이 미안했다. 퇴근하고 와서 같이 저녁을 먹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뭔가 한 게 없었다. 아이들과 얘기도 많이 못 했고, 놀지도 못 했고. 졸다가 자다가 끝났다. 그 사이 소윤이와 시윤이는 알아서 씻고 옷도 갈아입고 집도 싹 치웠다.


내가 의도하는 건 아닌데, 아이들이 각자 자리에 눕고 거실이 조용해지면 졸음도 좀 달아난다. 그래도 잠시 회복의 시간은 필요하다. 소파에 앉아서 쉬거나 휴대폰을 보는 건데, 자칫 잘못하면 소파에 붙잡혀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차라리 어차피 해야 할 집안일을 하며 정신을 깨우는 편이 현명할 텐데, 그게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다.


아내는 친구가 준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아내가 친구 생일에 사 준 케이크였다. 그걸 그대로(까지는 아니고 한 조각 정도 먹고 90%가 남은) 받은 셈이었다. 다소 이상한 상황이긴 했지만 아내가 평소에 먹고 싶어 하던 케이크라, 일부러 남겨(?) 준 거다. 아내도 다소 민망해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했다.


“드디어 먹어보네”


아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케이크 상자를 열고 케이크를 꺼냈다. 잠시 후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이거 딸기 상태가 좀 안 좋은 거 같지 않아?”

“그러네. 곰팡이 피려고 하네. 못 먹겠다”


아내는 무척 아쉬워했다.


“여보. 난 이 케이크랑 인연이 아닌가 봐. 그냥 여보가 나중에 하나 사 줘”


아내는 케이크를 다시 상자에 넣고 베란다에 내 놨다. 마치 자식을 떠나 보내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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