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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05. 2023

얘들아, 우리 산책...아니다

23.02.01(수)

아내와 아이들은 수요예배에 갔다가 시내에 나갔다고 했다. 함께 예배를 드린 K의 아내와 그의 자녀들과 함께. 같이 장도 보고 카페에 들러서 커피도 사고 (엄마 둘에 아이 여섯이니 카페에 머물지는 못했겠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서윤 잠들었음”


그 시간이 오후 4시였다. 아내는 오늘 저녁에 성경공부 모임을 하러 교회에 가야 했고. 아내에게 답장을 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ㅏ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ㅏㅏ하하하하하핳핳하하하ㅏㅏ”


잠들 때까지 옆에 누워 있어야 했던 예전에 비하면 사실 크게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깊이 잠든 자녀들의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밤이 좋기는 하다.


오후에 날씨가 너무 좋았다. 오후까지만 해도, 아니 집에 들어가는 길에도


‘가영이 교회에 가면 애들이랑 밤산책 나갔다 올까’


라는 생각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도 바로 그 생각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서서히 옅어졌다. 실천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때로는 선포다.


“얘들아.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엄마 교회 가시면 우리는 산책하러 나갈까?”


얘기하는 순간, 곧 현실이 될 때가 많다. 특히 자녀와 함께하는 육아의 일상에서는. 오늘은, 아니 오늘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덕분에 계획과 상상에서 멈췄다. 사실 어제 퇴근하고 교류와 소통이 너무 없었던 게 미안해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녀들과 특별한 어떤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대신 어제처럼 병든 닭이 되지는 않았다.


서윤이는 엄청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자녀들은 방에 들어가서 각자의 자리에 누웠지만 한참 동안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말이 ‘소근’이지 사실은 ‘소음’에 가깝기도 했다. 근원은 서윤이였다. 평소 대화할 때, 소리가 90이고 공기가 10이라면 이 때는 공기가 90이고 소리가 10이라고 보면 된다. 자기 나름대로는 소근대는 것이겠지만 밖에서도 다 들린다. 아마 시윤이는 바로 잠들었을 테고, 서윤이가 소윤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을 거다.


“서윤아. 이제 그만 떠들고 자”


적극적인 제지는 하지 않았다. 거실에서 목소리로만 전달했다. 물론 먹히지 않았다. ‘너무 늦게 자는 것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 및 발병’만 아니면 당장 나에게 방해가 되는 건 없었다. 그러니 굉장히 너그럽게 허용했지만, 어떤 일이든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제 네 살이 된 서윤이가 그 선을 찾아 지키는 건 꽤 어려운, 아니 아예 개념에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서윤이가) 자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자녀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뭐야. 서윤이 거기 있었어?”


세 녀석 모두 1층 시윤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미 자고 있었고, 서윤이는 잠든 언니와 오빠 사이에서 혼자 손가락을 빨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 날의 체력과 기분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런 장면을 볼 때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엄마나 아빠 없이도 자기들끼리 연대와 유대를 강화하는 모습이 뿌듯하달까. 단순히 ‘사이 좋은’ 사이가 아니라 자기들끼리의 ‘끈끈한 무언가’를 쌓아가는 게 너무 소중하게 보인다. 물론 다투기도 엄청 다툰다. 내가 없는 낮에는 물론이고, 내가 존재하는 저녁에도.


아, 이건 매우 낭만적인 소감이요 감상일 뿐이고, 현실은 처절과 참혹의 연속이기는 하다. 특히 아내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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