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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1. 2023

교회를 집처럼

23.02.02(목)

오전에만 일을 했다. 카페에 있었다.


“여보. 오늘은 종일 교회에서 일 하나요?”

“스벅임”

“아하. 그럼 오늘은 카페에서 일해요?”

“응”

“교회면 점심 싸갈까 했음”

“같이 먹으려고? 근데 나 오늘 차 가지고 옴. 여보가 스타벅스 쪽으로 애들 데리고 걸어오는 건 너무 머나?”

“가려면 갈 수 있음”

“같이 점심 먹고 오후에는 오프하려고”

“그래 좋아”


오전만 하고 퇴근할 거라는 말에 아내는 없던 힘도 솟는 듯했다. 결과적으로는 교회에서 점심을 먹었다. 집에 들러서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교회로 갔다.


“여보. 근데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먹어도 되는 거였네?”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기분이 나잖아”


1층에서 먹는 건 왠지 눈치가 보여서(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괜히) 3층 자모실에 올라가서 먹었다. 음식은 별 거 없었다. 아내와 나는 볶음김치와 계란프라이, 자녀들은 김가루와 계란프라이. 아내가 집에서 커피도 타서 왔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엄청 추웠고 밥 먹을 때도 꽤 볼이 시렸다. 밥을 다 먹어갈 무렵에야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1층에 가서 공부를 좀 봐 준다고 했다. 서윤이를 온전히 봐 줄 누군가(는 남편 말고 없겠지만)가 있어야 집중해서 학습에 열을 올리는 게 가능하다. 서윤이는 3층에서 재우기로 했다. 서윤이를 재우려고 이불을 깔았는데 방바닥이 뜨끈뜨끈했다. 잠을 부르는 분위기와 온도였다.


‘어차피 서윤이 옆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 나도 한 숨 잘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도 한 숨 자요”


지체 없이 서윤이 옆에 베개를 놓고 누웠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거의 바로 잠들었던 것 같다. 깬 건 서윤이가 나보다 먼저 깼다.


“아빠. 똥 싸떠여어”

“아, 그래? 알았어”


잠에서 깨는 게 쉽지 않았다. 서윤이가 언제부터 일어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서윤이는 앉지도 못하고 계속 서서 손을 빨았다. 잠에서 깨지 못하는 아빠를 보고도 보채지 않았다.


“아빠. 언제 똥 딲으러 갈 거에여어?”


서윤이를 데리고 1층 화장실에 가서 씻겼다. ‘편안한 집 놔두고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저녁에는 교회에서 약속이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야 했는데 시간이 아주 애매하게 떴다. 두 시간이 채 안 남았다. 계속 교회에 있기로 했다. 그러려면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어디 나가서 먹는 것도 번잡스럽고 그렇다고 시켜서 먹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점심도 그렇게 이른 시간에 먹은 건 아니라서 배가 엄청 고프지도 않았다. 거를 수는 없으니 먹는 느낌이었다. 결국 만만하고 저렴한 토스트를 배달시켰다. 서윤이도 하나를 다 먹었다. 잘게 잘라서 준 것도 아니고 큼지막하게 쥐여줬는데 흘리지도 않고 잘 먹었다.


저녁 약속까지 소화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10시였다. 시윤이는 목이 아프다고 했다. 많이 아프다고 했다. 느낌이 안 좋았다. 가만히 있어도 아프다고 하는 게, 곧 열이 나면서 제대로 아프지 않을까 싶었다. 내일 Y네 집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혹시라도 시윤이가 너무 많이 아프면 가지 못 할 것 같았다.


“소윤아. 혹시 내일 시윤이가 열이 나거나 아프면 우리 00이네 못 갈지도 몰라. 알지?”


소윤이에게 미리 얘기를 해 놓을 정도로 묘한 확신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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