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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1. 2023

아파도 가 보자, 일단

23.02.03(금)

시윤이는 새벽에 열이 많이 났다. 39도가 넘었다. 엄청 끙끙대다가 토하고 싶다고 해서 얼른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노란 위액만 넘겼다. 급히 해열제를 먹였다. 불길한 예감이 이렇게 정확하게 맞다니. 다시 잠들기는 했는데 계속 끙끙거리고 기침도 많이 했다. 일단 약을 먹였으니 한 숨 더 자고 일어나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아내와 나의 고민이 깊어졌다. 지인 Y의 집에 놀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차로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평소였다면, 다른 약속이었다면 미안하지만 취소하고 다음을 기약했을 거다. 오늘의 약속은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이미 두어 번 파투를 내서 미안하기도 했고, 꼭 가고 싶기도 했다.


날이 조금 더 밝고 다시 깬 시윤이는 조금 나아지긴 했다. 열도 조금 떨어지고 아예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 기력이 많이 없기는 했다. 처음에는 아침도 먹는다고 했다가 막상 차려 주니 못 먹겠다고 하면서 바닥에 누웠다. 바닥에 누운 시윤이는 자꾸 잠이 들려고 했다. 열은 별로 없었다. 혹시나 공복이 길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어제 저녁도 토스트로 굉장히 부실하게 때웠고, 아침도 안 먹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시윤아. 그냥 자지 말고 이거라도 먹어. 먹기 힘들어도 좀 먹어. 알았지?”


냉장고에 있던 과일주스를 먹였다. 조금 누워있던 시윤이는 점점 기운을 차렸다.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밥도 먹겠다고 했다. 밥을 먹고 난 뒤에는 놀라운 속도로 회복했다. 소윤이, 서윤이와 장난을 치면서 웃을 정도로 정상에 가까워졌다. 물론 정상은 아니었다. 여전히 기침을 많이 했고 미묘하게 평소보다 활력이 없었다. 얼굴도 푸석푸석하니 말이 아니었고. Y네 집에는 예정대로 가기로 했다. 일단 시윤이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가면서, 혹은 가서 다시 안 좋아질 가능성도 농후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두 시간 반,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시윤이와 서윤이 모두 잠깐씩 잤다. Y네 식구하고는 바로 식당에서 만났다. 시윤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특별히 오리백숙 가게를 예약해 줬다. 시윤이는 계속 비슷한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에 70% 정도 회복한 느낌이었다.


“시윤아. 국물 좀 많이 먹어”


국물이 실제로 몸에 좋은지, 기침을 많이 하고 기력이 쇠한 일곱 살 남아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좋을 것 같았다. 뜨끈한 국물로 몸도 따뜻하게 하고 좋은 재료를 많이 우려낸 국물로 영양도 보충하고. 시윤이는 적당히 먹었다.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양을.


점심을 먹고 위판장에 들렀다. 지금 사는 곳에도 항구와 위판장이 있어서 자주 보긴 했지만, 그곳의 위판장은 또 다른 풍경이었다. 생각해 보니 항상 멀리서만 봤지 오늘처럼 무언가를 사기 위해 가까이 접근했던 적은 없는 것 같기도 했고. 자녀들도 마치 어디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신기하게 구경했다. 아내는 서윤이 신발을 장화로 바꿔줬다. 준비성이 철저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언제 신었는지 모르는 장화를 따로 정리하지 않고 계속 차에 둔 덕분이었다.


바닷가에 설치된 나무데크 길을 걷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서 보는 바다의 풍경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광활한 바다와 걸출한 산이 어우러진 풍경에 감탄을 하며 취했다. 자녀들은 풍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 얼음땡 할까?”


그놈의 얼음땡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좋은 경치를 배경으로 하는 얼음땡은 기분이 좀 남다른가. 아무튼 자녀들은 뛰고 잡으며 놀기 바빴다.


Y네 집에는 늦은 오후쯤 들어갔다. 시윤이를 주의 깊게 살폈다. 계속 비슷했다. 조금 지쳐 보이기는 했다. 오랜만에 만난 또래와 놀기 위해 필사의 기운을 짜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시라도 누워서 요양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리 만무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서 제안하기도 어려웠다. 너무 반갑게, 신이 나서 놀고 있었다.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조금 전에 만나서 밥을 먹은 것 같았는데 또 밥시간이라니. 자녀들은 먼저 딱새우를 먹였다. 아마도 난 처음 접한 듯하다. 꽤 많은 양을 쪘는데 역시나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심지어 살만 발라내는 과정이 꽤나 까다로웠다. 성가신 공정에 비해 얻는 결과물(살)은 너무 빈약했다. 자녀 여섯 명이 입을 벌리고 새우살을 기다렸다. 나와 Y는 빠르고 빠르게 움직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껍질을 벗기는 건 오래 걸리고 얻는 결과물은 초라하고 자녀들의 입은 많고. 딱새우로 입맛을 살린 자녀들은 밥도 잘 먹었다.


저녁을 먹은 자녀들은 영화를 봤다. 소윤이가 가기 전부터 구상했던 일이었다.


“아빠. 저 00 오빠네 가면 00이 삼촌한테 ‘샬롯의 거미줄’ 보여달라고 할 거예여”


Y네 자녀들도 이미 몇 번 봤다고 했는데, 또 봐도 재밌었나 보다. 방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Y가 팝콘도 만들어서 줬다. 자녀들이 영화를 보는 사이에 아내들은 커피를 사러 갔다 왔고, 자녀들을 재우고 난 뒤에는 긴 수다의 시간을 가졌다.


시윤이는 Y의 첫째, 소윤이는 Y의 둘째와 같은 침대에 누웠다. 서윤이는 엄마, 아빠가 자는 방에서 자겠다고 해서 혼자 누웠다. 당연히 아내나 나를 찾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혼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중간에 나오지도 않았다. 아내와 내가 방에 들어가서 잘 때는 소윤이와 시윤이도 모두 그 방으로 왔다. 결국 침대 위에서는 아내,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가 자고 난 바닥에서 잤다. 어떻게든 침대 위에서 자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자리가 안 나왔다. 억지로 밀고 들어갔다는 자다가 누구 한 명은 떨어질 것 같았다.


시윤이의 이마는 여전히 조금 뜨거웠고 계속 숨을 가쁘게 쉬며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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