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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1. 2023

언제나 달콤한 낮잠

23.02.04(토)

일어나자마자 시윤이 상태부터 확인했다. 계속 비슷한 느낌이었다. 열이 약간 나는 듯 안 나는 듯하면서 괜찮아 보였지만 기침은 많이 했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퀭한 것도 마찬가지였고. 축구를 하러 나가기로 해서 더 유심히 살폈다. 집에서 맞는 주말이었으면 아무리 축구를 하기로 했어도 설득하고 집에 있었겠지만 오늘은 그러기 어려웠다. Y네 집에 오기 전부터 시윤이는 잔뜩 기대를 했다. 집에서 축구화도 챙겨 왔다.


“시윤아. 괜찮겠어? 너무 힘들지 않겠어?”

“네. 괜찮아여”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하고 나면 후폭풍이 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렇다고 시윤이만 집에 남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니 나중에 일어날 일은 그때 걱정하기로 했다. Y와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다른 가정과 함께 만나서 축구를 했다(어른들이 하는 건 아니었고 자녀들이). 시윤이는 물론이고 소윤이도 함께 했다. 소윤이는 평소에 ‘축구는 재미없다’라고 자기 기호(?)를 밝혔지만 이럴 때(뭔가 다 함께 할 때)는 잘 어울려서 한다. 게다가 생각보다 열심히 한다. 누가 보면 축구를 엄청 좋아하는 걸로 착각할 정도로.


시윤이도 엄청 열심히 뛰었다. 남자 아이 중에는 가장 어렸다. 큰 형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뭘 해보려고 꽤 애를 썼다. 어색한 사람들과 있을 때 나오는 시윤이 특유의 차분함과 점잖음 속에서도 공을 향한 시윤이의 집중이 느껴졌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형들 사이에 있으니 굉장히 아기(?)같기도 했다.


서윤이는 마침 잠들었다. 유모차에서 꽤 자다가 깼다. 남편들은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했고(진짜 ‘축구를 했다’는 건 아니다. 분위기만 조성했다), 아내들은 가만히 서서 지켜봤다. 바람이 꽤 세차게 불어서 체감온도가 제법 낮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들이 추위에 떠는 게 느껴졌다. 남편들은 조금이라도 움직이니 나았지만 아내들은 가만히 서 있었으니 훨씬 더 추웠을 거다.


두 시간 정도 하고 마쳤다. 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네 가정 중에 한 가정만 빼고는 모두 자녀가 셋이었다. 네 명이 기준인 자리에 한 가족이 모여 앉는 게 다소 애매했다. 남편들이 빠져서 한 자리에 앉았다. 아내는 나에게 서윤이를 보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셋 모두를 데리고 밥을 먹는 것과 서윤이만 데리고 밥을 먹는 건 큰 차이가 없다. 그만큼 서윤이의 존재감이 크다. 아내는 나와 비교해서 동시다발적인 행동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서윤이는 내가 맡는 게 맞다. 오늘은 나도 서윤이가 좀 버거웠다. 어찌나 까불거리는지. 뭐랄까. 예쁨 받는 걸 알고 당당하게 뺀질거린다고 해야 하나.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Y네 집으로 갔다. 엄청 노곤했다. 찬 바람을 맞으며 뛰기도 했고, 따끈한 국밥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고. 점점 졸음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시윤이가 괜찮은지는 수시로 살폈다. 마찬가지로 계속 비슷했다. 시윤이의 체력관리를 위해 낮잠을 제안했다. 시윤이는 당연히 자기 싫어했지만 딱 30분만 자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결정은 스스로 하라고 했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존중하겠다고 했다. 대신 그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귀가 따갑도록 자야 하는 당위를 설명했다.


“알았어여. 잘게여”


내가 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함께 침대에 눕자마자 내가 먼저 졸았다. 코 고는 소리에 깨고, 휴대폰에 맞아서 깨고. 시윤이는 안 잤다. 30분을 누워 있었지만 결국 잠들지 않았다. 나만 열심히 졸았다. 더 있어 봐야 시간 낭비일 듯해서 시윤이를 데리고 나왔다.


“여보. 여보는 들어가서 좀 더 자”


아내가 얘기했다. 입으로 대답하기 전에 뇌가 먼저 반응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았고 마취약을 마신 것처럼 즉시 잠들었다. 거의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Y도 나처럼 잤다고 했다. 내가 축구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후폭풍이 거셌다. 시윤이의 후폭풍을 걱정했는데. 대신 엄청 개운했다. 기분도 뭔가 좋았다. 한량이 된 것 같고.


다행히 시윤이가 더 나빠지고 그러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상황이 안 좋아질 가능성도 있었지만 일단은 괜찮았다. 저녁도 먹고 아이들도 씻긴 다음에 Y네 집에서 나왔다. 9시가 다 돼서 나왔다. 다 잠들었다. 난 개운한 낮잠 덕분에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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