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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3. 2023

선을 지키는 자녀에게 복이 있나니

23.02.05(주일)

어제 시윤이가 자다가 깨서 안방으로 왔다. 자다가 코를 풀었는데 코피가 약간 나와서 휴지로 닦았다고 했다. 목이 마르다고 하면서 물을 달라고 하기도 했다. 힘들지는 않냐고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시윤아. 안방에서 잘래?”

“네”


이마를 짚어 보니 약간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내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나와 시윤이는 바닥에 누웠다. 시윤이는 계속 미세한 신음 소리를 냈다. 코가 너무 막혔는지 숨 쉬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갑자기 불안의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덜컥 겁이 났다. 애써 생각을 물리치고 다시 잤다. 다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시윤이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오늘도 서윤이는 아내와 내가 찬양단을 하는 동안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유일하게 접근을 허용하는 K의 아내가 와서 서윤이 옆에 앉았다. 덕분에 아내는 오늘도 끝까지 무사히 찬양을 했다. 오늘은 오후 예배 때도 찬양단을 해야 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서윤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재웠다. 유모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오후 예배가 끝날 때까지 깨지 않았다.


오후 예배를 마친 뒤에는 목장모임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를 따라서 3층으로 갔고, 막 잠에서 깬 서윤이는 내가 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안겨 있다가 잠이 다 깨고 나서는 내려가서 내 주변에서 놀았다. 놀았다고 하기에는 아무것도 없기는 했지만 목장모임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얌전히 있었다. 유모차를 가지고 놀았다가 주변을 서성이다가 나에게 안기기도 했다가. 목장모임을 마친 뒤에는 성경공부도 있었다. 한 4개월 만에 하는 거라 간단하게 하고 끝났다. 아내들이 좋아했다.


목사님이 자녀들(5명 - 각 집의 막내들은 빼고)을 데리고 편의점에 가셨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예전에 이렇게 일러뒀다.


“교회에서 어른들이 뭘 사 주신다고 하면 너무 이상한 걸 고르지 말고 차라리 어느 정도 먹을 수 있는 걸 골라. 그게 지혜로운 거야. 너희가 생각했을 때 평소에 엄마나 아빠가 절대 안 줄 것 같은 걸 고르면 당연히 못 먹겠지? 대신에 왠지 엄마, 아빠가 줄 것 같은 걸 고르면 그건 엄마, 아빠가 주겠지”


‘이상한’의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연히 양심이 있는 인격체라서 본능적으로 판단이 설 거다. 대체로 맞을 거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롯데샌드와 땅콩샌드를 골라왔다. 함께 가지 않은 서윤이 몫으로는 뽀로로 과자를 골랐고. 아내와 내가 말한 ‘엄마나 아빠가 줄 것 같은’의 범주에 정확히 포함되는 선택이었다. 엄청 신중하게 고른 모양이었다. 목사님과 자녀들이 왜 이렇게 안 오나 했는데 그게 다 소윤이와 시윤이 덕분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집에 가는 것 뿐이었다. 집에 가서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는데 갑작스럽게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했다. K네 식구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다. ‘함께’라기 보다는 각 가정의 욕망이 일치했다고 할까. 저번에 갔을 때는 자녀들은 식빵과 잼을 시켜줬는데 오늘은 자녀들도 샌드위치를 먹었다. 어른들은 한 조각, 자녀들은 반 조각. 서윤이는 빵만 조금씩 떼어주고 집에 가서 따로 밥을 먹일 생각이었다. 빵 쪼가리를 조금씩 얻어 먹던 서윤이는 결국 온전한(빵을 비롯한 속 재료를 포함한) 샌드위치를 들고 먹었다. 자투리를 얻어 먹었지만 모두 합치면 서윤이도 반 조각은 먹은 듯했다. 샌드위치로도 충분히 배는 찼겠지만 집에 와서 미숫가루를 한 컵씩 타서 줬다. 혹시라도 남은 허기가 있으면 채워지도록. 배부르다고 사양하는 녀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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