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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3. 2023

여보, 같이 가요

23.02.06(월)

아침에 아내에게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는 메시지가 왔다.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나의 첫 답장도 항상 비슷하다.


“시윤?”


아내의 답변도 여지없고. 아내는 마음을 지키고 감정적으로 담담하고 싶지만, 너무 열이 받는다고 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단호하게’


말이 쉽지. 자녀 아니라 어떤 사람을 상대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짧게 기도는 했지만, 믿음은 없었던 것 같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환기가 필요해 보였다. 마침 오후 일정이 있었던 곳이 강변이었다. 아내에게 세 가지 정도를 제안했다.


첫 번째는 나는 예정대로 오후 일정을 소화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나오는 방법. 두 번째는 내가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서 나와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가는 방법. 세 번째는 아내와 아이들은 그냥 집에 있고 내가 조금 일찍 퇴근하는 방법. 아내는 조금 고민을 해 보고 점심시간 쯤 말해주겠다고 했다. 고민과 함께 진행되는 상황도 봐야 했을 거다. 아이들의 상황은 물론이고 집안일의 진척도까지.


“여보. 같이 가요”


아내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점심 먹고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오늘 못 갈 거 같아요”

“왜?”

“그냥 뭐”

“알았어요”


아마도 누군가와 심대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대충 알 듯했다. 퇴근이라도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다 먹고 차를 가지러 집 쪽으로 가는데 다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같이 가요”


생각보다 빠르게 상황이 끝났거나, 아내가 억지로 마침표를 찍었을 거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게 됐다.


난 오후 일정을 소화하러 가고 아내와 아이들은 점심으로 주먹밥을 먹었다. 차에서. 아내가 집에서 싸 왔다. 서윤이는 가는 길에 잠들었다. 오후 일정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너무 일찍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마침 아내와 아이들도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궁상맞은 형편이었지만)을 다 먹고 차에서 막 나왔다고 했다. 서윤이는 여전히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지만 이내 꿈틀거리더니 깼다.


공원을 걸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놀이터에 가자고 해서 거기서도 시간을 조금 보냈다. 서윤이는 거기서 점심을 먹었다. 놀이터가 그늘이라 가만히 있으면 서늘했다. 한 30분 있으니까 더 있기 어려울 정도의 한기가 돌았다. 그 뒤로는 계속 걸었다. 공원 안내센터에 들어가서도 한참 구경했고. 두 시간 남짓 걸었다. 제법 걸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평소보다 빠르게 오후 육아를 시작해서 그랬는지 돌아오는 길이 힘겨웠다. 졸음을 참느라고 고생했다.


집에 와서는 정말 오랜만에 아이들 목욕을 시켜줬다. 이사 오고 나서는 처음이었다. 커다란 플라스틱 욕조가 있는데, 원래 이사 오면서 처분하려고 했다. 제 때 처분을 못 해서 베란다에 방치됐다. 물론 그 안에 여러 잡다한 짐을 담아 놨으니 나름의 용도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며칠 전부터 소윤이가 목욕이 하고 싶다고 해서, 생각만 하다가 오늘 실천으로 옮겼다. 세 명 모두 들어가면 정말 좁을 것 같았다. 좁은 게 문재가 아니라 세 명이 모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소윤아. 목욕 할래?”

“네, 좋아여”

“목욕 재미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냥 따뜻한 물에 들어가고 싶어여”


시윤이와 서윤이도 엄청 좋아했다.


“얘들아 근데 욕조가 엄청 좁을 거야. 진짜 엄청 좁을 거야. 불편하다고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놀아. 그리고 장난감이 하나도 없는데 괜찮아?”

“네. 컵하고 손수건만 좀 갖다 주세여”


다행히 세 명이 들어가는 건 가능했다. 움직임은 매우 제약을 받았지만. 컵과 손수건을 세 개씩 줬다. 아내는 저녁 준비를 했고 난 아내 옆에 앉아서 쉬다가 아내의 저녁 준비를 도왔다. 서윤이가 새삼 컸다는 걸 또 느꼈다. 마지막으로 목욕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게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서윤이가 불안해서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오늘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놀았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꽤 한참을 놀았다.


목욕은 아이들이 했는데 노곤한 건 나였다. 저녁 먹기 전에 목욕을 했으니 잘 준비도 거의 다 끝난 상태였다. 저녁 먹고 양치만 하면 됐다. 그 사이 난 소파에 앉아서 격렬하게 졸았다.


“여보. 애들 다 누웠어요”

“어, 알았어”


이 대화가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때, 거실에 아이들이 없었고 아내는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 뭐야? 애들은?”

“아, 여보 못 일어나길래 내가 그냥 기도해 줬어요”

“아, 그랬어?”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서 밤인사를 나눴다.


아내는 내가 운동을 갔다 왔을 때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은 조금 더 꼼꼼하게 주방 정리를 하는 듯했다. 괜히 미안했다. 난 개인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아내는 계속 공공의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여보. 미안하네”

“뭐가 미안해”


그래도 아내는 오늘 육아퇴근이 무척 빨랐던 셈이니까 평소보다는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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