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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3. 2023

그곳의 분위기

23.02.07(화)

아내에게 전화가 왔고 시윤이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목소리가 아니라 이상한(?) 소리가. 시윤이가 자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신경을 긁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짜증을 내니까 나에게 전화를 한 거다. 아내는 시윤이에게


“얼른 아빠한테도 똑같이 얘기해. 얼른”


이라며 시윤이에게 무언가를 말하라고 했다. 아마도 무언가 억지스러운 주장이나 짜증이었을 거다.


“아빠한테 하지 못 할 얘기면 엄마한테도 하지 마”


사실 오늘은 시윤이와 아내가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달력에 표시까지 해 놨고, 시윤이도 기대했으니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짜증을 참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닌가 보다.


시윤이에게 낮잠도 자라고 했다. 출근하기 전에 얘기하고 왔다. 낮잠을 자면 밤 늦은 시간까지 엄마와 즐거운 데이트를 할 수 있으니 웬만하면 자라고. 오후에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시윤이가 아빠가 자야 한다고 하지는 않았다면서 안 잔다는데 어떻게 하죠?”


시윤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내가 ‘반드시’ 자야 한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시윤이를 잘 설득해서 자겠다는 대답을 듣기는 했다. 진짜 잘 지, 자는 시늉만 할 지, 정말 자려고 노력했는데 잠이 안 올 지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아예 안 자겠다고 버티는 건 돌려 세웠으니 조금이라도 잘 것 같기는 했다.


“아들은 자나요?”

“네. 푹 잤네요”


꽤 오래 잤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퇴근도 너무 늦지 않게 했다. 얼른 시윤이와 아내를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렀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일단 아내의 얼굴이 매우 어두웠다. 평소에도 그런 날은 종종 있다. 오늘은 소윤이도 이상(?)했다. 얼굴에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내가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시윤이는 어둡지는 않았지만 뭔가 맹한 표정이었다. 서윤이만 멀쩡(?)했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시원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소윤이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흐르는 분위기로는 거의 초상집 비슷했다. 거실 벽에 기대고 앉으니 서윤이가 와서 엉기며 애교를 부렸다. 소윤이는 소파에 앉아서, 아내는 뭔가 하면서 차갑고 무거운 기류를 집안 곳곳 옮겼다. 갑자기 화가 났다. 눈치를 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짜증이 났다.


“아니, 집안 분위기가 왜 이래. 진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내가 이러려고 온 가족을 불러 모아서 데이트 계획을 세웠나 싶었다. 아내는 어찌 됐든 데이트 준비를 했다. 난 나대로 소윤이와 서윤이의 저녁을 준비했다. 중간에 아내가 나에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기도 했다.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아내가 진심이 아니었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기분이 별로였다. 아내와 시윤이는 데이트를 하러 나갔고 난 소윤이, 서윤이와 남았다. 아이들 밥을 차려 주고 내가 먹을 것도 차려야 했는데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안 먹으면 나중에 배가 고프니 먹어야 했다. 라면을 끓여 먹을까 싶었는데 그것도 귀찮았다. 냉장고에 있던 차가운 김치찌개와 참치를 놓고 대충 저녁을 때웠다.


소윤이와 서윤이에게 괜한 짜증을 내지 않도록 계속 신경을 썼다. 덕분에 저녁시간은 나름 즐겁게 보냈다. 루미큐브도 하고 우노도 했다. 소윤이는 서윤이 옆에 누워서 자고 싶다고 했다. 서윤이도 좋다고 했다. 서윤이가 자는 바닥에서 자기에는 까는 이불이 부족했다. 시윤이가 자는 1층 침대에서 자는 건 어떠냐고 했더니 그것도 둘 다 좋다고 했다. 한참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나서 조금 조용해졌다. 소윤이가 먼저 잠들었고, 서윤이는 잠든 언니 옆에 누워서 혼자 계속 소곤거렸다.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도 이전의 착잡, 씁쓸, 찝찝한 기분은 여전했다.


아내와 시윤이는 열 시 반이 다 돼서 왔다. 나갈 때 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내도 시윤이도 너무 좋았다고 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여전히 개운하지 않은 내 마음을 생각하면 다소 어이가 없기도 했다.


‘난 이렇게 만들어 놓고 둘이 좋으면 그만인가’


이게 지배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그냥 몇 초, 그런 생각이 스쳤다.


아내는 시윤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아내의 표현으로는, 마치 취조하듯 시윤이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고 했다. 시윤이도 진심으로 대답했고. 산책도 하고. 아무튼 둘 다 살랑살랑 봄 바람을 타고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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