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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05. 2023

배달의 민족의 딸

23.01.30(월)

다행히 서윤이의 열은 바로 떨어졌다고 했다.


“여보. 일어났나요?”

“네”

“서윤이는 어때?”

“콧물 기침은 매우 심한데 상태 매우 좋음. 신나서 까불고”

“소윤, 시윤도 괜찮고?”

“응 애들도 괜찮아요”


잔잔하게 오래 가는 게 좋은 건지, 심하게 아프고 금방 끝나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다.


아내가 오후에 사진을 하나 보냈다. 누군가 아내에게 쓴 편지였다. 글씨가 삐뚤빼뚤 해서 시윤이가 썼나 했는데 소윤이가 쓴 거라고 했다. 내용은 이랬다.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요. 제가 엄마 좋아하는 거 알죠? 엄마, 엄마랑 너무 데이트가 하고 싶어요. 꼭 하자요!”


소윤이나 시윤이 모두에게 언제나 강력한 갈망이 있는 일이다. 퇴근하면 달력을 놓고 앉아서 아예 날을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미뤄질 테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갈망은 더 깊어질 거다.


저녁을 먹고 모두 거실에 둘러 앉았다. 달력과 각각 다른 색 색연필 세 개를 준비했다. 소윤이는 시간을 가장 많이 쓸 수 있는 토요일에, 시윤이는 평일 저녁에 약속을 했다. 각각 다른 색으로 달력에 표시를 했다. 서윤이는 자기도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서윤이도 토요일로 예약(?)했다. 소윤이의 토요일과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여보. 서윤이는 그냥 잠깐 바람 쐬러 갔다가 올게”


불가피한 상황에 관해서도 미리 얘기했다.


“엄마, 아빠가 당연히 약속을 어길 일은 없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거나 누가 아프거나 그러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알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건 당연하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아이들을 기분 좋게 눕히고 운동을 갔다 왔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아내에게 커피라도 한 잔 사다 줄 지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했다. 바로 괜찮다고 한 건 아니었고 5초 정도 고민하다가


“에이, 아니야. 그냥 집에 있는 거 마시면 되지 뭐”


라고 말했다. 막상 운동을 마치고 나오니 괜찮은 카페는 모두 문을 닫은 시간이었다. 아내에게 뭐라도 사 주고 싶어서 아내가 가끔 사 먹는 요거트 전문점에 가서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샀다. 집에 있는 그래놀라를 넣어서 먹으면 맛있는 간식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난 안 먹지만.


아내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거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와플과 아이스크림과 커피였다.


“뭐 배달시켰어?”

“어, 배달시켰어”


아내는 불 붙은 가슴을 달래지 못하고 배달의 민족성을 발휘했다. 내가 산 요거트 아이스크림은 바로 냉동실로 들어갔다. 꽃과 디저트는 타이밍인데, 잘 맞추면 천 냥 빚도 갚는데,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이렇게 홀대 받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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