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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4. 2023

두 얼굴의 사나이

23.02.10(금)

소윤이와 시윤이와 서윤이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났다(어제는 오늘보다 더 빨리 깼다). 자라고 해도 잘 거 같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러는데 오늘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있으니 잘 리가 없었다.


“안 자도 되니까 할머니랑 엄마 깨우지는 마”


장인어른도 잠시 납품을 하러 가서야 해서 일찍 일어나셨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자던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시시덕거렸다.


아내는 어제, 오늘 뭘 할지 어디를 갈 지 고민을 했다. 날씨도 좋지 않다고 해서 더 많은 고민을 했다. 원래 장인어른이 납품을 하는 쪽으로 함께 가서 나들이를 할까 했는데 비가 온다고 했다. 게다가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서 한 시간 넘게 이동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 계획은 접고 대안을 찾고 있었다. 내가 박물관을 제안했다. 실내라서 날씨와 상관이 없기도 하고 사람도 많지 않은 곳이었다. 찾아 보니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박물관도 있었다.


오전에는 교회에서 일을 했다. 비가 와서 차를 가지고 갔다가 집 근처에 주차를 하고 K의 차로 오후 일정을 소화했다. 차를 갖다 놓을 때 보니 아내의 차가 보였다. 아내의 계획과 다르게 점심시간까지 집에 있었던 거다. 여러 이유가 있었을 거다. 그냥 어쩌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고 (이게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다), 장모님이 반찬 만들기를 비롯한 여러 임무를 수행하시느라 그랬을지도 모르고.


오후 일정을 마치고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아내는 박물관이라고 했다. 집에서 꽤 늦게 나온 듯했다. 나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 근처였다. 원래 저녁을 밖에서 먹는다고 했는데 아내가 그냥 집에 가서 먹자고 했다. 어차피 동네로 들어가게 됐으니 난 먼저 들어가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바로 오는 게 아니라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과 장인어른과 비슷한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했다. 아내는 저녁에 교회를 가야 했다. 금요철야예배 때 아내의 여전도회가 특송이었다. 아내는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저녁 식사 준비가 생각보다 늦어졌다. 아내는 시간이 없기도 했고, 별로 배도 안 고프다고 했다. 저녁은 먹지 않고 얼른 가겠다고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장인어른은 소파에 앉아서 주무셨다. 마치 내가 퇴근해서 저녁 먹고 그러는 것처럼. 아이들이 꽤 시끄러웠는데도 안 깨고 주무셨다. 피로가 많이 누적된 것 같았다. 장모님은 계속 아이들과 노셨다. 거의 두 시간을. 보드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난 설거지를 하고 주방 정리를 했다. 다 마치고 나서는 식탁에 앉아서 쉬었다. 아이들은 아내가 집에 올 때까지 자지 않았다. 장모님이 그때까지 계속 아이들과 논 셈이었다.


장모님은 아이들과 노는 게 엄청난 체력 소모를 유발한다는 걸 새삼 느끼셨다고 했다. 이미 다 알고 계셨겠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몸으로 느끼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낮에 비하면 하나도 안 힘드셨다고 했다.


“강서방이 있으니까 힘들 일이 없네”


아내가 낮에는 엄청 힘들다가도 내가 퇴근하고 나면 적어도 정신적인 소모는 사라진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낮의 시윤이’를 보여드린 모양이었다. 잔잔한 짜증과 커다란 짜증을 모두 보여줬다고 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도 수시로 다투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티격태격 하고. 사실 난 아무것도 안 했다. 부모님들이 만날 때마다 ‘너무 무섭게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많이 하셔서 이번에는 진작에 다짐했다. 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정말 심한 경우가 아니면 아예 아무 말도 안 하기로. 그랬는데도 낮과 밤의 기류가 달랐나 보다.


어쩐지 장모님이 아이들과 노실 때


“시윤아. 강시유운”


하는 소리가 다른 때에 비해 많이 들린다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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