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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4. 2023

모두 피곤한 하루

23.02.11(토)

축구를 하고 집에 오니 거의 열 시가 다 됐는데, 아내는 그때 막 일어났다. 심지어 그때도 잠에 완전히 취해서 일어나기 어려워 했다. 엄청난 늦잠이었지만 육아 피로는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가 보다. 아내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은 아직 아침을 먹기 전이었다. 열 시가 넘어서 아침을 먹었다. 모두 배가 엄청 고팠는지 밥을 정말 많이 먹었다. 서윤이만 평소와 비슷하게 먹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과장을 조금도 안 보태고 한 여섯 일곱 번은 밥을 더 떠서 먹었다. 먹고 또 먹고 계속 먹었다. 어른들은 열 한 시가 되어서야 밥을 먹었다. 아이들은 아침 겸 점심, 어른들은 이른 점심이 됐다.


오늘도 계획은 있었다. 조금 멀리 갈까 싶었다. 항상 동네에만 계시다가 가셨으니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여행의 기분이 나는 곳에 가려고 했다. 계획을 실천으로 옮기려면 부지런히 준비를 해야 했다. 거리가 꽤 멀기도 하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짐을 아예 다 챙겨서 나가셔야 했다. 점심을 먹고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아이들과 함께 작은 방으로 들어가셨다. 놀려고 들어가셨는데 어느새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엄마, 아빠 자나?”

“그러신 거 같은데?”


세 남매만 복작거리며 놀고 있었고 장인어른은 시윤이 침대에서, 장모님은 바닥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아이들을 방에서 나오게 하고 불을 껐다.


“얘들아. 할아버지랑 할머니 좀 주무시게 하자”


소윤이와 시윤이가 또 많이 컸다고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놀겠다고 하면서 어떻게든 소란을 피워서 깨웠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 자기들끼리 공부방에 가서 놀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오늘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가는 시간이 무척 아쉬웠을 텐데.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꽤 주무시고 일어나셨다. 계획은 수정되었다. 너무 멀리 가는 건 힘들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또 동네에만 있는 것도 탐탁지는 않았다. 너무 멀지는 않지만 동네는 아닌 곳에 가서 산책을 하다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침이 매우 늦었기 때문에 점심은 따로 먹지 않았다. 장모님은 일어나셔서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셨다(내려오실 때도 이미 적잖은 반찬을 해 가지고 오셨다).


나도 졸음이 쏟아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고 싶다는 것보다는 눕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일었다. 안방 침대에 들어가서 누웠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번갈아 가며 들락날락 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나도 제대로 누운 게 아니라 걸치듯 누웠다. 자려고 마음을 먹고 누운 게 아니었는데 바로 잠들었다. 꽤 깊이, 오래. 이번에도 개운했다. 장모님은 여전히 바쁘게 무언가 하고 계셨다.


이번 주 초에도 갔던 강변으로 갔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아내와 내가 신혼 생활을 할 때 가 보신 후로 처음이라고 하셨다. 날씨가 흐린 게 옥의 티였지만 산책하기에는 워낙 좋은 곳이라 괜찮았다. 세 남매가 산책을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것도 좋았다. 엄청 많이 걷지는 않았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근처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분히 시윤이를 위한 선택이었다. 소윤이가 좋아하는 ‘월남쌈’은 어차피 먹을 곳이 없으니 시윤이의 취향을 고려했다. 시윤이는 잘 못 먹었다. 안타깝게도 너무 피곤했다. 오랜만에 먹으면서도 눈을 느릿하게 꿈뻑거렸다. 시윤이를 위해 주문한 탕수육이 남았다.


카페도 갔다. 아내가 웬일인지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마실 음료도 함께 시켰다. 데이트를 하는 날이 아니면 거의 없는 일이었다. ‘2박 3일이 짧네’,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지’ 하는 대화가 오갔다. 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말이었다. 사실 이별을 깊게 나누지 않아도 될 만큼, 생각보다 자주 보고 있기는 하다. 심리적 거리가 더 크게 작용하는 거 같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자주 봐도 헤어질 때마다 아쉽기도 하고.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주일에 몇 번씩 볼 만큼 가까이 살았을 때도, 헤어질 때는 늘 아쉬워 했으니까. 어쨌든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지난 번보다는 덜 슬퍼 보였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내가 모르게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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