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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4. 2023

샌드위치는 핑계고

23.02.12(주일)

오늘도 서윤이는 혼자 잘 앉아 있었다. 예배가 시작될 무렵에는 유일하게 곁에 앉는 게 허용되는(?) K의 아내도 서윤이 옆에 앉았다. 순조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


드럼을 치는 나에게도 들렸으니 예배를 드리는 다른 분들도 분명히 들었을 거다. 서윤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 엄마를 불렀다.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반응을 해 주지 않으니까 계속 불렀다. 옆에 앉은 K의 아내가 서윤이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면서 조용히 시켜 보려고 하는 듯 보였지만 서윤이의 외침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마이크를 내려 놓고 서윤이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갔다.


오후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 모임이 있었는데 갑자기 취소됐다. 아내가 좋아했다. 남편의 신앙 성숙과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지만, 막상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더니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내는 물론이고 다른 가정의 아내들도 비슷했다. 다들 내적 환희를 감추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여유 시간이 생긴 덕분에 다 함께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다. 지난 주에도 갔던 그곳이었다. 매우 젊은 감성의 가게에 아이 여덟 명을 대동한 무리가 들어서니 매우 이질적인 감이 없지 않았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자리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커플은, 우리와 먼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떤 심정인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나도 카페에 있을 때, 등산복 위주의 옷차림을 한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들어오시면 최대한 멀리 떨어진다. 젊은 커플에게 우리 무리의 소리가 꽤 소란스러웠을 거다.


지난 주처럼 자녀들은 반 조각 씩 주고 어른들은 한 조각 씩 먹었다. 서윤이는 내 몫에서 조금씩 잘라줬다. 내용물이 꽤 두툼하게 들었고 빵도 겉이 딱딱한 편이라 서윤이가 먹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굴을 구겨가며 입을 크게 벌리고는 잘도 베어 물었다. 서윤이는 반의 반 쪽 정도 먹었을 거다. 굉장히 맛과 질이 좋아서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드는 샌드위치를, 젊은이의 감성이 충만한 곳에서, 여러 명의 자녀들과 함께 게걸스럽고 정신없이 먹었다. 다 먹고 나서는 앞에 있는 놀이터에 가서 조금 놀았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하고 바람이 차가운데도 자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 뛰어 놀았다.


거기서 인사를 나누고 가정 별로 헤어졌다. 아내가 잠시 K의 집에 들러야 한다고 했다. K의 아내가 일용할 양식을 나눠준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계획이 수정되어서 K의 집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분명히 샌드위치가 저녁이었지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배를 든든히 채우지는 못했나 보다. 우선 나부터(샌드위치 다섯 개는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 아내는 충분히 배가 부르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신이 났다. 예정에 없던 만남은 언제나 반갑고 흥분이 된다. 자녀들에게는 주먹밥을 줬다. K의 아내가 만들어 준 걸 내가 동그랗게 만들어서 자녀들 입에 하나씩 넣어줬다. 다들 무척 잘 먹었다. 주먹밥을 먹기 전에 아무것도 안 먹은 것처럼. 어른들은 부대찌개와 김치전을 필두로 한 백반이었다.


“여보. 난 진짜 별로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다 먹었네”


배가 부르다던 아내도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부대찌개와 김치전이 맛있기도 했고, 어른들도 갑작스럽게 생긴 만남의 시간이 반갑기도 했나 보다. 함께 먹는 시간의 즐거움이랄까.


서윤이는 어른들이 밥을 다 먹었을 무렵에 똥을 쌌다.


“여보. 여보가 좀 치워줄 수 있어요?”

“어, 알았어”

“고마워요. 밥 다 먹었을 때는 닦아주기 힘들더라. 먹은 게 다 넘어올 거 같아서”


밥 먹기 전에는 밥이 안 넘어갈 거 같아서 힘들고, 밥 먹는 도중에는 먹고 있던 게 넘어올 거 같아서 힘들지 않나. 밥 때와 상관이 없어도 힘들지 않나. 즉, 똥이란 모름지기 언제나 힘들지 않나. 힘들기는 해도, 요즘은 세 녀석 모두 잘 싸는 걸 볼 때마다 매우 감사하고 있다. 진심으로.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녀들에게는 특별히 영상을 보여줬다. 교육용, 교양용 영상이 아닌 순수 쾌락추구용(?) 애니메이션이었다. 30분 넘게 깔깔대며 봤다.


집에 오니 열 시가 넘었다. 자녀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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