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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6. 2023

따지고 보면 자주 있는 일

23.02.13(월)

요즘 다시 자녀들의 기상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계절의 흐름과 결을 같이 하는 듯하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는 조금 더 많이 자고 해가 긴 여름철에는 일찍 일어나고. 요즘은 나보다 먼저 일어나 있을 때도 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다시 자라고 하긴 하는데 정말 다시 자는 지는 모르겠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무 일 없이 집에만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오더라”

“어? 그랬어?”


심지어 바깥의 날씨도 잘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거실 커튼을 한 번도 젖히지 않았던 것 같다. 옷차림은 모두 내복이었다. 새삼 다들 대단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 돌보고 때 되면 쌓이는 집안일 하고 거스를 수 없는 사명인 끼니도 챙기느라 고생한 아내도, 발산해야 할 무언가가 많을 텐데 집에서의 일상을 나름대로 즐겁게 보내는 아이들도.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거실에서 제법 그럴싸한 블록 작품들을 만들며 놀고 있었다. 장난감도 많이 없어서 주로 하는 게 블록이고, 그나마도 엄청 많은 게 아니다. 한정된 블록으로 원하는 걸 만들려고 하다 보니 의외로 창의성이 길러지는 건가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서 놀랄 때가 많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나니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피곤한 건 언제나 마찬가지지만, 어떤 날은 감당 가능할 때가 있고 또 어떤 날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때도 있다. 오늘은 후자였다. 저녁 먹은 그 자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아, 아니다.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젖히고 졸았으니 꾸벅꾸벅이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이 졸았다.


아내는 저녁 먹은 걸 정리도 하고 아이들도 씻기고 옷도 갈아입혔다. 한 마디로 하자면, 아내가 다 했다. 내가 정신을 잃고 헤매는 동안 아내가 남은 과업을 모두 처리했다. 자녀들에게도 조금 미안하긴 했다. 함께 밥 먹은 것 말고는 한 게 없었다. 어느 날의 데자뷔처럼 처음은 아니었지만, 처음이 아니라서 더 미안하기도 했다. 게다가 졸음에 휩싸여서 별 거 아닌 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매일 이런 모습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을 눕히고 나니 방전됐던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충전이 됐다.


“여보. 미안하네”

“뭐가?”

“여보가 다 해서”

“괜찮아. 얼른 운동 갔다 와”


서윤이는 내가 운동을 다녀왔을 때까지 안 자고 있었다. 낮잠을 늦게, 오래 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방 안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서 가 보니 인형들을 앉혀놓고 뭔가 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 보니 기도를 해 주는 거였다. 먼저 잠든 언니와 오빠 대신 인형들과 대화를 하며 노나 보다. 평소에 막내로서 보살핌과 지시(?)만 받다가, 인형들 하고 있을 때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잠드는 데 한참 걸렸다. 어차피 재워주는 게 아니라서 아내나 내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저 막내여서 어떤 짓을 해도 용인되기도 한다. 그걸 아니까 그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거겠지.


오늘도 서윤이 옆에서 자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고, 내 몸을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서윤이 매트에 몸을 구겨서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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