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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6. 2023

산책이 아니라면 드라이브라도

23.02.14(화)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집에 있었다. 아니, 집에’만’ 있었다. 마침 퇴근을 조금 일찍 한 편이라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갈까 싶었다.


“여보. 오늘 산책 갈까?”

“그럴까?”


퇴근하는 길에 비가 살짝 내리기는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연히 조금 내리다 말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오늘도 블록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퇴근하면 소윤이가 가장 먼저 와서 안기고 뽀뽀를 한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뭔가 재밌는 걸 하고 있으면 속도가 굉장히 느리거나, 아내가 ‘얼른 아빠한테 가서 인사 드려야지’라고 해야 온다. 그나마도 서윤이는 매우 건성일 때가 많다. 안아달라고 하거나 뽀뽀를 하자고 하면 일단 튕기고 본다. 소윤이는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가장 먼저 온다. 이것이 첫째인가.


저녁을 다 먹고 아이들에게 씻으라고 했다. 산책을 나갔다 오면 손만 씻고 바로 잘 수 있도록. 난 가장 먼저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다 먹을 때까지 서서 기다렸다. 앉아 있으면 또 피로에 허덕일까 봐 일부러 서서 기다렸다. 아이들이 씻는 것까지 기다리려고 하니 시간이 너무 길어지기는 했다. 어쩔 수 없이 식탁 의자에 앉았는데, 마치 무슨 센서가 달린 것처럼 바로 졸음이 쏟아졌다. 아내가 그런 날 보며 피식 웃었다.


“왜?”

“그냥. 여보가 이 시간만 되면 항상 그러는 게 웃겨서”


비웃음이나 조롱은 아니었다. 어떤 웃음이었는지 대략 알 것 같았다. 이 시간이 최대의 고비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저녁을 먹고 산책 이야기를 꺼냈는데, 당연히 무척 좋아했다. 신이 나서 부지런히 옷을 입고 준비를 했다. 다들 들뜬 마음으로 나갔는데, 모두 당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무시하고 나가기에는 꽤 금방 젖을 만한 양이었다.


“드라이브라도 할까?”

“그럴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의사를 물었는데 선뜻 답하지 않았다. 비닐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오는 동안 고민해 보라고 했다(한 30초).


“여보. 소윤이는 그냥 집에 가고 싶대요”

“아, 그래? 알았어. 그럼 그냥 들어가자”


아마도 차를 타고 나가느니 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더 노는 게 낫다고 생각했나 보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틀었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그럼 나는 서윤이랑 커피라도 사러 갔다 올까?”

“그럴래? 그럼 갔다 와”


그러자 소윤이가 다시 마음을 바꿨다.


“그럼 우리도 갈래여”


결국 다 함께 커피를 사러 갔다. 일부러 바닷가 쪽으로 돌아서 갔다. 어둡고 비까지 와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카페로 가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 맞다. 여보. 오늘 00 쉬는 날이잖아”

“아, 그런가? 맞네”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다른 카페로 갔다. 아내가 커피를 꽤나 먹고 싶었던 듯했다.


“엄마. 같이 내려도 돼여?”


소윤이는 항상 물어본다. 장을 보러 가도, 커피를 사러 가도. 잠깐 들를 때도 빼먹지 않고 물어본다. 같이 내려도 되는지를. 어차피 5분도 안 되는 시간이고 계산하고 커피를 기다리는 것 뿐인데 그래도 내리고 싶나 보다. 별 일 아니기도 하지만 의외로 성가실 때도 있다. 아내나 내가 혼자 내려서 훌쩍 다녀오는 것과 세 자녀를 차에서 내렸다 태우는 건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난다. 오늘은 산책이 좌절된 아쉬움도 있으니, 기꺼이(?) 함께 내리는 것을 허락했다. 역시나 특별한 건 없었다. 주문한 커피가 만들어지는 걸 보며 카페의 공기를 3분 정도 흡입한 것 말고는.


집에 돌아와서 다 함께(아내까지 포함해서) 우노를 한 판 했다. 딱 한 판만 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육아 퇴근이 코 앞인 시간이라 여러 판 할 마음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내가 하자고 했으면 흔쾌히 응했을 테지만 아내가 한 판을 끝내고 바로 정리를 했다. 나도 굳이 더 제안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눕히고 운동을 다녀 오는 사이에 서윤이는 여러 번 깨서 나왔다고 했다. 그 중에 두 번은 똥과 함께. 요즘 낮잠이 늦어져서 밤에 금방 잠들지 않는다. 막내라, 게다가 언니나 오빠의 그 시절처럼 재워주지 않으니 매우 너그러운 자비를 경험하고 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얼른 자. 안 자면 엄마(아빠) 나갈 거야. 5분 뒤에 나간다”


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서윤이는 복 받았다. 아닌가, 그래도 엄마가 옆에 있을 때 함께 잠들고, 같이 자는 게 더 좋은가.


운동을 갔다 왔을 때, 아내는 아이들 공부방에서 아까 산 커피와 스콘을 먹으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영어 공부가 너무 행복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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