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 하면 유익한 무언가

19.02.01(금)

by 어깨아빠

소윤이랑 시윤이가 일어난 건 거의 8시도 안 됐을 때였던 것 같은데, 아내랑 내가 몸을 일으킨 건 9시 30분쯤이었다. 아내랑 나도 참 징하다, 징해. 새해는 아니지만 설 연휴의 첫날이니까 메뉴는 떡국. 지난번 첫 떡국 때처럼 소윤이, 시윤이, 아내까지 모두 잘 먹었다.


남들보다 하루 빠르게 시작된 연휴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 '평일날 하면 이득'인 무언가를 고민했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대신 '꼭 해야 할 일이지만 평일날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유효기간이 만료된 운전면허증 갱신. 최근 6개월 이내에 찍은 사진이 필요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문구점에 가서 뽑기로 했다. 아내가 사진을 찍고 어플을 이용해 배경을 삭제하는데 소윤이가 옆에서 끊임없는 질문 세례를 던졌다.


"아. 소윤아. 엄마 이거 하고 있잖아. 조금 이따 물어봐 줘"


요즘 소윤이는 이럴 때가 많다. 물론 최대한 성실하게, 열심히 답해주려고 하긴 하지만 어떻게 늘 그럴 수 있겠는가. 소윤이는 질문에도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면(엄마, 아빠가 대충 답한다고 느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어본다. 아내와 내가 소홀해지는 경우는 대부분 소윤이가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 물어올 때.


"아빠. 해는 왜 뜨는 거에여?"

"아빠. 오늘은 왜 비가 와여?"

"아빠. 설날은 언제에여?"


이런 질문이라면 없는 지식과 상식까지 짜내서 답해주지만, 소윤이의 호기심은 성역이 없다.


"아빠. 엄마한테 무슨 얘기한 거에여?"

"아빠. 누구한테 전화 온 거에여?"

"아빠. 사진 왜 찍는 거에여?"

"아빠. 면허증이 뭐에여?"

"아빠. 신체검사는 뭐에여?"

"아빠. 과태료는 왜 내는 거에여?"


으아아악. 넌덜머리 날 때가 참 많다. 미안하다. 소윤아. 어떤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야 하는데.


면허증 갱신하러 갈 때 소윤이를 데리고 갔다. 아내는 그 사이 시윤이를 재워보겠다고 했는데, 최근의 전적으로 보아 오늘도 실패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물론 아내의 사기 진작을 위해 굳이 초를 치지는 않았지만.


사진을 인화하려고 문구점에 들렀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이거 반지 하나 사도 돼여?"

"안 돼"

"왜여?"

"우리 그거 사러 온 거 아니잖아"

"그래도 이거 하나 사고 싶은데"

"안 된다니까. 그만"

"아빠. 이거 불빛도 나와서 엄청 이쁜데여"


문득 습관적으로 안 된다고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금액과 상관없이 요구하는대로 다 사주는 건 잘못된 소비 습관을 야기한다고는 하지만, 평소에 그렇게 허용적인 편이 아니라 '잘못된 소비 습관'까지 운운하는 건 너무 과한 것 같고. 고작 1,000원짜리 반지 하나, 그것도 예를 갖춰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박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윤아. 반지 하나 골라 봐"

"헤헤"


작은 리본이 달려 있고 스위치를 켜면 불빛이 반짝이는 걸 골랐다. 처음에는 그 위에 있는 500원짜리 반지를 만지작 거리더니 불빛에 매료되어 그걸 선택했다. 반지 하나에 기분이 잔뜩 좋아진 소윤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반지를 여러 손가락에 끼워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좀 크네. 그냥 작은 걸로 살 걸 그랬다"


생각처럼 손가락에 꼭 맞지 않는 게 내심 아쉬운 듯했다.


"소윤아. 줘 봐. 아빠가 좀 줄여줄게"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한번 줘 봐"


그냥 힘으로 꾹 눌러서 고리를 좀 작게 만들었다.


"아빠. 아까 보다는 더 잘 맞는다여"


면허시험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내내 반지 얘기였다.


"아빠. 이거 깜깜할 때는 더 이쁠 거 같져? 이따 집에 가면 방에서 불 끄고 껴보자여"


면허증과 면허증 갱신, 갱신기간 경과로 인한 과태료, 시력검사 등에 대해 폭발하는 소윤이의 호기심과 질문에 답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답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에게 전화해보니 역시 아내는 패배자였다. 아내는 차라리 밖에 나가 유모차를 태워 재울까 한다고 했다. 소윤이랑 나는 따로 점심을 먹고 들어가려다가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아(시윤이가 수월히 잠든다면) 아내랑 만나서 같이 먹기로 했다. 일단 동네로 갔다.


"소윤아. 뭐 먹고 싶어?"

"짜장면이랑 탕수육"

"맨날 짜장면이랑 탕수육이래. 다른 건?"

"짜장면이랑 탕수육 먹고 싶은데여"

"소윤아 다른 것도 좀 골라 봐"

"음. 고기 같은 거 튀긴 거여"

"고기 같은 거 튀긴 게 뭐야?"

"탕수육 같은 거여"

"소윤아. 어제 점심도 파스타, 저녁에는 우동, 오늘 아침에는 떡국. 밥을 한 번도 안 먹었잖아. 밥으로 골라 봐"


결국 주먹밥과 김밥을 골랐다.(고르도록 강요한 건가) 이럴 거면 먹고 싶은 거 왜 물어봤냐고 따져도 할 말이 없긴 했겠다. 아무튼 도착할 때쯤 아내에게 전화를 해보니 마침 시윤이도 막 잠들기 직전이라고 했다. 무사히(?) 시윤이를 재운 아내도 식당에 입성했다.


소윤이는 김밥, 주먹밥, 만두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대로 시켜주고 라볶이를 하나 추가했다. 소윤이도 잘 먹고, 아내랑 나도 맛있게 먹고, 시윤이는 잘 자고. 아내는 여전히 '평일날 하면 이득인 무언가'를 고심하고 있었지만, 이미 오후가 다 지난 마당에 그런 게 떠오른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식상하게도, 너무나 식상하게도 집 앞 단골 카페에 갔다.


아내 친구의 옛 직장동료이면서 우리 아파트 근처에 사는 아이(6살) 엄마를 만났다. 아내랑은 한두 번 만났던 사이였다.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난 잠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역할을 감당했다. 덕분에 좀 쉬었으니 좋은 건가. 막판에는 그 집 아들과 소윤이가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지켜보느라 추위에 조금 떨었다.


시윤이는 유모차에서 1시간 30분을 넘게 잤다. 그 불편한 데서도 잘 잤는지 기분이 좋았다. 오히려 소윤이가 졸려서 그랬는지 땡깡을 많이 피웠다. 나도 졸음이 가득한 상태라 평소보다 야박했다. 조금 컨디션이 괜찮았으면 조금 더 지혜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소윤아. 아빠 잠깐 들어가서 좀 잘 게"

"아. 싫어. 아빠 나랑 놀아"


너무 졸리기도 하고 다른 평일과는 다르게 하루 종일 같이 있었으니 그래도 될 것 같아서 슬쩍 던져 봤는데, 역시나 강력히 거부했다. 아내가 나의 변호인을 자청했다. 소윤이를 방에 데리고 들어가면서까지 설득(혹은 강권)해서 나의 쪽잠을 진행시켰다.


"여보. 애들 밥 먹일 때 깨워"


한 15-20분만 자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들어갔다. 거의 눕자마자 잠들었다.


"아빠. 일어나세여. 이제 교회 가야지여"

"어. 그래"


"소윤아. 아빠 일어났어?"

"깨웠는데 안 일어나네"


"여보. 일어나. 7시 20분이야"

"어. 알았어"


아내는 날 1시간 30분이나 재웠다. 고맙게도. 애들은 이미 저녁도 다 먹고 교회에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얼마나 달콤했던지, 쌓인 피로가 다 사라진 느낌이었다.


아내는 지난주의 고전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도 함께 교회에 가겠다고 했다. 지난주보다 애들 상태가 쌩쌩했다. 이게 득인지 독인지는 저 멀리 보이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금방 결론이 났다. 드럼을 치는 자리에서 보이는 아내의 모습은 [고됨] 그 자체였다. 어떻게 해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제 멋대로 하려는 시윤이, 그런 시윤이에게 고전하는 아내, 맏딸답게 의젓하게 앉아서 자리를 지키는 소윤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결국 아내와 아이들이 위층 자모실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찬양을 마치고 자모실로 갔다. 시윤이는 거의 폭군이었다. 자기가 하려는 걸 막아서거나 못하게 하면 빽빽 소리를 지르고 드러누웠다. 시윤아. 엄마, 아빠가 오늘 많이 울었어. 아, 단어를 하나 빼먹었구나. 엄마, 아빠의 주먹이 많이 울었다.


지난주 못지않은 고된 시간을 보낸 아내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육체의 고단함에 비해 영혼은 온전한 상태였다. 작은 보상이라면, 소윤이와 시윤이가 집에 오는 길에 잠든 것.


그대로 눕혀 놓고 아내랑 오랜 시간 수다를 떨었다. 수다의 끝무렵쯤이 되자 아내는 거의 자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보. 나 왜 이렇게 졸리지?"

"왜긴. 시간이 늦기도 했고, 여보 오늘 빡셌지"

"하긴 그렇구나"

"얼른 들어가서 자"

"그래. 여보. 뒤처리를 부탁할게"


아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평일날 하면 좋은 거'는 찾지 못했지만, 남편과 함께하는 평일이 나름의 특별함이 아니었을까, 남편 스스로 자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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