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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8. 2023

긴 육아, 깊은 피로

23.02.16(목)

오래간만에 늦게 퇴근했다. 퇴근이 늦은 만큼 아내의 얼굴도 메마른 듯했다. 아이들은 막 씻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아내는 단출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차렸다. 아내도 저녁을 안 먹었다고 했는데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다고 했다. 긴 육아로 인해 ‘만사가 귀찮은’ 상태가 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시윤아. 아빠 옆에 앉아서 말동무 좀 해 드려”

“말동무가 뭐예여?”

“아빠의 대화 상대가 되라고”


혼자 밥 먹는 걸 싫어하는 나를 위해 아들을 앉힌 거다. 아내는 뒷정리 하고 소윤이와 서윤이 씻기느라 바빴다. 사실 시윤이가 굳이 옆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되지만, 막상 앉아 있으니 좋긴 했다. 오늘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등의 일상을 나누며 밥을 먹었다. 시윤이도 억지로 앉아 있는 건 아니었다. 고맙게도.


잠깐 문구점에 다녀왔다고 했다. 소윤이가 교회 친구의 선물을 사야 해서 다녀왔다고 했다. 그 외에도 시윤이와 서윤이도 자기는 뭘 샀는지 얘기했고, 아내도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사실 집중해서 듣지 못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일정을 보내고 와서 잠시 진이 빠지고 정신이 머엉 했다고 해야 할까. 문구점에 왜 다녀왔는지를 두 번 물어보기도 했다.


“아 맞다. 아까 얘기했지”


공부방 문이 잠겨 있었다. 서윤이가 장난을 치느라 잠그고 문을 닫았다고 했다. 오전에 그런 일이 생겼고 아내는 바로 나에게 얘기했다. 사실 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떻게든 열리지 않을까 싶었고 정 안 되면 기술자를 부르면 되니까. 아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메시지에서도 초조함을 비롯한 어떤 불안한 감정이 느껴졌다. 집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숨을 푹푹 쉬며 ‘아직 못 열었다’고 얘기했다. 아내도 많이 시도했던, 유튜브에 나오는 방법대로 페트병 쪼가리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해 봤는데 바로 열렸다.


“여보. 열렸네?”

“진짜? 내가 할 때는 안 되던데. 여보가 힘이 더 셌나 보다”

“그런가”


다행이었다. 방 문이 열린 것보다 아내가 평정심을 찾은 게.


서윤이는 오늘도 자러 들어가서 소곤소곤거렸다. 모르는 척 하다가 들어가 봤더니 소윤이가 서윤이 옆에 누워 있었다.


“소윤이 왜 거기 누웠어?”

“서윤이가 내려 오라고 해서여”

“너무 떠들지 말고 얼른 자. 알았지?”


언니를 부르는 서윤이나, 동생이 부른다고 내려 온 소윤이나 뭔가 보기가 좋았다. 소윤이도 2층에서 자는 게 외로우니까(?) 한참 어린 동생 옆이라도 간 거다. 서윤이는 매번 가장 늦게 잠드니까 언니를 말동무 삼으려고 했던 거고. 바로 자라고 하지도 않고 ‘너무 떠들지 마’라는 애매한 지침만 주고 나왔다. 자비와 자율을 허락한 거다. 다만 너무 늦게까지 안 자고 떠들었다. 중간에 몇 번 더 들어가서 ‘이제 너무 늦었으니 더 이상 얘기하지 말고 자는 게 좋겠다’라고 얘기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약간 엄하게 얘기했다. 그제야 조용해졌고.


아내와 나는 오래간만에 아이들 어릴 때 사진과 영상을 봤다. 시윤이가 인상적이었다. 시윤이의 전성기 시절이랄까. 아내와 나의 위로가 되었던. 물론 나에게는 여전히 그럴 때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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