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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9. 2023

저 혼자 있고 싶어요

23.02.19(주일)

서윤이는 오늘도 아내와 내가 앞에서 찬양 할 때는 K의 아내와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유일하게 옆자리에 앉는 게 가능한 K의 아내라서 큰 저항(?)이 없는 줄 알았다. 나중에 K의 아내에게 들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서윤이는 기껏 배려해서 자기 옆으로 온 K의 아내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했다.


“00이모. 저 혼자 앉고 싶어여어”


무슨 마음이었을까. 정말 혼자 앉아 있고 싶었을까 아니면 괜히 그러는 것이었을까. K의 아내는 진짜 혼자 앉게 둬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일단 계속 앉아 있었다고 했다.


서윤이는 오랜만에 예배 시간에 잠들었다. 꽤 초반에 잠들었기 때문에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을 때는 깰 줄 알았는데 계속 잤다. 자리를 옮겨서 바닥에 눕혔는데도 깨지 않았다. 아내와 내가 밥을 다 먹고 나왔을 때도 여전히 잤다. 바로 오후 예배 찬양 연습을 해야 했다. 너무 오래 자니 그것도 곤란했다. 자는 거야 큰 상관이 없었는데 점심을 먹이는 게 문제였다. 일단 밥과 김만 챙겨서 예배당으로 갔다. 서윤이는 그때 깼다. 밥에 김을 싸서 그릇에 두고 서윤이에게 집어 먹으라고 했다. 서윤이는 아내와 내가 연습을 하는 동안 열심히 집어 먹었다.


오후 예배를 드리고 난 뒤에는 목장 모임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토록 원하는 ‘3층’에 가서 놀았다(3층에 가서 놀 때, 대체로 좋은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웬만하면 가지 못하게 하는데 오늘은 아내가 거기서 목장 모임을 했다). 서윤이는 나와 함께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서윤이도 딱히 엄마나 언니, 오빠를 찾지 않았다. 내 옆에서도 잘 있었다. 그러다 목장 모임이 끝날 때쯤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자기도 언니와 오빠가 있는 3층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목장 모임을 마치고 나서는 성경공부 모임을 했다. 서윤이와 시윤이, 소윤이는 여전히 3층이었고, 아내도 거기 있었다. 아마 목장 모임을 마치고 나서도 조금 더 있었던 듯했다. 성경공부 모임 중간에 아내와 아이들이 1층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성경공부 모임을 마치고 보니 아내와 K의 아내, 그리고 함께 성경공부 모임을 한 또 다른 지인의 아내가 모두 K의 집에 갔다고 했다. 우리(나와 K, 또 다른 지인)도 K의 집으로 향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만 있었다. 서윤이와 아내는 잠깐 집에 들러서 뭔가 가지고 온다고 했다. 아내와 서윤이도 곧 왔다. 자녀들만 여덟 명이었다. 무척 소란스러웠다. 소리 지르는 자녀, 뛰어다니는 자녀, 떼 쓰는 자녀, 우는 자녀, 우는소리로 얘기하는 자녀. 다채로운 소음이 난무했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업무 피로도가 얼마나 높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녀들 먼저 저녁을 먹였다. 교회에서 싸 가지고 온 미역국에 밥을 말아주고, 어제 아내가 만든 장조림도 줬다. 밥을 먹고 영상(만화)을 하나 보여 준다고 했더니 다들 성실하게 밥을 먹었다. 지체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시윤이도 엄청 금방 먹고 내려간다고 해서 조금 더 먹으라고 했다. 아프고 나서 한동안 양이 준 것 같더니 최근에는 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할 때가 많았다. 먹고 나서 노는 시간이 있으면 대체로 밥을 후딱 먹어치우고 끝낸다. 자기 양보다 훨씬 조금만 먹고.


어른들이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을 때, 자녀들은 영상을 보기 위해 거실에 모여 앉았다. 갑자기 다른 공간이 됐다. 난무하던 소음이 모두 사라지고 엄청 고요해졌다. 밥 먹을 맛이 났다. 자녀들에게 틀어 준 영상은 꽤 길었다. 극장판이라 거의 한 시간은 됐나 보다. 덕분에 부모들은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었다. 자녀들보다 어른들이 집에 가야 하는 걸 더 아쉬워했다.


꽤 늦은 시간에 귀가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샤워를 했다. 하루 종일 실내에서 하도 뛰어서 땀이 많이 났다. 땀으로 떡이 진 머리를 보니 그냥 재우기 어려웠다. 역지사지다. 나였어도 정말 찝찝했을 거다. 아직 떡이 질 만큼 머리가 없는 서윤이는 간단히 세수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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