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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9. 2023

원하는 게 있을 때는 대안까지 준비해라

23.02.20(월)

출근한 지 얼마 안 돼서 다시 집으로 왔다. 아침에 전기공사 기술자 분이 집에 오기로 하셨다. 요즘 자꾸 차단기가 떨어져서 불렀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갑작스러운 아빠의 퇴근에 깜짝 놀랐다.


“아빠. 왜 이렇게 일찍 왔어여?”

“아, 퇴근한 거 아니야. 다시 나갈 거야”


아내는 아이들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아보카도 계란밥이었다. 흔하게 먹어서 그렇지 굉장히 부유한 아침 음식이다. 공사(?)는 금방 끝났다. 일단 차단기만 바꿨다. 아이들은 밥을 다 먹고 아내와 함께 체조를 했다. 처치홈스쿨로 모일 때도 가장 처음 하는 게 체조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집에서도 체조로 공식 일과를 시작한다고 했다. 소윤이는 열심히 따라 했고, 시윤이는 뺀질거렸고, 서윤이도 나름대로 열심히 따라 했다. 아이들이 체조 하는 걸 보고 다시 집에서 나왔다.


오후에는 카페에서 일을 했는데 퇴근할 무렵에 아내와 아이들이 카페로 왔다. K의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왔다. 아직 일을 다 끝낸 건 아니어서 아내들과 자녀들은 일단 다른 카페로 갔다. 나와 K도 조금 더 일을 하다가 그쪽으로 옮겼다. 원래 산책을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날이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고, K의 막내는 너무 어려서 안에 있었다. 나머지 자녀들도 안에 있었는데 곧 밖으로 뛰쳐 나갔다. 서윤이도 얼마 안 돼서 깼다. 일어나자마자 자기 몫으로 남겨진 빵을 먹고는 밖에 나가겠다고 했다. 너무 춥기도 했고 계단 지형이 많은 곳이라 불안해서, 된다고도 안 된다고도 대답을 안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는데, 서윤이가 먼저 얼렁뚱땅 나갔다. 앉은 곳에서 다 보이는 곳이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엄마. 오늘 우리 여기서 헤어져여? 저녁 같이 먹으면 안 돼여? 같이 우리 집에 가서 먹으면 안 돼여?”


밖에서 놀던 소윤이가 들어와서 얘기했다. 소윤이는 여러 안까지 제시했다. 집에 있는 반찬으로 먹거나 오리 불고기를 사서 들어가거나. 소윤이의 패기(?)에 어른들이 못 이기는 척 소윤이의 뜻을 따라줬다. 집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집에 있는 반찬을 끌어 모아서 먹으려고 했는데 K의 아내가 집에 들러서 파스타 재료를 챙겨왔다. K가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자녀들은 바로 보드게임을 꺼냈고 어른들은 저녁 준비에 돌입했다. 자녀들부터 밥을 줬다. 반찬은 불고기 뿐이었지만 괜찮았다. 장모님께서 남기신 유산이었다. 맛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자녀들의 식욕이 왕성하면 양이 조금 부족할 것 같았다. 밥도 불고기도. 다행히(?) 그런 자녀는 없었다. 자녀들을 먹이고 어른들도 먹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자녀들은 계속 보드게임을 했다. K는 아직 보드게임에 참여하기 어려운 둘째의 대리인으로 계속 함께 했다. 시윤이도 아직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난 참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잠시 멀리고 있고 싶었다.


오늘은 늦게까지 함께 있지는 않았다. K네 식구가 가자마자 바로 잘 준비에 돌입했다. 시윤이는 두어 번 울었다. 한 번은 까불다가 서윤이한테 걸려서 넘어져서 울었고, 한 번은 나와 장난을 치다가 내가 간지럼을 피우니까 울었다. 시윤이는 울 때 정말 크고 슬프게 운다는 걸 새삼 느꼈다. 소윤이처럼 흑흑거리면서 삼키는 울음이 아니었다. 폭발시키는 울음이었다. 아기처럼 우는 것 같아서 귀엽기도 하지만 짜증이 섞였을 때는 듣기 어렵기도 할 거다(아마 아내는 전자는 전혀 동의하지 않을 거고, 후자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아이들과 방바닥을 뒹굴며 놀았다. 엄마에게는 충족하기 어려운 과격한 놀이 욕구를 해소하는 차원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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