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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9. 2023

전지적 관찰자 시점의 육아

23.02.21(화)

서윤이는 요즘 매일 안방으로 온다. 어떤 날은 서윤이가 오는 소리에 깨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알아서 침대로 올라와서 잔다. 바닥에 이불을 펴 놓으면 아마 거기서 잘 텐데 요즘은 이불을 안 펴 놨다. 서윤이 나름대로의 양심(?)인지 아내와 나 사이로 오지 않고 꼭 발 밑 쯤에서 잔다. 침대 끝이라 그게 더 위험한데. 서윤이 오는 소리에 깨더라도 돌려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히려 반길 때도 많은 것 같고.


“시윤이로 인해 언성 높이며 일어났네 또”


드문 일이었으면 좋겠지만 드문 일은 아니다. 어떨 때는 일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고.


점심 무렵에는 밥과 간식을 먹는 아이들 사진을 받았다. 2층 침대에서 이불과 매트를 가지고 텐트를 만들어 노는 모습도 함께 있었다. 사진만 받아 보는 나에게는 낭만이자 행복 그 자체였다. 관망하는 육아의 아름다움이랄까. 뛰어드는 육아의 힘겨움은 아내의 몫이었다.


조금 일찍 퇴근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 없었다.


“여보. 어디야?”

“여보. 혹시 집이야?”

“어”

“연락을 왜 안 했어”

“어딘데?”

“우리 여기 지금 00 앞이야. 잠깐 나왔어”

“아 그래?”

“여보도 이쪽으로 올래요?”

“어, 알았어”


아내와 아이들은 동네에 있는 빵 집 근처라고 했다. 금방 만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를 향해 뛰어왔고, 유모차에 탄 서윤이는 멀리서 환한 웃음을 날렸다. 바람도 쐬고 빵도 살 겸 나왔다고 했다. 의외로 빵 봉지가 빈약했다. 요즘 긴축재정을 가동하고 있는 아내의 의지가 담긴 빵 봉지였다. 대신 시윤이가 아내를 위해 빵을 하나 샀다. 시윤이는 용돈이 없다. 이렇게 저렇게 모은 전재산 2,100원을 털어서 엄마의 빵을 샀다. 이처럼 다정한 아들이지만, 집에서 나오기 전에는 오늘도 아내와 진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자세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시윤이가 아내에게 했던 얘기로 미루어 짐작은 가능하다.


“엄마가 나를 돼지고기로 만들려고 하나 봐아아악!!!!!”

“이럴 거면 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게 낫겠어어어어억!!!!”


대충 이렇게 얘기하며 소리를 질러댔다고 했다. 아내는 엄청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시윤이의 맥락 없는 악다구니에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소윤이는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빵과 쿠키를 사 줬다. 소윤이는 선물 사 주는데 용돈을 주로 쓴다. 아까워 하지도 않는다. 서윤이는 마치 자기 돈인 것처럼 당당하게


“언니. 나 선물 사 줄 거지?”


라고 요구하고.


바닷가 쪽으로 산책을 했다. 길이 잘 난 곳이 아니라 자갈과 모래, 돌멩이가 가득한 곳을 지나야 해서 얇은 바퀴의 유모차로 전진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예 못 갈 길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날씨도 경치도 너무 좋았다. 해가 지니 꽤 쌀쌀하긴 했지만 참고 견디는 게 당연할 만큼 좋은 풍경에 매료됐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마음껏 뛰었고 나와 아내는 뒤에서 그런 자녀들의 모습과 우리가 처한(?) 이 상황(멋진 날씨, 멋진 풍경, 보기만 해도 흐뭇한 자녀들)을 즐겼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해가 보였는데 점점 사라졌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나니 체감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많이 걷기도 했다. 한 시간 반을 걸었다. 추운 바람을 많이 맞고 집에 들어오니 몸이 노곤했다. 저녁은 치킨을 곁들이기로 했다. 선물 받은 쿠폰이 있었다. 피자 쿠폰도 있어서 피자도 시키려고 했는데 휴무였다. 치킨만 먹기에는 양이 부족하니 삼겹살 몇 덩이도 함께 구웠다. 밥과 치킨, 삼겹살이 오늘의 저녁이었다.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역시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많기는 커녕 시윤이는 마지막 한 조각의 치킨까지 살뜰히 먹었다. 더 있었으면 더 먹었을 거다. 다 먹고 나니 또 병이 도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견디다 견디다 견디지 못하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나 여기서 좀 졸게”


식탁 의자에 앉아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잘 준비를 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다 들리긴 했지만 마치 마취를 한 것처럼 몽롱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잘 준비를 마쳤을 무렵에도 여전히 비슷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는데 좀처럼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모든 걸 끝내고 방에 들어가서 누울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피곤한 건 여전했다.


“아우, 서윤아. 아빠 너무 졸리다. 그냥 여기 서윤이 옆에 누워서 잘까”

“네. 아빠. 저 옆에서 누워서 자여어”


평소에 아내와 함께 있으면 대체로 나를 찬밥 취급하더니, 아쉬울 때는 나도 간절한가 보다. 서윤이는 약간 기대하는 목소리로 자기 옆에서 자라고 했다.


아이들을 모두 눕히고 거실에 나와서 꽤 깊이 고민했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바로 자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할까 고민을 했지만, 결국 그러지는 못했다. 운동도 갔다 오고 일기도 썼다.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왜 이렇게 졸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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