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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21. 2023

놀 때 다르고, 놀고 나서 다르고

23.02.22(수)

요즘은 첫 알람이 울릴 때 일어나지를 못한다. 분명히 깨서 정신을 차렸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다. 그래도 신기하게 늦지 않을 만한 시간에는 꼭 깬다. 그럼 보통 소윤이와 시윤이도 일어나거나 먼저 일어나서 소곤거리고 있다.


“잘 잤어?”

“네. 아빠. 아빠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났어여?”

“그러게. 좀 늦었네”


서윤이는 어제도(오늘이라고 해야 하나) 아내와 나 사이를 파고들었다. 서윤이 때문에 몇 번씩 잠이 깨는 것도 내 피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막상 서윤이가 옆에서 자고 있으면 좋긴 하지만.


오전에는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수요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심하게 졸았 아니 잤다. 소윤이가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물어보기도 했다.


“아빠. 많이 피곤해여?”

“그러게. 너무 피곤하다”


점심도 함께 먹었다. 처치홈스쿨 엄마 선생님들과 자녀들이 김밥을 먹는다고 해서 나와 K도 함께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바로 교회에서 나왔다. 오후 일정은 다른 곳에서 있었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려고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저 오늘 제자반 급 취소됐는데 혹시 저 좀 나갔다 와도 될까요?”


어차피 나가야 했던 밤이었으니, 취소가 됐더라도 나가겠다는 말이었다. 사실 아내도 절차상 얘기했을 거다. 내 기억에는 거절한 적이 없다. 아내가 원하면 항상 수긍했다. 그러니 아내도 형식적으로 물어본 건 아니었겠지만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아내는 열심히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 집에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계속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좋았을 거고, 아내도 딱히 안 좋을 건 없지만 그렇다고 엄마 선생님들끼리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려웠을 거다. 독박육아가 힘든가 모여서 하는 독박육아가 힘든가 정도의 차이였을 거다. 그래서였을까. 아내는 나가서 하루 종일 같이 있었던 엄마 선생님들을 다시 만난다고 했다.


아내는 저녁을 다 먹고 나서도 잽싸게 나가지 않았다. 다른 엄마 선생님들과 시간을 맞춰야 하기도 했지만 잔뜩 남은 설거짓거리를 그대로 두고 나가려니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고 했다.


“얼른 나가. 이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빨리 나가도 고작 2-3시간이었다. 아내가 누리는 자유의 시간은.


오늘도 소파에서 위기를 맞았지만, 아내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 더 정신력을 발휘해서 금방 정신을 차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밥 먹을 때부터 엄청 피곤해 보였다. 그에 비해 서윤이는 쌩쌩해 보였다. 낮잠을 늦게 잤나 싶었는데 그렇게 늦게 잔 건 아니라고 했다. 요즘은 자러 들어가면 주로 서윤이가 까분다. 언니와 오빠가 잠드는 걸 방해할 때가 많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서윤이의 장난이 싫지 않으니 받아줄 때가 많고, 그러다 보면 나한테 혼이 나기도 하고.


“오늘은 떠들지 말고 바로 자. 알았지?”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나름대로는 속닥거리는 거겠지만, 참 잘 들린다. 그 소리 말고 다른 소음이 없으니까.


“얼른 자. 강서윤. 소곤거리지 말고”


서윤이인지 확인도 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었다. 아마 서윤이가 소곤거린 게 아니었다면 서윤이는 바로 이렇게 얘기했을 거다.


“아빠. 저 얘기 안 했어여어. 오빠가 얘기한 거예여어”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서윤이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왜 우나 싶어서 거실로 불러냈더니 눈물을 흘리며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서윤아. 왜 울어?”

“이이이이이이잉”

“왜? 왜 울어?”

“부딪혔어여어”

“어디를?”

“천장에”

“천장? 천장이 무슨 말이야?”


서윤이가 뭐라고 추가 설명을 했는데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방 안에 있는 소윤이가 대신 설명을 해 줬다. 핵심 골자는 서윤이가 시윤이가 자는 1층 침대에 올라갔다가 위쪽에 머리를 박았다는 말이었다.


“서윤아. 너 오빠 자는 침대에 들어갔어? 누워 있지 않고?”


서윤이는 당황하는 표정으로 답을 대신했다.


“얼른 들어가서 자. 일어나지 말고”


서윤이는 별 말을 하지 않고 순순히 들어갔다. 자기가 어디서, 왜 박았는지는 잠시 잊고 나왔다가 아빠의 물음에 번뜩 정신이 들었는지, 바로 다시 들어가서 누웠다.


아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했다. 나가기 전에는 몸이 좀 피곤하고 무거워서 고민스러웠는데 막상 나갔다 오니 좋았다고 했다. 놀 때는 잠시 자취를 감췄던 피곤이 집에 돌아오니 바로 존재감을 드러냈는지 금세 피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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