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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18. 2023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남이 해 주는 밥

23.02.18(토)

모두 곤히 잠든 고요한 아침에 홀로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토요일의 첫 일정은 언제나 축구다. 특별히 오늘은 챙겨야 할 게 더 많았다. 축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지 않고 바로 일을 하러 가야 했다. 일 할 때 들고 다니는 가방을 비롯해서 축구를 마치고 갈아입을 옷도 챙겨서 나왔다.


축구를 끝내고 바로 사우나로 갔다. 축구도 하고 사우나도 하니 마치 나는 놀면서 아내에게는 주말에도 독박육아를 선사하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런 건 아니었다. 일을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으니까. 아내와 아이들은 잘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있다고 했다.


“여보. 힘내”


힘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해 줄 말은 그것 뿐이었다.


저녁에는 교회에 가야 했다. 찬양단 연습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교회에 가니 다섯 시가 넘었다.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 모두 식당에 있었다. 푸짐한 저녁 상이 차려져 있었다. 여러 모로 고맙고 반가운 저녁 상이었다. 있는 걸로 대충 차린 게 아니라 제대로 준비한 저녁 상이었다(전도사님이 생일이었다). 내 배를 채우는 차원에서도 좋았고, 아이들의 저녁을 해결했다는 것도 좋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연습이 끝나고 저녁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도 해야 했고, 차려 먹든 밖에서 먹든 꽤 큰 과업을 수행해야 했다. 그게 사라진 거다. 엄청난 일이다. 육아인에게 누군가 저녁을 대신 담당해 준다는 건.


소윤이와 시윤이는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예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난 아내와 서윤이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서윤이가 가장 적극적으로 날 반겼다. 축구와 사우나, 그리고 일까지 더해지면서 은근하고 묵직한 피로감이 느껴졌는데, 밥을 먹으니 좀 사라지는 듯했다. 서윤이는 잘 안 먹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 시간 전 쯤 교회에 왔는데 서윤이는 나오기 직전에 점심을 먹었다고 했다. 낮잠이 늦어서 그랬다고 했다.


찬양단 연습은 예배당에서 했다. 자녀들은 마치 운동장에 온 듯 마음껏 뛰어다녔다. 지나친 소란스러움과 고성이 난무했다. 하지 말라고 하거나 자제시키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그냥 뒀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듣기(보기) 힘들어서’라는 이유만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왠지 명분이 서지 않았다. 자녀들은 정말 질주하듯 뛰어다녔다. 막내부터 최고령(?)까지.


찬양 연습까지 마치고 나니 피로의 무게가 한층 무거워졌다. 커피도 엄청 마시고 싶었다. 하루 종일 한 잔도 안 마셔서 더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한 잔씩 샀다.


“여보. 저녁을 먹고 온 게 진짜 너무 좋네”


새삼 엄청난 일이었다. 저녁을 해결하고 오다니.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자녀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씻겨서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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