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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21. 2023

하루 종일 촘촘하게

23.02.25(토)

신기하다. 토요일에는 그 새벽에도 눈을 뜰 수 있는 의지가 발휘되는 게. 발휘하는 게 아니라 발휘되는 거다. 고요함 속에 일어나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차로 30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축구장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열심히 축구를 했다. 일어날 때마다 ‘아, 그냥 조금 더 자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 번도 더 잔 적이 없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홀로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이미 아이들 아침을 다 먹이고 교회에 갈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아이들 옷까지 모두 꺼내 놓고 나서야 머리를 감으러 들어갔다. 오전에 교회 대청소가 있어서 가야 했다. 아내는 청소 도구를 사서 가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 준비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트에도 들르면 늦을 테니 아내가 혼자 가서 사 오겠다고 했다.


“그럼 그냥 여보는 차 타고 교회로 가. 나는 애들이랑 걸어갈게”

“그럴까?”


순탄하지 않았다. 소윤이는 그냥 차를 타고 가고 싶다고 했고 시윤이는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서윤이도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럼 소윤이는 차 타고 가고, 시윤이랑 서윤이는 걸어가면 되겠네”

“아마 시윤이도 같이 차 탄다고 할 거 같은데”


아내의 예상대로였다. 아내의 시간 단축을 위해서 혼자 휘리릭 다녀오려고 했던 건데 아무리 소윤이, 시윤이라도 자녀가 둘이나 붙으면 기동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시윤이에게 ‘어차피 누나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차만 타고 가는 거’라고 얘기했지만, 그래도 자기도 차를 타고 가고 싶다고 했다. 시윤이에게는 걷느냐 차에 타느냐 보다 누나만 엄마와 가느냐 자기도 함께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했다.


“얘들아. 그럼 그냥 엄마, 아빠가 알아서 결정할게. 너희들끼리 그렇게 뜻을 못 좁히면 어쩔 수 없지”


애초의 구상대로 아내는 혼자 먼저 출발하고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걸어 가기로 했다. 아내가 먼저 나갔고 난 아이들을 챙겨서 뒤늦게 나오려고 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벌써 필요한 걸 다 사고 나오는 길인데 다 함께 차를 타고 가겠냐는 내용이었다. 그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또 서윤이가 난리였다. 자기는 걸어가고 싶다면서.


“알았어. 서윤아. 그럼 서윤이는 아빠랑 걸어가고 언니랑 오빠만 차 타고 가라고 하자”


울음 섞인 소리가 쏘옥 들어갔다. 그러다 막상 집 앞에서 차에 타는 언니와 오빠를 보니 고민이 되는 듯, 선뜻 유모차에 오르지 못했다. 서윤이는 1분 정도 갈팡질팡 하더니 결국 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교회까지 고작 5분이다.


교회 대청소를 마치고 나서 처치홈스쿨 식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먹었다. 총 네 가정, 어른 여덟에 자녀 열 명이었으니 전쟁통이 따로 없었지만 익숙했다. 아이들 밥 나눠서 떠 주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는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만 공원에 가서 놀았다. 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지만 꽤 오래 놀았다. 자녀들이 자꾸 아빠들을 호출하며 자기들을 잡아달라고 해서, 아빠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희생(?)했다.


저녁에 좀 멀리 가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을 모두 씻겨야 했다. 저녁 일정이 마냥 편하게 가는 자리는 아니라서 약간의 단장이 필요했다. 단장은 고사하고 자녀들의 상태가 퍽 꼬질꼬질 했다. 아내가 자녀들을 씻기고 준비했다. 난 소파에 앉아, 뒤늦게 찾아 온 축구와 청소의 피로를 온 몸으로 맞으며 졸았다.


차로 두 시간 가까이 가야 했다. 가서 저녁을 먹었다. 어느 목사님, 사모님 부부와 함께 먹었다. 음식은 오므라이스였다. 밥을 먹고 딸기와 키위를 주셨는데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무섭게 먹어치웠다.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말과 행동은 쭈뼛쭈뼛 하면서도 포크는 멈추지 않았다. 어떤 분이 직접 만든 쿠키도 주셨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다 잘 먹었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는 무려 세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물론 앉은 자리에서 조금씩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자리를 지키며 세 시간을 버텼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다 끝나고,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칭찬했다. 잘 앉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시윤이는 잠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끝까지 잠들지 않았다. 열 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셋 모두 타자마자 잠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거의 열 두 시였다. 매우 오랜만에 씻기지 않고 옷만 갈아입혀서 그대로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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