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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22. 2023

아파도 점심은 못 참는 건데

23.02.26(주일)

아침에 몸이 엄청 무거웠다.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 피곤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훨씬 더 묵직했다. 힘겹게 준비를 하고 집에서 나왔다. 아이들은 거의 아내가 다 맡아서 준비를 시켰다. 교회에 가서 종이컵에 일회용 티백을 넣고 따끈한 차를 한 잔 마셨다. 100도까지는 아니어도 85도는 되는 물이었는데 ‘더 뜨거웠으면 좋겠다’, ‘텀블러에 받아서 계속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넘쳤다. 직감했다.


‘나 아플 거 같은데?’


찬양 반주를 마치고 자리에 앉는 순간 예감은 현실이 됐다. 전형적인 몸살 기운이었다. 기침도 많이 하고, 몸에 기운도 없고. 열은 없었다. 어제 아내가 오늘의 점심 음식이 무엇인지 얘기해 줬다. 쇠고기 뭇국, 소시지 볶음, 메추리 알 장조림이라고 했다. 어제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내린 나의 평가는 이랬다.


“여보. 그 정도면 고기 없어도 되는 메뉴인데?”


모두 나의 욕구를 자극하는 음식들이었다. 아픈 몸을 늘어뜨리고 설교를 들으면서 고민했다.


‘점심을 먹고 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바로 가서 쉬어야 하나’


뜨끈한 쇠고기 뭇국을 먹으면 몸이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갈 수록 몸은 더 안 좋아졌고, 1분 1초라도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진해졌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왔다. 쌍화탕과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바로 침대에 누웠고 곧장 잠들었다.


한 세 시간을 푹 잤다.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떴을 때는 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머리를 흔들어 봤는데 두통은 자기 전과 비슷했다. 전반적인 몸 상태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여전히 교회였다. 교회 집사님이 처치홈스쿨 식구들 모두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신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교회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듯했다.


정신을 차리고 얼마 안 돼서 아내가 왔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인데 내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러 온 거였다.


“여보. 좀 어때? 같이 갈 수 있겠어요?”

“어. 같이 가자”


사실 배는 전혀 안 고팠지만, 모임에 가고 싶었고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싫었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기도 했고. 아프다고 집에 갔는데 막상 식당에 가서 ‘전혀 안 아픈 사람처럼’ 먹는 거 아닌가 걱정 아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세 시간의 잠이 꽤 큰 보약이 되었는지 다행히 자기 전보다는 몸이 훨씬 좋았다. 자기 전이 한 20%였다면, 자고 난 후에는 한 60% 정도인 느낌이었다.


“아빠아. 이제 머리 안 아파여어?”


서윤이 목소리에 두통이 싹 사라지는 듯했다.


밥도 잘 먹었고 커피도 잘 마셨다. 몸이 다소 힘겨운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버틸 만했다. 카페에서는 자녀들이 바깥에 나가 뛰어 놀았는데, 미안하지만 난 계속 실내에 앉아 있었다. 다른 아빠들은 번갈아 나가서 아이들을 살폈다.


“오늘은 땀 별로 안 흘렸으니까 얼른 손, 발 씻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나와”

“네? 오늘이여? 땀 엄청 많이 흘렸는데여? 아까 교회에서 3층에서도 엄청 흘리고. 밥 먹을 때도 엄청 흘리고”

“아, 그랬나? 그래도 오늘은 그냥 간단히 씻자”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아내와 나에게 그럴 여력이 없었다.


집안이 난장판이었다. 쉴 틈 없이 바빴던 일정과 때아닌 나의 몸살이 겹친 결과였다. 아내는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 한참 동안 집안 이곳저곳을 치웠다.


“여보. 우리 그냥 내일까지 방치하자”

“아니야. 나 괜찮아. 치우면 돼”


아내 혼자 고생하는 게 미안해서 그냥 내일까지 그대로 두자고 했지만, 아내는 자기는 몸이 괜찮다면서 혼자 열심히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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