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Jul 22. 2023

반려견은 아직

23.02.27(월)

아내가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하면서 전화를 했다. 아내가 밝힌 사건(?)의 전말을 이랬다. 시윤이가 아내에게 뽀뽀를 하자고 했는데, 아내는 기침이 심해서 감기가 옮을지도 모르니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시윤이는 그때부터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는데 그 중 하나가 자기는 엄마와 눈을 안 마주칠 거라고 하면서 계속 눈을 안 마주치고 깐족거린다는 거였다.


“여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돼?”


아내는 감정이 동요하고 그런 건 전혀 아니라고 했다. 그야말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고 했다. 난 의외로 간단해 보였다.


“시윤이가 그렇게 하면 여보가 뭐 아쉬운 게 있어?”

“아니. 그렇지는 않지”

“그럼 그냥 냅둬. 아쉬우면 시윤이가 아쉽겠지. 시윤이가 스스로 사과하기 전까지는 무시해”


시윤이 특유의 자존심과 약간의 허세(?)를 다스려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꼭 시윤이 같았다. 아내는 나의 조언에 따라, 엄마로서 꼭 해 줘야 하는 일이나 말이 아니면 시윤이를 상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시윤이는 스리슬쩍 아내에게 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을 걸기도 했는데, 아내는 단호하게 ‘사과하지 않으면 엄마와 대화할 수 없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고 했다. 그러자 시윤이는


“아, 그럼 나도 계속 엄마랑 눈 안 마주쳐야지”


라고 하면서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고 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결국 시윤이는 네 시가 다 되어서야


“엄마. 아까 제가 죄송했어여”


라고 하면서 얄궂은 일곱 살의 자존심을 굽혔다고 했다. 난 아내에 비하면 (적어도 요즘은) 시윤이를 향한 애정이 훨씬 더 큰 듯하지만, 그래도 아들은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퇴근시간 무렵에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로 온다고 했다. 산책도 할 겸 나와서 걷는 거라고 했다. 나도 막 가방을 싸고 있을 때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이에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이 교회에서 키우는 강아지(두 마리)와 산책을 하러 가시려고 집에서 나오셨다. 잠시 후에 아내와 아이들도 교회에 도착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강아지에게 다가서서 친근하게 정을 나눴고, 서윤이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일주일에 몇 번씩 보니까 그렇지 원래 성격은 어떤 동물이든 무서워 하는 게 기본이다. 서윤이는 내 손을 잡고 함께 만져보자고 해도 못 만졌다.


“소윤아, 시윤아. 목사님이랑 사모님 잠언이랑 모찌랑 산책 갈 건데 같이 갈래?”


소윤이는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누나가 간다고 하자 시윤이도 그러겠다고 했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를 따라가고 싶었겠지만 아직은 엄마, 아빠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갑자기, 소윤이와 시윤이는 목사님, 사모님과 함께 산책을 갔다. 직접 강아지들의 목줄도 잡고.


나와 아내와 서윤이는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서윤이가 먹고 싶어하는 바나나를 샀다. 서윤이는 바나나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하면서 바나나를 먹었다. 언니와 오빠가 없어서 그런 건지, 평소보다 애교가 더 많았다. 말투와 억양에 애교가 가득가득 찼다. 나도 소윤이와 시윤이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서윤이의 애교를 누렸다(사실 요즘에는 평소에도 눈치 보는 걸 망각할 때가 많긴 하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한 시간 쯤 뒤에 돌아왔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무척 즐거워 보였다.


“아빠. 아까 모찌를 잠깐 풀어줬는데 오라고 해도 계속 안 와서 엄청 한참 만에 겨우 잡았어여”

“그랬어? 재밌었어?”

“네. 아빠. 그리고 잠언이는 오라고 하면 바로 오는데 모찌는 안 와여”


어렸을 때는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지금도 정말 멋진 강아지들을 보면 '와, 저런 강아지와 함께 살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은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실천으로 옮길 의지는 조금도 없다. 애초에 강아지를 키웠으면 몰라도. 지금은 반려인에 집중할 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산책을 하고 와서 그런지 저녁도 엄청 많이 먹었다. 난 몸 상태가 어제보다는 좋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았다. 특히 밤이 되니 체력이 고갈되고 피로가 몰려 오면서 더 힘들었다. 아이들이 씻고 잘 준비를 할 때 짜증을 좀 많이 냈다. 뭔가에 홀린 듯 애들이 눕고 나니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후회를 했다.


내일은 꼭 다 나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내와 밤에 치킨도 시켜 먹고 수다도 떨고 놀 수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파도 점심은 못 참는 건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