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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21. 2023

아내도 밥통도 열을 못 빼네

23.02.24(금)

아내에게 여러 번 전화가 왔다.


“어, 여보”

“그냥 했어요. 마음을 좀 식히려고”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시윤이의 울음소리 혹은 괴성이 배경음악처럼 들릴 때도 많았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육아의 기쁨을 대변하는 듯한 서윤이 사진도 받았다. 오랜만에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환하게 웃는 모습과 앞머리를 자르고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여러 자녀 사이에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기도 하고, 한 자녀만 놓고 봐도 즐거움과 고통이 교차하기도 하고. 다만, 요즘(이라고 하기엔 꽤 오래되었지만)은 시윤이가 아내에게 고통을 주는 나날이 조금 많을 뿐이다. 얼마 전 아내와 시윤이의 어릴 때 사진과 영상을 보다 보니, 시윤이가 아내와 나의 즐거움이자 기쁨이자 치유였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치열한 낮의 삶 때문이었을까. 오후가 되자 아내는 두통을 호소했다. 저녁에 철야예배 참석을 고민할 정도로 증세가 심했다. 약을 먹기는 했는데 가라앉을지 어떨지 모르는 상태였다. 퇴근을 조금 일찍 했다. 아내가 뭔가 몸이 안 좋아 보이기는 했다. 김이 꽉 찬 밥솥처럼 모락모락 증기를 내뿜는 느낌이었달까. 갑자기 한숨을 푹 쉬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압력밥솥의 추가 안 올라와서 그렇다고 했다. 식구들의 저녁을 망칠지도 모르니 추가 제대로 올라오고 김이 잘 빠지는 건 중요한 문제지만, 아내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더 좋았더라면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거다. 난 그냥 잠자코 있었다. 오늘은 그게 최선의 선택일 듯했다.


이번 주에는 철야예배 때도 찬양단을 해야 해서 다른 금요일보다 한 시간 정도 빠르게 교회에 갔다. 마침 K의 식구들도 교회에 와 있어서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아내와 내가 연습을 하는 동안 K의 보호 혹은 지도 아래 교회 로비에서 즐겁게 놀았다. 예배가 시작되고 나서도 세 남매는 K 부부의 보살핌 아래 얌전히 앉아 있었다. 소윤이, 시윤이야 보호자가 따로 없어도 잘 앉아 있었겠지만 서윤이는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다시 나가서 찬양을 하는데 서윤이가 아내를 따라 나왔다. 찬양에 열중한 아내는 처음에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아차리고 다시 자리로 돌려 보내려고 했지만 서윤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K의 아내도 나와서 달래 보려고 했지만, 결국 아내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서윤이와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아내가 커피를 사서 가자고 했다. 카페로 가는데 K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난 느껴졌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혹시나 여지를 줄 만한 무언가를 흘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게. 나중에 들어 보니 K 부부가 함께 치킨을 먹자는 제안을 했던 거라고 했다. 아내와 내가 밤에 준비할 게 있어서 응하지는 못했지만 무척 아쉬웠다. 치킨도 아쉽고 수다도 아쉽고. 예배의 힘이었는지 아내는 교회에 갈 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집에 와서도 아내는 부지런히 집안일을 했다. 집안일을 마치고 나서는 커피를 마시며 내일 일정을 준비했다.


소윤이는 집에 오자마자 크게 혼이 났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부터 몇 차례 주의를 줬는데 계속 같은 태도가 반복됐다. 게다가 잘못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무척 불량스러웠다. 소윤이는 무척 서럽게 울었다. 꽤 한참, 오랫동안. 충분히 바른 태도로 훈육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서럽게 우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상태로 침대에 누운 것도 그렇고.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글쎄. 자기가 그만큼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하는 거 아닐까? 근데 필요한 훈육이었지. 요즘 평소에도 저럴 때가 많았거든”


아내가 적절했다고 해 주니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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