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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ul 24. 2023

아빠에게 아들이란

23.03.01(수)

어제 아내와 내가 자기 전에 시윤이가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끙끙거리는 건지 짜증을 내는 건지 분간하기 어렵기는 했다. 평소에도 종종 잠꼬대로 짜증을 낼 때가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축구를 하고(오늘은 원래 축구를 하는 날이 아니지만, 갑자기 참여자 모집이 있었고 자원했다) 집에 돌아오기 직전에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니까 거의 열 시가 다 되도록 잔 거다. 드문 게 아니라 거의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만큼 어제 피곤했나 보다.


시윤이가 조금 심상치 않았다. 일어날 때부터 힘들어 하더니 계속 누워 있고 싶어 했다. 밥도 안 먹는다고 했다. 몸이 힘든 거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했다. 아이들 아침은 바나나와 빵 조금, 그리고 사과였다. 혹시나 공복이 너무 길어서 혹은 아침이 배를 채우는 데는 턱없이 모자란 건가 싶었다. 공복이 길어질 때 나타나는 증세와 비슷했다. 주스나 초콜렛을 먹어 보라고 했지만 먹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겨우겨우 주스를 조금 먹이기는 했다.


“시윤이 교회 못 가겠지?”

“어. 이대로면 못 가지”

“그럼 여보가 애들 데리고 갔다 올래요?”

“아니. 여보가 가”

“시윤이가 엄마랑 있고 싶어 할까 봐”

“어차피 이제 잘 거 같은데 뭐”


아내가 소윤이와 서윤이만 데리고 교회로 갔다. 시윤이는 바로 안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시윤아. 토가 나올 거 같으면 아빠한테 얘기 안 해도 되고 화장실 바닥에다 해도 되니까 일단 화장실로 가. 뭐 먹고 싶으면 얘기하고”


나도 나가려고 옷을 다 갈아입었는데 갑자기 여유로워졌다. 잠깐 소파에 앉아서 쉬다가 집안일을 시작했다. 우선 설거지부터 했다. 그때 시윤이가 일어나서 나왔다. 아마 잠깐 잠들었다가 깬 거 같았다.


“아빠. 배고파여”

“아, 그래? 그럼 계란밥 줄까?”

“네”


빠른 제공이 가능하면서 맛도 있고 시윤이도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물론 더 많겠지만, 내 머리에서 떠오르는 건 그게 유일했다. 시윤이는 밥을 먹기 전에도 조금 기운을 차렸는지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렇다고 확연하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밥은 잘 먹었다. 양을 조금만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 먹었다. 밥 먹고 10여 분 정도가 지나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직감적으로 먼저 느꼈고, 시윤이에게 확인 절차를 거쳤다.


“시윤아. 좀 괜찮아졌네?”

“네. 좀 괜찮아졌어여”

“그래? 이제 안 힘들어?”

“네”

“하나도?”

“음, 그런 거 같아여”


아내와 소윤이, 서윤이는 처치홈스쿨 식구들과 함께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을 더 보내고 온다고 했다.


“여보. 시윤이 좀 괜찮다네”

“아, 그래요?”

“어. 교회도 갈 수 있겠대”

“아 그럼 내가 데리러 갈까?”

“아니야. 그냥 걸어가면 되지”

“시윤이 힘들까 봐”

“괜찮을 거 같아. 지금은 완전히 멀쩡해”


난 시윤이에게 주고 남은 밥 아주 조금과 언제부터 냉동실에 있었는지 모르는 김밥 네 조각을 데워서 참치, 순무김치로 대충 점심을 때웠다.


시윤이는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실제로는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아픈데 참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다행이기도 하면서 어리둥절했다. 아무튼 시윤이는 교회에 가서 평소처럼 잘 놀았다.


교회에 한참 동안 있었다. 막내들은 낮잠도 자고 남편들과 첫째, 둘째들은 커피도 사러 다녀 오고.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교회에 있었다. 저녁은 함께 먹지 않고 헤어졌다. K네 가족은 장을 보러 마트에 간다고 했는데, 소윤이는 자기도 마트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가고 싶다는 의견이야 얼마든 밝힐 수 있겠지만, 소윤이는 함께 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울먹거렸다. 당황스러웠다. 예배 시간부터 계산하면 무려 여덟 시간 가까이 있었던 건데, 그래도 그렇게 아쉬울 수 있다니. 아니, 아쉬울 수야 있지만 눈물까지 흘리다니.


우리도 장을 보러 가긴 갔다. K네 가족과 함께 간 건 아니었고 잠깐 한살림에 들렀다. 한살림으로 가는 길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잠들었다. 여섯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그 시간에 소윤이가 잠든 게 매우 희귀한 모습이었다. 어제 늦게까지 놀았던 게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시윤이가 아침에 힘들어 했던 것도 퍼즐이 맞춰졌다. 늦은 낮잠을 잔 서윤이만 쌩쌩했다.


장까지 보고 집에 왔더니 꽤 늦은 시간이었다. 밥 먹여서 씻기고 자리에 눕고 나니 평소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서윤이만 혼자 쌩쌩했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긴 했다. 다른 날에도 가장 늦게 잠들 때가 많았다. 언니와 오빠에게 말을 걸거나 장난을 칠 때도 많고,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말을 할 때도 많고.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서윤이 혼자 공부방에 눕게 하는 강수(?)를 보여줬다. 사실 훈육의 목적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냥 서윤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다 용납이 된다. 서러워서 우는 것도 마냥 귀엽다. 무서웠는지 공부방에서도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다시 언니와 오빠가 있는 방으로 옮겨 줬다.


“강서윤. 이제 떠들지 말고 자야 돼요”

“네, 아빠”


아내와 나는 수시로 무언의 눈짓과 몸짓을 교환했다. 내용은 뻔하다. 숨만 쉬어도 사랑받는다는 막내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고 아내와 나도 자려고 준비하는데 시윤이가 깨서 나왔다. 몸 상태부터 확인했는데 괜찮다고 했다. 아침에 아팠던 게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단독자로 존재할 때 선명해지는(특히 아내에게) 시윤이를 향한 애정 때문이었는지, 시윤이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시윤아. 엄마, 아빠랑 같이 잘래?


사실 제안이 아니었다. 거절 확률이 0% 에 가까웠으니까. 시윤이는 아내와 함께 바닥에서 자겠다고 했다. 위치와 상관없이 내 옆에서 자는 건 선택받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시윤이는 아빠를 안 좋아하나 봐. 흑흑”

“아빠도 좋아하져. 근데 엄마랑 자고 싶어여”


무슨 짓(까지 한 건 아니지만)을 해도 1순위가 되지 못하는 아빠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윤이 혼자 안방에 와서 자는 건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시윤이에게 얘기했더니 시윤이도 맞는다고 했다. 시윤이는 이런 것도 밀리는구나. 오전에 시윤이 손을 잡고 교회에 가면서 데이트 얘기를 했다.


“시윤아. 이제 다시 축구가 개막했대”

“개막이 뭐예여?”

“아, 축구 경기를 다시 시작했다고. 저번에는 축구를 안 해서 농구를 봤잖아. 이제 다시 시작했다고. 다음에 데이트 할 때는 축구도 보고 목욕탕도 가자”


데이트 일정을 잡지도 않았는데 내가 벌써 설렜다. 딸만 있어도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아들과의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해지다니. 가능하다면 아빠들에게 아들 한 명 쯤은 꼭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명이면 충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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