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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27. 2023

생태친화적 밤산책

23.03.09(목)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나왔는데 날이 스산했다. 그저 우중충한 건가 싶었는데 비가 내렸다. 제법 세차게 내렸다. 차가 좀 멀리 있어서 K와 함께 비를 맞으며 걷다가 도저히 더 맞을 수 없는 정도로 많이 내려서 잠시 비를 피했다. 문득 ‘가방에 우산 없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방을 뒤져봤는데 작은 우산 하나가 있었다. 예전에 서울에 갈 때 아내가 혹시 모르니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챙겨둔 우산이었다. 아내가 챙겨주는 건 대체로 도움이 된다. 언젠가는.


아내와 아이들은 K의 아내와 아이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막 헤어졌다고 했다. 나와 K가 있는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동시에 각 부부끼리 연락을 해서 의견을 조율하고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내 아내와 K의 아내는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 비는 아까처럼 거세게는 아니어도 여전히 내리기는 했다.


아이들은 조금 전에 헤어졌는데 바로 다시 만나게 되니 더 반가워했다. 그대로 집에 가는 줄 알았는데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좋았을 테고. 아내의 제안으로 육개장을 파는 가게에 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만둣국이나 갈비탕도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K의 첫째는 아예 자리도 따로 앉혔다. 다들 흥분 상태라 수시로 평소에는 잘 안 보이는 말과 행동이 보이고, 밥 먹는 태도도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만 분리가 돼도 한결 밥 먹는 시간이 차분해진다. 게다가 K의 막내는 유모차에서 계속 자다가 거의 다 먹었을 때 쯤 깼다.


자녀들은 밥을 먹고 나서 바로 집에 가지 말고 조금이라도 놀다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놀이터에 가자고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후 내내 같이 놀았다. 비가 그치긴 했지만 놀이기구가 다 젖었을 터라 놀이터에 가는 건 적절하지 않았다. K가 근처에 있는 연못 산책을 제안했다. 차를 타고 5분 정도 이동해서 연못에 도착했다. 물가라 그런지 안개가 자욱한 것이 제법 분위기가 멋졌다. 조명과 보름달 덕분에 어둑어둑한 와중에도 은은한 빛이 잘 어우러졌다.


“어, 여기 개구리다. 엄청 큰 개구리다”


정말 큰 개구리였다. 엄마들은 커피를 사서 오느라 아직 오기 전이었다. 자녀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개구리를 관찰했다. 보통의 개구리도 보기 힘든데 그렇게 큰 개구리는 말 할 것도 없었다.


“어? 저기도 있다”

“저기도 저기도”

“여기도 또 있어”


눈을 돌리는 곳에 웬만하면 개구리가 보였다. 엄청 많았다. 연못도 있고 산도 있어서 그런 건지, 주차장부터 산책로까지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이 경칩이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개구리를 찾던 자녀들도 너무 많이 나오니까 조금 무서웠는지 조심스러워졌다. 엄마들은 말 할 것도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내 등에 뭐 있어”


유모차에서 뭘 챙기느라 쭈그리고 앉았던 K의 아내가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도 K의 둘째가 옆에 있다가 뭔가 접촉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너무 많은 개구리와 어스름한 분위기가 만들어 낸 공포심이었다. 심지어 도룡뇽까지 발견했다. 평소에 제법 허세가 있는 시윤이와 K의 첫째도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숲에서 뱀이나 멧돼지가 튀어 나오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까지 했다. 엄마들은 잔뜩 긴장을 하고 걸었다.


그래도 즐거운 밤 산책이었다. 생태친화적인 산책이었다. 시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집에 와서도 너무 피곤했는지 몸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계속 끙끙거렸다. 아마 내가 없었으면 엄청 짜증을 냈을지도 모르겠다. 대충 씻기고 옷만 벗겨서 바로 눕혔다. 시윤이는 그대로 잠들었다. 아내도 비슷했다. 엄청난 피로감을 호소했다. 머리도 살짝 아프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잔뜩 긴장한 산책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고, 아마도 피곤한 일상의 누적으로 인한 일반적인 피로반응이랄까. 아내는 오늘도 고군분투 했다. 여전히 쉽지 않은 시윤이의 말과 행동을, 긍휼한 마음과 사랑으로 받아내느라 많은 소모가 있었다고 했다. 내가 당장 분담하기 어려운, 오롯이 아내의 수고에 귀속되는 영역이다. 아내는 평소에 비하면 굉장히 이른 시간에, 자정을 넘기기 전에 두통약 하나를 먹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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