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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27. 2023

착한 아내, 건강한 남편

23.03.10(금)

어제 아이들 방에서 잤다. 아내가 두통과 함께 잠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깨지 않고 자길 바랐다. 아무리 부부여도 워낙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자는 남편이 있으면 수면의 질은 떨어지기 마련이니 내가 사라져야 한다는 의도도 있었고, 밤마다 안방을 향해 찾아오는 서윤이의 방해를 막는다는 의도도 있었다. 서윤이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옆에서 자면 안방으로 잘 가지 않는다. 사실 나도 좋기는 하다. 서윤이의 손과 발을 잡고 자는 기분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일상에서 손꼽을 만한 행복감을 느낀다.


시윤이가 이따금씩 끙끙거렸다. 요즘은 시윤이와 함께 잘 기회가 없다 보니 그게 잠꼬대인지 몸이 힘들어서 내는 신음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막연한 느낌으로는 ‘그냥 잠꼬대는 아닌 거 같은데’ 싶었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시윤이가 또 몸이 좀 힘든가 봐요”


얼마 전에 열이 나고 아팠을 때처럼 기운이 없다고 했다. 열은 나지 않았고. 걱정이 됐다. 혹시나 아내나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생각보다 심각한 병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윤이가 평소에도 자주 아프고 그랬으면 모르겠는데, 시윤이는 꽤 건강한 자녀였다. 그러던 녀석이 독감에 걸린 걸 기점으로 너무 자주 아프다. 보약이든 보양식이든 일단 기력을 좀 채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잠이 부족하고 피곤해서 그런 거라면 오히려 다행일 테고.


아내나 나의 걱정과는 별개로, 또 힘든 자신의 몸 상태와는 별개로 좋지 않은 말과 행동도 자주 보였다고 했다. ‘무조건에 가깝게, 받아주기’를 기본 노선으로 정하고 있는 아내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나의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내 나름대로 의견을 전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말’이었다. 그게 어떤 영역이든 이론과 현장의 괴리라는 건 항상 존재한다.


“말이야 말. 현장에 있는 여보가 제일 잘 알겠지”


아침에 아파 보였던 건 또 괜찮아졌다고 했다. 아무튼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먹는 것도 많이 줄기는 했다. 오늘 철야예배는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시윤이는 집에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소윤이가 막 울음을 그친 모습이었다. 인사 대신 ‘왜 그래’라고 물어보긴 했지만 답을 듣지는 못했다. 아내는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교회에 갈 지 말 지를 물어봤다. 아내는 바로


“오늘은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대답했다. 아내의 말에 ‘가더라도 시윤이는 집에 있어야 할 거 같다’라고 의견을 덧붙였다. 아내도 의견을 덧붙였다.


“소윤이도 집에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 왜?”

“아니. 조금 전에 나가려고 하다가 못 나가게 됐는데 막 울고. 나가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네”


소윤이가 운 이유가 그거였다. 상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시간이 되면 나가자’ 혹은 ‘나가자’라고 얘기를 했는데 상황이 안 되니 못 나가게 됐을 거다. 그랬더니 속이 상한 소윤이가 막 울었을 거고. 아내는 훈련의 차원에서라도 오늘은 소윤이도 집에 머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럼 여보가 교회 갔다 와. 내가 애들 재울게”

“여보도 교회 가고 싶은 거 아니야? 그럼 여보가 갔다 와도 되는데”

“아니야. 여보가 갔다 와”


저녁은 삼계탕이었다. 시윤이를 위한 보양식이었다. 내 배를 채우기 전에, 장갑을 끼고 열심히 살을 발라서 아이들 그릇에 옮겨줬다. 시윤이는 엄청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먹기는 했다. 소윤이와 서윤이도 꽤 잘 먹었다. 아내는 저녁을 먹고 혼자 교회에 갔다. 소윤이에게는 오늘 왜 교회에 가지 않는지 따로 설명을 해 줬다. 그래야 소윤이도 고칠 테니까.


셋 다 엄마 혼자 교회에 가는 걸 잘 이해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테고, 서윤이는 아마 분위기를 따라가지 않았나 싶다. 대신 서윤이는 눕고 나서 엄청 오랫동안 안 잤다. 물론 늦은 낮잠의 여파였다. 서윤이는 아내가 예배를 드리고 올 때까지 안 잤다. 서윤이도 소윤이와 비슷한 게 분명하다. 어쩜 그렇게 잠이 없는지. 소윤이도 꽤 늦게까지 안 자긴 했는데 서윤이만큼은 아니었다.


교회에서 돌아온 아내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주고받았다. 아내가 여러 모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면서 아내를 잘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건드리는(?) 사람에게 직접 나서서 대응은 못해도,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면 들어줄 남편으로 오래오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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