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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28. 2023

졸음 훈육

23.03.11(토)

아내는 오전에 교회에 가야 했다. 내일 예배를 드리고 먹을 점심을 준비해야 했다. 축구하고 와서 바로 아내와 역할 교대를 했다. 아내가 준비를 하고 있다가 바로 나갈 줄 알았는데 아직 준비를 하나도 못한 상태였다. 아이들 아침을 비롯해서 이것저것 챙겨주다 보니 그랬을 거다. 아내는 머리를 감고 있었다. 부지런히 준비를 마친 아내는 갔고, 오랜만에 주말에 혼자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루미큐브를 꺼내왔다.


“아빠. 이거 하자여”


서윤이는 자기도 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서윤이는 규칙을 조금도 모른다. 서윤이는 물론이고 시윤이도 잘 모른다. 아니, 시윤이는 규칙은 알지만 판의 흐름을 읽는 게 전혀 안 된다. 소윤이만 혼자 하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내가 함께 했다. 서윤이는 내가 다 해 줬고, 시윤이는 아주 조금만 자기가 했고. 결국 서윤이가 가장 먼저 끝냈고, 소윤이가 가장 나중이었다. 약간 아쉬워 하는 듯했지만 엄청 심각하고 그러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레고를 꺼내달라고 했다. 지난 번 K의 첫째 생일에 받아 온 레고를 이제야 꺼낸 거다. 아이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괜찮은 구성은 아니었다. 한 번씩 조립했던 걸 다시 상자에 넣은 거라 어느 정도 조립이 되어 있는 게 대부분이었고, 한 상자는 아예 블록이 없는 것도 많았다. 그래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다. 둘이 막 깔깔거리기도 했다. 서윤이도 옆에서 같이 놀았다.


난 축구를 하고 와서 그런가 눈이 막 감겼다. 식탁에 앉아서 아이들 노는 걸 보다가도 눈이 감겼다. 자녀들이 그만큼 평화롭게 놀았다. 잘 다투지도 않고. 기타를 가지고 와서 아이들 옆에서 찬양을 불렀다. 한 30여 분을 불렀는데 뭔가 엄청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많은 육아인들이 상상하고 꿈꾸지만 현실 육아에서는 도통 만나보기 어려운 장면이랄까. 밝고 환한 낮에 거실에 앉아서 블록을 가지고 노는 자녀들과 그 뒤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부르는 아빠. 꿈 같았다.


서윤이는 낮잠을 자야 했다.


“서윤아. 아빠랑 들어가서 자자”


서윤이는 아쉬워했지만 순순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약간 의외였다. 안 자고 싶다고 칭얼거릴 줄 알았는데. 바로 들어갈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선 서윤이가 나에게 오더니 매우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근데 저 레고 더 하고 싶었어여”


이것 또한 이상적인 자녀의 모습이었다. 차마 방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랬어? 알았어. 서윤아 그럼 조금 더 놀아”


서윤이는 함박웃음과 함께 다시 언니와 오빠 사이에 앉았다. 한 30분 더 놀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함께 누워서 서윤이가 잠들기를 기다렸는데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아직 잠이 꽉 차지 않은 서윤이는 잠드는 데 조금 오래 걸렸고, 젖산 과다 분비로 피로에 허덕이던 나는 30초에 한 번씩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완전히 잠들지는 않았다. 사실 좀 잤어도 될 테지만, 왠지 모르게 밖에 있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미안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레고를 하고 있었다. 난 거실에 노트북을 펴고 앉았다. 밀린 일기를 좀 쓰려고 했는데 여지없이 꾸벅꾸벅 졸았다. 그 무렵부터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작은 갈등과 다툼이 생겼다. 몇 번을 듣고도 그냥 넘기다가 한 번 쯤 제지가 필요해 보여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불렀다.


“소윤아, 시윤아.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자꾸 그렇게 서로한테 친절하지 않게 말 할 거야? 소윤이는 좀 친절하게 말하고 시윤이는 누나가 뭘 말하면 진지하게 듣고. 서로 의견만 얘기하지 말고 상대방 얘기를 좀 듣고 그대로 해 주려는 마음이 있어야지…”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얘기를 하다가 졸았나 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약간의 웃음과 함께.


“가”


민망하니 할 말이 그것 뿐이었다. 책 읽다가 졸기도 했고, 예배 드리다가 졸기도 했고, 영상 보다가 졸기도 했지만 훈육하다 졸았던 건 처음이었다.


점심을 먹여야 했다. 냉장고에 닭다리 살이 있었다. 그걸 구워서 주려고 했는데 맨밥에 닭다리살만 주려고 하니 왠지 허전했다. 달걀을 구워서 올려줄까 하다가 너무 닭 일색인 느낌이라 실행하지 않았다. 냉장고에 있던 고수를 올려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좋아하기도 하고 잘 어울릴 듯했다. 역시 냉장고에 있던 배달 도시락 소스도 활용했다. 마침 서윤이도 잠에서 깨서 나와서 함께 먹었다. 아이들을 차려 주고 나니 내가 먹을 게 마땅히 없었다. 비빔면을 끓여 먹을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고추참치를 하나 따서 밥과 함께 먹었다.


졸음에 허덕이던 나는 결국 아내가 돌아오기 직전에 소파에 누웠다. 아내는 꽤 늦게 왔다. 아내가 왔을 때는 잠이 들었다가 잠시 깼다. 아내가 오기 전에 전화를 해서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소파에 눕기 전에 자녀들에게 옷을 찾아서 입으라고 말도 했다. 아내가 돌아오면 바로 나가려고 했는데 잠든 내 덕분에 늦어졌다. 아이들은 아내에게


“엄마. 그런데 우리 언제 나가요?”

“엄마. 아빠는 언제 일어나세요?”


라고 여러 번 물어봤다고 했다. 아내는


“아빠가 피곤하신 거 같으니까 조금만 더 주무시라고 하자”


라고 얘기하며 나의 피로회복을 도왔다. 잠깐이었지만 큰 도움이 되는 쪽잠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일단 문구점이나 잡화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이번 주에 생일이었던 처치홈스쿨 동생의 선물을 사야 한다고 했다. 잡화점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는 자기 용돈으로, 용돈이 없는 시윤이는 엄마와 아빠가 대신 사 주는 형식으로 선물을 골랐다. 딱 정하고 간 건 아니었다. 소윤이는 한참을 골랐다. 한 30분을 살폈나 보다. 그러고 나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여보. 소윤이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네?”


시간이 급하고 그런 게 아니어서 계속 기다려줬다. 그래도 언제고 거기 머물 수는 없으니 결국 아내가 몇 가지 후보를 추려서 선택지를 좁혀줬다. 시윤이는 큰 고민이 없었다.


“시윤아. 이건 어때?”

“좋아여”


이런 식이다. 서윤이가 주는 선물도 하나 샀다. 얄궂은 스티커.


선물을 다 고르고 나오니 딱히 목적지가 없었다. 아내가 일단 맛있는 커피를 마시자고 하면서 시내로 가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저녁시간이었다. 얼마 전에 시윤이가 찜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시윤이가 괜찮다고 하면 그걸 먹으려고 했다. 일단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봤다. 둘 다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 것 같았다. 아내와 내가 몇 가지 음식을 얘기했다. 찜닭, 칼국수와 수제비, 돈까스. 둘 다 칼국수를 골랐다. 시윤이에게 찜닭은 안 먹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된다고 했다. 이런 것도 뭔가 시윤이답다. 가격 대 성능비가 매우 좋은, 종종 가는 식당으로 갔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갈 때는 더욱 유익한 곳이다. 셋 다 잘 먹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근처에 있는 놀이터로 갔다. 지난 번에 K네 가족과 함께 와서 아이들이 신나게 짚라인을 탔던 곳이었다. 오늘은 사람이 조금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짚라인을 계속 탔다. 소윤이는 혼자 알아서 탈 수 있었지만 시윤이는 아직 올라가는 걸 어려워했다. 잡아줘야 했다. 서윤이는 올라가는 건 물론이고 중간에 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시윤이는 출발하기 전에 잡아줬고, 서윤이는 잡고 같이 이동했다. 앉아서 쉴 틈이 없었다.


이미 깜깜한 밤이라 오래 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30분은 넘게 놀았다. 오늘도 시윤이가 많이 피곤해 보여서 신경이 조금 쓰이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부지런히 씻기고 재웠다. 소윤이는 샤워를 하고 싶어 했지만 정중하게 내일 아침에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주일 아침에 샤워를 한다는 게 평소에는 허언에 가까운 약속일지 모르지만, 내일은 조금 달랐다. 한 달에 한 번씩 청소를 하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서 나가야 했다. 안 나가면 벌금이 만 원이다. 덕분에 조금은 자신 있게


“소윤아. 내일 아침에 씻자”


라고 얘기했다.


아내와 영화라도 볼까 하다가 영화보다 수다를 떨고 싶어서 그냥 제안하지 않았다. 오늘도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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