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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28. 2023

오늘의 MVP

23.03.13(월)

나도 좀 늦게 일어난 편이었는데 아내도 아직 자고 있었다. 아침이 바쁠 것 같아서 깨울까 하다가 그대로 뒀다. 이미 세 자녀가 깨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도 금방 일어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에 아내도 깨서 나와 있었다.


“여보. 잘 갔다 와요”

“어. 여보도 오늘 잘 하고 와. 너희들도 오늘 잘 갔다 와. 엄마 말씀 잘 듣고”


집에서 나갈 무렵에, 점심을 먹을 무렵에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별 내용은 없었다. 잘 갔는지, 점심은 잘 먹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답이 바로 오지도 않았고 답을 기대하고 보낸 메시지도 아니었다. 형태는 질문이었지만, 일종의 응원에 가까웠다.


나는 퇴근, 아내는 하교(?) 할 시간이 다 되어서야 통화를 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매우 매우 말라 있었다. 오랜만의 일정이라 힘이 들었던 건지, 자녀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건지 걱정스러웠는데 내 예상에 없던 답이 돌아왔다.


“머리가 아프네”


방심하면,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느낌이다. 아내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내는 교회에서 막 출발을 했고, 난 일을 마무리 하느라 조금 더 시간을 보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조금 전보다 목소리가 훨씬 안 좋았다. 집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고 했다. 집에 가 보니 아내는 입고 나갔던 옷 그대로 소파에 누워 있었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부산스럽게 놀고 있었다.


“여보. 많이 아파?”

“어, 조금 아프네”


아내는 저녁식사를 걱정했다. 집에 밥은 있지만 먹을 게 없다고 하면서. 신경 쓰지 말고 침대에 가서 좀 누우라고 했다. 아내는 잠깐 몸을 일으키는 것도 힘들었는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도 소파보다는 침대가 편하고 조용할 것 같았다. 계속 말을 걸고 깨워서 침대로 가게 했다. 냉장고에는 정말 먹을 만한 게 없었다. 아내는 뭘 시켜 먹으라고 했지만 돈도 아깝고 귀찮기도 했다.


“얘들아 주먹밥 먹을래?”

“네 좋아여. 참치 주먹밥 먹고 싶어여”

“그래, 알았어”


아내 말대로 밥은 넉넉히 있었다. 밥을 잔뜩 퍼서 담고 참치도 한 캔 따서 넣었다. 김도 부숴서 넣었다. 그렇게만 주려고 하니 너무 빈약해 보였다. 맛이야 있겠지만 뭔가 더 이로운 재료를 넣고 싶었다. 며칠 전에 삼계탕을 먹었을 때 살만 발라서 냉장고에 넣어 둔 게 있었다. 그것도 넣었다니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걸 넣기 전에는 밖에서 파는 주먹밥과 크게 다를 게 없었는데 그걸 넣고 나니 고품격 주먹밥이 된 느낌이랄까.


밥을 정말 많이 넣었다. 보통 먹는 걸로 치면 한 여섯 그릇 분량은 넣었을 거다. 나도 같이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많은 양이었다. 자기가 얼마나 먹었는지 확인이 안 돼서 그런지 몰라도 주먹밥을 먹을 때는 항상 평소보다 더 많이, 잘 먹는다. 조금씩 뭉쳐서 입에 넣어줬는데 구강의 크기나 저작활동의 속도나 모두 언니와 오빠에 비해 작고 느린 서윤이는 상대적으로 적게 먹게 된다. 마지막 남은 건 서윤이에게 몰아줬다.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소윤이가 며칠 전부터 편의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다. 3월, 4월 안에는 꼭 먹자고 했다. 성분표를 보면, 그리고 쉴 새 없이 코를 훌쩍이는 소윤이를 보면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지만 수도승의 삶도 아니고 모든 욕망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오늘은 처치홈스쿨 개강 첫 날이었으니 응원과 격려를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내는 아파서 쉬고 있으니 자녀들이라도.


집 앞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쭈쭈바를 골랐다. 서윤이도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 먹기에는 너무 많기도 하고 그랬던 적도 없었다. 대신 빼빼로를 제안했더니 엄청 좋아하면서 받아들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는 아쉬움은 조금도 없었다. 아직 자기가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걸 아는 듯했다. 사실 빼빼로도 마찬가지긴 하다. 그래서였는지 작은 빼빼로 상자를 들고 엄청 좋아했다. 집에 와서 먹을 때도 어찌나 소중히 여기고 기뻐하던지. 마치 토끼가 먹이를 먹는 것처럼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서윤아. 맛있어?”

“네”

“좋아?”

“네”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전혀 졸리지도 않았고. 너무 방심을 했을까. 특별한 생각 없이 거실에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소리와 움직임을 다 느끼면서도 잠에서 깨지 못했다. 중간에 잠깐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잠들었다. 대략 한 시간 가까이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 소윤이는 알아서 씻고 잘 준비를 마친 뒤였다. 시윤이와 서윤이가 안 보였다.


“소윤아. 시윤이랑 서윤이는?”

“엄마 옆에 누워 있어여”

“아, 그래?”

“시윤이는 잠들었어여”

“진짜? 시윤이 씻었어?”

“네”


안방에 들어가 보니 시윤이는 이미 잠들었고 서윤이는 아직 잠들기 전이었다. 아내의 양 옆에 누워 있었다.


“서윤아. 나와”

“……”

“서윤아. 얼른 나와”

“…..”

“나오세여”

“으아아아아아아앙”


서윤이는 한참을 울었다. 오빠는 엄마 옆에서 자는데 자기는 안 된다는 사실이 더 슬펐을까. 꽤 오래 울었다. 소윤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소윤이도 엄마 옆에 눕고 싶었을 텐데 두 명의 동생이 이미 엄마 옆을 선점하기도 했고, 자기는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의젓함’이 발동하기도 했을 거다. 마음 같아서는 ‘소윤이도 엄마 옆에 가서 누워’라고 하고 싶었다. 서윤이가 잠든 상태였으면 그렇게 했을 거다.


평소에도 아이들을 눕히고 나면 굉장히 고요하지만,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일찌감치 누운 날에는 유독 더 고요하다. 처음 접하는 상황도 아닌데 마주할 때마다 어색한 기분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아내는 내가 운동을 다녀오는 사이에 잠에서 깨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보. 좀 어때?”

“엄청 아프지는 않고”


다행이었다. 또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일단 더 심해지지는 않았으니까. 아내는 잠시 정신을 차린 김에 오늘의 일상을 간략하게 전해줬다. 아내를 비롯한 다른 엄마선생님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졌다. 아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저녁 시간의 미안함을 표현했다.


“여보도 힘들었을 텐데 미안하네”


아무렇지 않았다. 사실 별로 한 것도 없었고. 오히려 소윤이가 가장 칭찬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오늘은 서윤이 옆에서 자야겠다. 미안하네”


사실 소윤이 옆에서 자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침대 2층이라 부담스럽다. 아내가 찾아보니 내가 올라가도 충분히 견딜 만큼 넉넉한 한계 하중으로 설계되긴 했지만, 그래도 선뜻 올라가는 건 잘 안 된다.


오늘만큼은 내가 눕기 전에 소윤이가 깼으면 좋겠다. 그럼 바닥이나 1층에서 같이 자자고 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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