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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28. 2023

두통과 피로를 잠재우는 찬양

23.03.14(화)

어제 나의 바람대로 내가 눕기 전에 소윤이가 깼다. 나와 소윤이는 나란히 서윤이 옆에 누워서 잤다. 또 다른 나의 바람대로 서윤이는 새벽에 깨서 아내에게 가지 않았다. 아내의 숙면을 취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됐을 거다. 실제로 아내는 안 깨고 푹 잤다고 했다. 다만 두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퇴근하고 보니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엄청 지쳐 보였다. 얼른 플러그를 뽑고 전원을 차단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달까. 머리도 여전히 잔잔하게 아프다고 했다. 기운도 하나도 없고. 하루 종일 한 끼도 제대로 안 먹었다고 했다. 그에 비해 아이들은 무척 흥분 상태였다. 보통 집에서는 잘 안 보이는 정도의 흥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끊임없이 깔깔거렸다. 높은 목소리로 고성에 가까운 소리도 자주 냈다. 듣기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뭔가 잘못된 건 없으니 그대로 뒀다. 다만 몸이 안 좋은 아내는 더 거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역시나,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부탁했다.


“소윤아, 시윤아. 너무 흥분했어. 목소리를 조금만 낮추고 조금 진정하자”


주방 싱크대 위에 장을 보고 온 흔적들이 보였다. 기운이 없는 와중에도 장을 봐야 했나 보다. 아니면 힘들어도 바깥에 나갔다 와야 좀 살 것 같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고. 퇴근을 조금 늦게 해서 자녀들은 먼저 저녁을 먹고 난 뒤였다. 찜닭이었다. 장모님이 배달시켜 주셨다고 했다. 요즘 밥 양이 확연하게 줄어든 시윤이가 간만에 엄청 많이 먹었다고 했다. 자녀들은 밥을 다 먹고 우유에 죠리퐁처럼 생긴 과자를 말아서 먹고 있었다.


아내는 나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밥도 못 먹고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아픈 건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이틀 연속으로 기운이 하나도 없는 아내를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약을 먹어도 미세한 두통이 잦아들지 않는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서 쉬어도 모자랄 판에 아내는 설거지도 하고 버려야 할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까지 정리했다.


“여보. 그냥 둬. 내가 할게”

“아니야. 괜찮아. 지금 하는 김에 하지 뭐”


나의 하루 중에 가장 피곤이 극대화 되는 시간과 맞물려서 난 소파에 앉아 아내에게 말만 할 뿐, 가서 거들지는 못했다.


서윤이는 요즘 찬양을 엄청 많이 부른다. 음정과 가사를 생각보다 정확하게 외워서 매우 다양한 찬양을 흥얼거린다. 쉬지 않고. 아내와 나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톡톡하다. 그야말로 미소가 절로 번진다. 지친 몸을 이끌고 설거지를 하던 아내가 거실 바닥에 쓰러지면서 웃을 정도다. 이런 걸 영상으로 잘 남겨놔야 하는데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면 원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사라진다. 다시 한 번 왜 그 시기에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하는지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아내는 오늘도 제법 이른 시간에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난 오늘도 아이들 방에서 잤다. 아내가 혼자 좀 편히, 푹 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거대한 남편에게 치이지 않아도 되고, 새벽마다 오는 딸에게 치이지 않아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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