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Nov 29. 2023

내가 있는 곳이 제일 힘들지

23.03.16(목)

아내가 새벽기도를 다녀왔다. 처치홈스쿨과 성경공부 모임을 같이 하는 선생님과 함께 도전하는 거라고 했다. 일단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지금 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새벽기도 시간이 많이 빠르다. 일곱 시도, 여섯 시도 아닌 무려 다섯 시. 어제 자기 전에 아내의 의지가 매우 강한 걸 봤기 때문에 잘 일어나서 갔다 왔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아빠. 엄마는 새벽기도 갔다 오셨대여”

“그래? 엄마 어디 계셔?”

“안방에여”


다섯 시도 안 돼서 일어나야 하는 아내를 위해, 새벽기도 가는 소리에 깨지 않기 위해 어제도 아이들 방에서 잤다. 아내는 무사히 새벽기도에 다녀와서 평온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노란 스탠드 조명 속에서 인자하게 웃으며 식구들을 맞이하는 아내에게서 마치 수녀님과 같은 온화함이 느껴졌다.


“여보. 괜찮아? 안 졸려?”

“어, 아직은. 이따 후폭풍이 오겠지”

“그래도 대단하네”


덕분에 난 아내의 기도를 좀 먹고 살아야겠다.


오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애써 밝게 하는 게 느껴졌다.


“여보. 그냥 귀 좀 쉬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아내 나름대로 김을 빼는 장치랄까. 저 너머에서 누군가의 울음소리 혹은 떼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아내의 이름이 보자마자 가슴이 뛰고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심란했지만, 나름대로 잘 진정시켰다.


아내는 K의 아내와 자녀들을 만난다고 했다. K의 아내의 어머니도 함께 만난다고 했다. K의 아내의 어머니의 친구 분의 딸이 운영하시는 빵 가게에 간다고 했다. 친구 분을 전도하고 싶으셔서 이래저래 자리를 만드는 김에 딸(K의 아내)과 딸의 친구를 데리고 가시는 거라고 했다. 그 빵 가게는 동네 빵집 전문가인 아내도 종종 가는 곳이었다. 엄청 좁다고 했다. 애들(자그마치 여섯)을 데리고 가면 꽉 찰 만한 곳이라고 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 보니 정신이 없었던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오히려 정신이 없었던 덕분에 새벽기도의 여파를 느낄 새가 없었다고 했다.


K의 아내의 어머니는 ‘강서방’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면서 밤식빵도 사 주셨다고 했다. 장모님 말고도 날 ‘강서방’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꽤 있다. 그러고 보면 일반적으로는 부를 일이 없는 사이기는 하다. 딸의 친구의 남편이니까. 워낙 가깝게 지내고 자주 보니까 예외의 상황이 되었다. 물론 직접 호명하시는 일은 여전히 없지만. 밤식빵은 엄청 맛있었다.


지난 주였나, 아내가 호떡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 아주 허름하지만 유명한 호떡이 있다고 하면서, 그걸 꼭 먹어 보고 싶다고 했다. 아내의 뱃속에 아이가 있었더라면 당장 다음 날이라도 가서 바로 사 왔겠지만, (호떡 취득의 측면에서는) 안타깝게도 아내는 홀몸이다. ‘나중에 기회 되면’ 사기로 했는데, 마침 오늘 그쪽에서 일이 끝났다. 아내가 아직 K의 아내와 함께 있으면 K의 아내와 자녀들이 먹을 것도 사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그냥 우리 식구가 먹을 것만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개수를 말하려는 순간,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어디야? 집이야?”

“아, 아니. 우리 아직 00네 집인데 곧 가려고”

“아, 그래? 아니, 내가 오늘 일이 00에서 끝났거든...”

“어? 진짜? 혹시?”


아내는 내가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눈치를 챘다.


“어, 호떡 사 가려고 하는데 그럼 00네 것도 사가야겠다”

“대박. 진짜? 와. 알았어”


아내는 진심으로 좋아했다. 내가 무슨 명품 가방을 사 간다는 것도 아니고 한 개에 천 원 짜리 호떡을 사 간다고 했는데, 그렇게 좋아하다니. 참 소박하다.


K는 서울로 출장을 가고 없었다. K의 첫째와 둘째는 외갓집에 가서 없었고. K의 아내는 막내와 둘이 있었다. 실제적인 호떡 식수 인원은 한 명인 셈이었다. 아닌가. 막내도 호떡 먹나 모르겠다. 아무튼 호떡을 사서 K네 집으로 갔다. 엄청 한가로웠다. 그래도 자녀가 넷이었는데, 평소에 비해 둘이 없으니 무척 한적한 느낌이었다.


내가 가고 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왔다. 남편은 출장을 가고 없었지만 첫째와 둘째를 친정에 보낸 K의 아내가 왠지 한가로워 보였다. 남편이 없는 대신에 첫째와 둘째도 친정에 보낸 것과 남편은 있지만 첫째, 둘째, 셋째도 있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힘든 걸까. 군대처럼 생각하면 될 거 같다.


‘내가 있는 곳이 제일 힘들다’


집에 돌아와서 다 함께 호떡을 먹었다. 밥 먹기 직전에는 간식을 먹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호떡이라 예외를 적용했다. 온도에 따라 맛의 질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음식이다. 아직 온기를 머금고 있을 때 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내 느낌에는 그냥 보통의 평범한 맛이었다. 맛있기는 했는데 특별한 개성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호떡이었다. 엄청 인기가 많다고 하던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가격이 싸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한 개에 천 원이다. 요즘 호떡 시세에 비하면 싼 거 아닌가?


저녁은 김치볶음밥이었다. 아내와 내가 함께 만들었다. 내가 만들 테니 쉬라고 했는데도 곁에 서서 함께 했다. 아니, 아내도 오히려 자기가 만들 테니 나에게 쉬라고 했다. 나중에 전래동화에 나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우애 좋은 부부로.


서윤이만 따로 맵지 않게 만들어 주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와 내가 먹는 것과 똑같은 밥을 줬다. 너무 매울 것 같았는데 아내는 괜찮을 거라고, 잘 먹을 거라고 했다. 소윤이는 잘 먹었는데 시윤이가 못 먹었다. 한 입 먹더니 혓바닥을 내밀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윤아. 매워?”

“네”

“많이 매워?”

“네”


원래 있던 밥을 조금 덜어내고 맨밥을 섞어서 줬더니 그나마 잘 먹었다. 소윤이는 맵다고 하면서도 잘 먹었다. 매운데 맛있다고 하면서. 다 잘 먹었는데 서윤이만 태도가 영 별로였다. 아무래도 밥 먹기 전에 호떡을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아직 위장의 크기가 미천하니 호떡 한 개에도 충분히 포만감을 느끼나 보다. 지지부진한 숟가락질을 꽤 오랫동안 그대로 뒀다. 얼른 먹으라는 말은 했지만, 강력한 훈육의 단계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오늘은 그러고 싶었다. 그렇다고 평소에는 쥐 잡듯이 잡는 것도 아니다. 서윤이는 주눅 들까 걱정할 필요는 없고 버릇이 나빠질 걸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자비와 관용을 누리고 있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떠난 뒤에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난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서윤이를 보고 있었다. 밥그릇에 한 숟가락 정도 남았을 때 아무 말도 없이 서윤이 밥그릇과 숟가락을 가지고 왔다. 명랑하게 장난을 치던 서윤이는 흠칫 놀라면서 나를 쳐다봤다. 난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하고 덤덤한 표정을 보였다. 서윤이는 당황한 듯 갑자기 조용해졌다. 화장실에 있던 아내가 나와서 서윤이에게 얘기했다.


“어? 서윤이 다 먹었네?”

“아니예여. 아빠가 치우셨어여”

“그래? 다 안 먹었어?”

“네. 아직 남았는데 아빠가 치웠어여”

“아, 그렇구나. 그러게 왜 안 먹었어. 장난치지 말고 얼른 먹었어야지”


서윤이는 굉장히 고분고분했다.


“아빠. 그럼 서윤이 언제까지 간식 못 먹는 건가요?”

“아니예요. 먹어도 돼요”

“그래요? 다 먹었어요?”

“네. 거의 다 먹었어요”


나와 아내의 대화를 듣던 서윤이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그 놈의 간식이 뭐라고. 먹을 지 안 먹을 지도 모르는데.


아내의 새벽기도 후폭풍은 밤에 찾아왔다. 아내는 엄청 졸리다고 했다. 몸도 좋았고 내일 새벽기도에 갈 예정도 아니었지만, 아내는 오늘도 일찍 들어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얼른 나가, 어차피 나갈 건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