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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29. 2023

오늘은 고기 풍년이네

23.03.17(금)

아이들이 먼저 일어났다. 아내는 어제 새벽기도의 후폭풍이 아직도 이어지는지, 가장 늦게까지 곤히 잤다. 출근하기 전에 시윤이를 무릎에 앉히고 오늘은 짜증을 내지 말아보라고, 사랑하는 엄마를 슬프게 하지 말아보라고 당부했다. 물론 시윤이는 그러겠다고 했다. ‘오늘 짜증 내고 소리 지를 거야’라고 예고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어제 잘 때 서윤이가 좀 끙끙거렸다. 뭘 먹다가 혓바닥을 엄청 세게 깨물어서 상처가 났다고 해서 그것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것 때문이 아니라 코가 막혀서 그런 거였다. 아침에도 코가 잔뜩 차서 괴로워 했다. 코가 막히면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숨 쉬는 입으로 손가락을 빨기 바쁘니 숨 쉴 구멍이 없었다. 숨이 막히니까 괴롭고, 괴로우니까 짜증도 내고.


아내는 특별한 일은 없었고 장을 보러 간다고 했다.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게 아니라 꼭 가야 했다. 아내는 나에게 저녁에 먹고 싶은 음식이 없냐고 물어봤다. 내 대답은 항상 비슷하다.


“어, 딱히 없네. 아무거나 괜찮아”


아내는 차라리 뭔가 딱 하나 정해 주면 좋겠다고 얘기할 때도 많지만, 진짜 뭘 먹든 상관이 없으니까. 물론 강력하게 먹고 싶은 거야 있기는 하다. 연기 폴폴 나고 기름 팍팍 튀는 돼지고기. 그런 건 먹고 싶다고 먹을 수 없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먹어야 하니까 거의 얘기를 안 하는 편이다. 진짜 너무 강력하게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 만큼 먹고 싶을 때나 돼야 먹자고 말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아내가 알아서 고기를 사 오면 먹는 거다.


“여보. 우리 오늘 저녁에 고기 구워 먹자”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내가 전화를 해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아마 얼마 전부터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나의 기운을 느꼈을 거다.


퇴근해 보니 서윤이는 코가 꽉 막혀서 눈까지 부어 있었다. 하루 종일 짜증을 많이 냈다고 했다. 시윤이도 서윤이와 비슷했다. 코가 꽉 막혔고 목도 아프다고 했다. 아프고 기운이 없어서 힘들어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오늘은 정말 짜증을 한 번도 안 냈다고 했다. 아침의 약속이 효과를 발휘한 걸까.


오늘은 자녀들이 고기를 별로 안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소고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 소고기도 사고 돼지고기도 샀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는 게 영 지지부진 했다. 지난 번에 먹었을 때는 너무 잘 먹어서 아내와 나는 쥐꼬리만큼 남은 고기에 밥을 볶아서 먹는 걸로 배를 채웠는데, 오늘은 남은 고기가 풍년이었다. 아내와 나도 배가 불러서 다 못 먹고 야채와 함께 통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놨다. 바쁜 아침의 일용할 양식이다. 밥과 함께 넣고 볶으면 고품질의 볶음밥이 된다.


저녁에 철야예배에 가야 했는데 고민이 됐다. 시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당장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흐름상 ‘왠지 아플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 쉬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했다. 오늘은 웬일인지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럼 시윤이와 서윤이는 집에 남겨 두고 소윤이만 데리고 다녀올까 싶기도 했는데 그것도 왠지 모르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여보. 어떻게 하지?”

“그러게. 어떻게 하지?”


이런 무의미한 질문과 답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여보. 그럼 그냥 다 같이 가자”


그래 봐야 조금 더 아프고 말 테고, 집에서 쉰다고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고. 지난 주에 못 가기도 했고. 아내와 나의 마음에 가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창피하게도 간절함과는 별개로 엄청 피곤했다. 설교 시간에 졸음과의 사투를 벌였다. 나도 아내도. 아내를 볼 때마다 막 잠에서 깼을 때의 짙은 쌍꺼풀이 내려 앉은 부담스러운 눈과 마주했다. 시윤이는 예배 끝날 때 쯤 잠들었다가 차에 탈 때 깼다.


아이들은 교회에 가기 전에 씻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손만 씻고 바로 누웠다. 다들 피곤해서 금방 잠들기는 했는데 코는 막히지만 손도 빨아야 하는 서윤이는 처음부터 짜증이 한 바가지였고, 시윤이도 잠들고 나서는 꽤 많이 신음소리를 냈다.


“내일 애들 아플지도 모르겠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처치홈스쿨 모임이 오전에 있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었다. 일단 내일 아침에 아이들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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