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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29. 2023

어느 아빠의 토요 육아

23.03.18(토)

밤 사이에 서윤이가 참 많이 칭얼댔다. 손 빨기와 코 막힘의 충돌 속에 괴로워 했다. 새벽에 안방으로 오기도 했다. 서윤이를 내 자리에 눕히고 난 아이들이 자는 방으로 갔다. 마침 소윤이가 깨서 소윤이도 바닥으로 내려왔다. 요즘 셋 중에 가장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스킨십을 하는 건 소윤이다. 소윤이는 내 팔을 베고 누웠다. 그러고 나서도 내 팔이 자기 몸을 휘감도록 위치를 조정했다. 소윤이와 스킨십을 하는 건 언제나 흐뭇하고 좋은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소윤이와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막연하게 얼마 안 남았을 거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얼마 전에 아내가 얘기해 줬는데, 소윤이가 밖에서는 엉덩이 두드리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밖에서 그렇게 하면 너무 아기 취급을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아직 집에서는 괜찮다고 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점점 장벽이 세워지는 게 느껴진다. 내 딸과 아무런 격이 없는 스킨십을 하던 때가 사무치게 그리울 언젠가를 상상하면, 아직은 다행이고 감사하다.


축구를 하고 와서도, 처치홈스쿨 모임에 시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갈 지 말 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당장의 상태만 보면 멀쩡했지만 관리 차원에서 집에서 충분히 쉬는 것도 필요해 보였다. 게다가 오늘은 교회 마당 한 편의 자그마한 텃밭에 모종과 씨앗을 심기로 했다. 바깥에서 찬바람을 맞는 건 회복에 방해가 될 테고. 그렇다고 시윤이와 서윤이만 집에 남기면 엄청 섭섭해 할 것 같았다.


“여보. 어떻게 하지?”

“그러게”

“그럼 데리고 가고, 대신에 텃밭에는 못 나간다고 할까?”

“그럴까?”


시윤이는 그것도 서운해 했지만, 아예 안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지 잘 받아들였다. 아예 교회에 안 가고 집에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선택지도 제시했지만 선택하지는 않았다. 서윤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언니와 오빠들이 텃밭에 나갈 때 쯤에는 재우면 되니까. 사실 둘 다 어제 잘 때 엄청 끙끙대서 ‘내일은 당연히 못 가겠다’라고 생각한 것에 비하면 무척 멀쩡했다.


교회에 가서 처치홈스쿨 식구들끼리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함께 먹었다. 다른 선생님이 준비한 찜닭을 먹었다. 시윤이는 교회에 가니 더 멀쩡해졌다. 다른 자녀들과 어울려 노느라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뛰기도 했다. 난 걱정이 돼서 수시로 시윤이의 상태를 물어보고 이마를 짚었다.


“시윤아. 괜찮아?”

“네. 하나도 안 힘들어여”


아침까지만 해도 따끔거리던 목도 안 아프다고 했다. 오히려 집에 있었으면 아픔을 묵상하면서 더 안 좋아졌을라나.


결국 텃밭에도 함께 나갔다. 그 전에 씨앗과 모종을 사러 시장에도 갔는데 거기도 함께 갔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교회 집사님 가게에도 잠시 들렀다. 아내 권사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가셨다. 한 10분이 지나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밝고 환했다. 모두 한 손에는 음료수, 다른 한 손에는 장난감에 가까운 먹을거리를 들고 있었다. 껌이라고 했다. 자녀들은 권사님에게 큰 소리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교회로 돌아와서 텃밭에 가기 전에 잠시 텃밭에 꽂아 놓을 이름표(?)를 만들었다. 자녀들은 권사님이 사 주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에게 몇 번이나 ‘먹어도 되냐’고 물어봤지만, 난 일단 회피했다. 평소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껌을 먹지도 않을 뿐더러 거의 ‘불량식품’에 가까운 종류였다. 평소에는 ‘먹을 만한’ 걸로 잘 고르는데 오늘은 여러 아이들과 함께 분위기에 휩쓸렸나 보다. 그래도 기특했다. 엄청 먹고 싶었을 테고, 기대가 컸을 텐데 그걸 꾹 참고 꼬박꼬박 물어보는 게. 아예 안 줄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후히 줄 생각도 없었다.


텃밭에 가서 모종도 심고, 씨도 뿌리고 물도 줬다. 아이들은 텃밭을 참 좋아한다. 다들 나름대로 열심이었다. 안타깝지만 서윤이는 낮잠을 잤다. 당연히 같이 나오고 싶어 했다. 오늘이야 몸 상태가 완전히 정상이 아니니까 그랬지만, 다음에는 낮잠 시간이 밀리더라도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텃밭 활동이 오래 걸렸다. 얼추 정리하고 마무리하니 다섯 시였다. 아내는 다른 처치홈스쿨 선생님과 함께 누군가에게 전달할 반찬을 만들러 가야 했다. 기왕 그렇게 된 김에 반찬을 다 만들고 나면 자유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했다. 미리 얘기를 해 놨다. 텃밭 활동이 그렇게 늦게 끝날 줄 몰랐다. 덕분에 아내의 자유시간도 확 줄어들었다.


아내는 다른 선생님 집으로 갔고, 난 아이들을 데리고 문구점에 갔다. 소윤이가 교회 동생(서윤이에게는 오빠)의 생일 선물을 사야 한다고 했다. 소윤이는 엄청 찬찬히, 진열된 모든 상품을 파악하겠다는 듯 꼼꼼히 살폈다. 1층부터 2층까지. 그나마 미리 뭘 사야겠다고 정해서 그 정도였다. 안 그랬으면 문 닫을 때까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소윤이는 공책과 연필, 지우개를 골랐다. 용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아예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시윤이에게는 내가 찬조를 했다. 시윤이는 작고 귀여운 도장을 하나 골랐다. 서윤이에게도 찬조를 했다. 서윤이는 색종이를 골랐다.


구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차를 타고 간 거라 집 근처 공원 옆에 차를 댔다. 날씨가 참 좋았다. 마침 해가 넘어갈 때이기도 했고. 공원에서는 외국인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아빠. 우리도 여기서 조금만 놀다 가면 안 돼여?”


소윤이의 정중하고 간절한 제안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빨리 집에 가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굳이 찾자면, 나의 빠른 퇴근 뿐이었다.


“그래. 놀다 가자”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공원으로 내달렸다. 시윤이와 서윤이가 아무리 괜찮아 보인다고 해도 아직 정상은 아닐 텐데, 하루 종일 너무 바깥 바람을 많이 쐬는 게 걱정이기는 했다. 적당히 놀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전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적은 소윤이와 시윤이는 알아서 놀게 하고 난 주로 서윤이를 쫓아다녔다. 그렇게 신나게 노는데, 갑자기 시윤이가 코피를 흘렸다. 철철 흘린 건 아니었다. 코 밖으로 나온 코피가 입술까지 도달하는 데 한 세월이 걸릴 정도로 아주 아주 느린 속도였다. 이럴 때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혹시라도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주 중요한 증상이었을까 봐 그게 겁이 난다. 오늘도 시윤이는 코피가 흘렀을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뒤에도 잘 놀았다. 생각보다 오래 놀았다.


집에 오니 배가 고팠다. 다행히도 교회에서 받은 시래기 된장국이 있었다. 심지어 밥도 있었다. 진정으로 ‘일용할 귀한 양식’이었다. 그릇에 밥과 국을 한 곳에 담아서 아이들에게 줬다. 정작 나는 뭔가 당기지 않아서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싶었는데 그것도 썩 내키지는 않았다.


“아빠. 왜여?”

“아, 아빠는 뭐 먹을까 싶어서”

“아빠도 그냥 된장국 먹으면 되잖아여”


정답이었다. 소윤이의 말에 ‘그래. 그냥 대충 한 끼 때우자’라는 심정으로 나도 밥과 국을 펐다. 첫 숟가락을 넣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너무 맛있었다. 아이들도 난리였다.


“아빠. 너무 맛있어여”


요즘 식욕이 많이 떨어졌던 시윤이는 밥과 국 모두 서너 번을 더 떠서 먹었다. 나도 가득 채운 두 그릇을 먹었다. 시래기 된장국이 아니었으면 ‘뭘 먹이나’하는 희대의 고민에 휩싸였을 텐데, 너무 간편하고 맛있게 저녁을 해결했다.


“아빠. 엄마는 언제 오셔여?”

“엄마는 너네 자고 있을 때 오실 거야”


세 자녀 모두 샤워도 했다. 물론 스스로 한 건 아니고 내가 씻겨줬다. 아내에게 사진도 보냈다. ‘당신의 자녀들은 이렇게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의미도 물론 아주 조금은 있었겠지만,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나 혼자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어요’라면서 생색내기 위한 용도였다. 자기 전에 한 명씩 안고 기도를 했다. 원래 각자 자리에 누워 있으면 전체 기도를 하는데 오늘은 한 명씩 안고 기도를 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이들도 왠지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내에게는 ‘세 자녀를 봐 주고 자유시간을 주는 남편’, 자녀에게는 ‘잘 챙겨 주고 놀아 주는 아빠’로 하루를 보낸 것 같아서 뿌듯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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