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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30. 2023

자지 말라고 했다가 자라고 했다가

23.03.19(주일)

시윤이와 서윤이 모두 더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좋아졌다. 아내도 나도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무안하게 됐다. 다행이었다.


소윤이에게는 오늘도 미리 얘기를 했다. 엄마와 아빠가 앞에서 찬양단을 할 때, 지난 주처럼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찬양을 부르면 된다고. 엄마 부르거나 앞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당연히 대답은 잘 한다. 대답처럼 할 지 안 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서윤이 스스로 모를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윤이를 아동부 예배에 데리고 가고 싶어서 이런저런 유혹과 설득을 했지만 서윤이는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서윤이는 연습할 때 아내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다른 날도 그럴 때가 많지만 오늘은 뭔가 더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습이 끝나고 서윤이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앉아야 했는데 가지 않고 아내 허벅지를 붙잡고 열심히 손가락을 빨았다. 다소 불쌍한 표정과 함께. 난 서윤이에게 눈짓과 손짓으로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내 신호를 알아들은 서윤이는 고개를 저으며 더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오늘은 아내가 앞에서 찬양하기 어렵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아내가 서윤이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고는 자리에 앉혔다. 중간 중간 다른 성도님들이 서윤이에게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하실 때마다 서윤이의 표정이 조금 굳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중간에 아동부 예배를 드리던 K가 예배당으로 올라와서 서윤이에게 뭔가 얘기를 했다. 아마도 같이 내려가자는 얘기를 했을 테지만, 서윤이는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K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아직은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게 싫은가 보다. 아내는 무사히 찬양을 마쳤다.


서윤이는 예배 시간에 자려고 했다. 누워서 자세를 잡고 손을 빨려고 했는데 내가 일으키면서 말했다.


“서윤아. 오늘은 예배 시간에 자지 말고 이따 점심 먹고 자”


그렇지 않으면 점심 먹일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오후 예배 때 처치홈스쿨이 찬양을 맡았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나면 바로 올라와서 연습을 해야 했다. 제 때 점심을 먹이지 않으면 오후 예배가 끝날 때까지 따로 점심을 먹일 만한 틈이 없었다. 서윤이도 엄청 졸려서 누웠다기 보다는 아직은 지루한 예배 시간을 보내기 위한 나름의 방편으로 누운 거라 순순히 다시 일어났다. 덕분에 무사히 점심을 먹였다.


점심을 먹고 나니 바로 연습 시간이었다. 오후 예배 때는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다른 처치홈스쿨의 자녀들도 함께 예배를 드리는 거라 서윤이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처치홈스쿨 자녀들이 한 줄로 조르륵 앉아 있었고, 서윤이도 그 중간에 앉았다. 아내와 내가 찬양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을 때 서윤이를 아내와 나 사이로 옮겨 앉혔다. 그러고는 서윤이 귀에 대고 얘기했다.


“서윤아. 이제 자”


언제는 자지 말고 일어나라고 했다가 이번에는 또 자라니. 이리저리 변하는 장단에도 서윤이는 순순히 따라줬다. 아내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서 손가락을 빨던 서윤이는 금세 잠들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도 깨지 않았다. 아내는 3층으로 목장모임을 하러 갔고 난 서윤이 옆에서 목장모임을 했다. 중간에 뒤척이다가 불편했는지 살짝 깼는데 재빠르게 안아서 토닥거리니 다시 잠들었다. 잠결에 내 목덜미를 두 손으로 꽉 잡으며 매달리는데, 그게 뭐라고 그것도 너무 기분이 좋고 행복했다.


목장모임이 끝나고 난 뒤에도 일정이 한참 남아 있었다. 일단 나는 성경공부가 있었다. 서윤이는 계속 내 품에 안겨서 자다가 성경공부를 시작할 무렵에 깼다. 깨자마자 앞에 있던 견과류를 입에 넣어줬는데 헤벌쭉 웃으며 받아먹었다. 잘 잤다는 신호였다.


“여보. 서윤이 좀”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고 아내가 와서 서윤이를 데리고 갔다.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는 평소라면 집에 갔겠지만 오늘은 계속 기다렸다. 저녁에는 교회 권사님이 처치홈스쿨 식구들에게 밥을 해 주신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 외에도 여러 사람이 성경공부 모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히려 엄청 좋아했다. 놀고 또 놀아도 집에 가자고 하면 아쉬워 하는 녀석들이니까.


어쩌다 보니 저녁을 엄청 편하게 먹었다. 서윤이는 아내가 옆에 앉히고 먹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녀들끼리 모인 식탁에 따로 앉았다. 거기에는 처치홈스쿨의 다른 선생님 한 분이 앉았는데 아내 말로는 정신이 하나도 없으셨을 거라고 했다. 여러 사람의 희생 덕분에 나는 편하게 먹었다. 익숙하지 않은 편안함 때문에 오히려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오롯이 나의 식사와 대화에 집중했다.


서윤이는 집에 갈 무렵에 똥을 쌌다. 먼저 똥을 쌌다고 얘기한 건 아니었고 내가 안아준다고 했더니


“아빠. 저 지금 똥 싸서 안으면 안 돼여”


라고 얘기했다. 불의의 소식을 접한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서윤아. 집에 가서 씻자”


라고 대답했다. 바로 씻겨 주지 않는 게 매우 미안하기는 했지만, 교회에서 불편하게 씻기느니 얼른 집에 가서 편하고 깨끗하게 씻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려면 카시트에도 앉혀야 하고, 그 상태로 카시트에 앉는 기분을 상상하면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집에 가서 씻기기로 했다. 고맙게도 서윤이는 받아들였다.


집에 와서 서윤이 똥도 치우고 아이들도 씻겨서(샤워를 했고 다 아내가 했다. 난 머리만 말려 주고) 눕히고 나니 거의 열한 시였다.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해 받은 은혜와 권사님의 섬김으로 느끼는 감사함과 따뜻함, 오랜 시간 집 밖에서의 체류로 인한 피로감 등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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