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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30. 2023

바닥으로 나뒹군 서랍

23.03.20(월)

아이들이 먼저 일어났다. 난 일어나는 것도 그렇고 준비해서 나가는 것도 조금 늑장을 부렸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출근하지 말라고 장난을 쳤고, 나도 ‘그럴까?’라며 받아줬다. 그렇게 조금 농담을 주고 받다가 출근을 하려고 일어서서 현관으로 갔는데, 시윤이와 서윤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장난으로 주고받던 ‘회사에 가지 말라’는 소리를 진심으로 담은 거다.


“시윤아, 서윤아. 이러다 또 아빠 가고 나서 울지 말고”


무언가 그림이 그려지는 듯, 아내가 얘기했다. 어쨌든 난 인사를 하고 나왔다. 여느 날처럼 아이들이 베란다로 나와서 2차 인사를 건넸는데, 시윤이와 서윤이가 울고 있었다. 다소 황당했다.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다’라고 하면서 전혀 놀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내의 몫으로 넘기고 출근을 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영 불편했다.


“여보. 많이 힘든가요. 오늘”


아내는 답이 없었다.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 쯤 잠시 집에 들렀다. 집 앞 빵 가게에서 빵을 사서 들어갔다. 더 맛있는 빵 가게에서 사고 싶었지만 정기휴무였다. 그래도 나의 방문이 힘든 아내에게도, 힘든 게 뭐가 있겠나 싶지만 나름대로 힘든 게 있을 자녀들에게도 잠깐의 환기가 되길 바랐다. 집 1층에 들어서는데 희미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희미했지만 내 귀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익숙한 소리였으니까 들렸을 거다. 께름칙한 느낌으로 현관문을 열었는데 역시나 시윤이가 소파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그에 비해 서윤이는 명랑해 보였고. 아내와 소윤이가 안 보였다. 안방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울음소리인지 소윤이의 울음소리인지 헷갈렸다.


“시윤아. 너 왜 울어?”

“엄마가 안 나와서여”

“엄마는 왜 들어가셨는데?”

“누나랑 얘기하려고여”

“너는 엄마가 안 나와서 그렇게 소리지르고 울고 있는 거야?”

“네”


잠시 후 아내가 방 문을 열고 나왔다. 소윤이는 안 나왔다. 아내는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아내에게 빵을 전달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붙잡았다.


“여보. 지금 바로 갈 거예요?”

“어, 가야지”

“혹시 한 10분 만 시간 낼 수 있어요?”

“왜?”

“아, 할 얘기가 있어서”

“무슨 할 얘기?”

“아, 우리 가정의 상황을 좀 나눠야 할 거 같아서”


뭔가 익숙하지 않은 대화의 전개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지 궁금함과 약간의 떨림을 안고 주방으로 갔다. 눈 앞에 굉장히 생소한 광경이 펼쳐졌다. 주방 싱크대의 서랍장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밀고 당기는 방식으로 열고 닫는 서랍장이 레일의 범위를 벗어나서 바닥으로 떨어진 거다.


“뭐야? 왜 이래?”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윤이가 짜증과 분을 표출하느라 서랍을 세게 열고 닫은 게 원인이었다. 그 전의 사정이 어떠했든 참 어이가 없었다. 아내는 나에게, 자기가 충분히 이야기도 하고 시간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일단 당장은 내가 더 말을 보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 선에서 충분히 얘기를 했다고 하니 굳이 내가 더 말을 보탤 필요도 없었다. 모든 과정을 직접 목격한 아내는 감정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싶었다. 나였으면 활화산처럼 몇 번이나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퇴근했을 때는 평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아이들도 집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달려와서 나에게 안겼고, 서윤이는 새초롬하게 계속 내 품을 피했다. 아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걸 물어보거나 살필 여력이 없기도 했다. 엄청 피곤했다. 육체의 피로이기도 했고 마음의 피로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뭔가 찜찜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튼 그랬다.


저녁을 먹고 잠깐 소파에 누웠다. 오늘은 의지를 가지고 누웠다. ‘잠들면 잠들지 뭐’. 그러니까 오히려 깊이 잠들지 않았다. 아내가 남은 과업을 모두 수행했다. 애들 씻기고 옷 갈아입히는 일들. 난 깊이 잠들지 않은 덕분에 금세 몸을 일으켰다.


“아빠. 책 읽어 주실 수 있나여?”

“그래. 가지고 와”


매일 퇴근하면 너무 피곤한데 그렇다고 누워서 요양만 하다가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다. 퇴근하고 오면 많아 봐야 두어 시간인데, 그 시간에 ‘피곤에 쩔어 자는 아빠’의 모습만 보여 주면 참 미안하다. 그래서 의지를 가지고 책도 읽어줬다. 정말 다행히도 읽어야 하는 분량이 매우 짧았다. 시윤이는 조금 더 읽어달라고 했지만 부드럽게 양해를 구했다.


“시윤아. 아빠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안 되겠어. 여기까지만”


운동을 가야 했는데 너무 귀찮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다. 소파에 앉아서 ‘운동을 하러 갈 건가, 말 건가’를 고민하느라 한 20분을 보냈다. 결국, 또 한 번 의지를 냈다. 운동을 하고 오니 피로도 좀 사라지고 기분도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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