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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Nov 30. 2023

잠 못 드는 밤

23.03.21(화)

아내와 아이들은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선생님 집에 다녀왔다. 생일을 맞은 자녀를 축하하기 위해 갔다가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나의 퇴근보다 1-2시간 정도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난 교회에서 일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날씨도 좋고 아내가 저녁 준비도 아직 안 했을 것 같아서 밖에서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외식도 외식이지만 산책도 할 겸. 아내는 나가는 건 괜찮은데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내일 여행을 떠나기 위한 짐을 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했다.


일단 나가기로 했다. 아내에게 적당한 시간에 교회로 오라고 했는데 결국 아내는 오지 못했다. 며칠 동안 집을 비우기 전 해야 할 일이 많았을 거다. 평소처럼 내가 집으로 퇴근했다. 나는 방점을 산책에 찍은 거라 걷는 김에 밖에서 밥도 먹자는 거였고 많이 걸으려고 했는데, 아내는 잠깐 밖에 나가서 밥을 먹고 오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더 그랬던 듯하다. 저녁 먹을 식당은 퇴근하고 아내와 상의를 해서 정했다. 왠지 아내가 가자고 할 것 같은 식당이 있었는데, 아내는 정말 그 식당을 제안했다. 아이들과 먹기에 좋은 음식이기도 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집에서 부담 없이 걸어갔다 올 만한 거리이기도 했다.


서윤이는 웬만하면 걷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 오래 걷지는 않는다. 조금 걷다 보면 내 앞을 막고 서서 나를 올려다 보면서


“아빠. 힘들다. 힘들어여”


라면서 다리춤을 붙잡는다. 안아 줄 기운이 없을 때는


“힘들면 유모차에 타야 돼. 아빠가 지금은 안아주기가 어려워”


라고 얘기하고, 서윤이는 선택한다. 그대로 계속 걷든지 아니면 유모차에 타든지. 계속 걸을 때도 많다. 진짜 힘이 드는 게 아니라 ‘안기고 싶다’는 표현인 거다. 서윤이가 그렇게 얘기를 하면 대체로 안아주는 편이기도 하다. 진짜 몸이 녹초가 아닌 이상은 웬만하면 안아준다. 그런 힘이 생긴다. 막내라서 그런가. 몸을 착 붙이고 한 쪽 볼을 내 어깨에 기대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엄마는 걸으면서 안아주기가 어렵다는 걸 아니까, 그럴 때만큼은 뒤도 안 돌아보고 아빠에게 온다.


식당은 매우 한적했다. 아주 여유롭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었다. 얼마 전에 처치홈스쿨 식구들과 함께 왔을 때에 비하면 독서실 수준이었다. 자녀의 수가 많아지면 아무리 어른이 많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소란스러움과 정신없음이 발생한다. 평소에는 내 자녀 셋도 굉장히 분주하게 챙기는 것 같은 느낌일 때가 대부분인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아내도 동의했다. 여기서 내 자녀들까지 잠시 사라지고(?) 아내와 나만 남으면 그야말로 초일류 레스토랑이 되는 거고.


밥을 먹고 따로 산책을 할 시간은 없었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산책이었다. 대신 K의 아내와 첫째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와 K의 아내가 서로 주고받을 게 있었는데, K의 아내와 첫째도 산책을 할 겸 나왔다고 했다. 식당에서 집으로 가는 10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만남이었다. 그 잠깐 사이에도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녔다.


“아빠. 오늘 잠을 못 잘 거 같아여”


내일 떠날 예정인 가족 여행을 향한 아이들의 설렘의 표현이었다. 여행을 결정하고 이것저것 예매와 예약을 한 뒤로는, 계속 기대와 설렘이 컸다. 말 그대로 손꼽아 기다렸다. 아이들은 가방도 미리 다 싸 놨다. 소윤이는 잠도 못 잘 거 같고 내일 아침에도 엄청 일찍 깰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아이들을 눕히고 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짐을 쌌다. 짐을 싸기 위한 준비인 빨래가 한참 걸렸다. 빨고 말리고 또 빨고 말리고. 아내는 나름대로 부지런하게,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 진척이 느렸다. 내가 도울 영역이 많지는 않았다. 아내의 머리 속에 있는 설계(?)대로 움직이려면 하나 하나 지시를 받아야 했는데, 그러느니 그냥 자기가 하는 게 더 편한 것 같았다. 나도 아내와 함께 늦게까지 안 자긴 했지만, 크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여보. 지금 몇 시야?”

“지금? 세 시 다 됐는데?”


난 세 시 쯤 들어가서 누웠고 아내는 마무리를 더 하고 잔다고 했다. 내일의 후폭풍이 걱정이었다. 이제 여행이어도 체력전이라, 피로를 말끔하게 풀고 가도 모자랄 판에 세 시까지 못 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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