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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1. 2023

제주도 여행 1일차

23.03.22(수)

역시나 아이들이 먼저 일어났다. 아내와 나는 엄청난 피곤에 허덕였지만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해 강제로 부지런해졌다. 꽤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시작한 덕분에, 무엇보다 어제 아내가 늦은 시간까지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한 덕분에 여유로웠다. 표현으로는 ‘어제’가 편하지만 사실 오늘, 아니 오늘도 아니고 ‘몇 시간 전’이었다. 아내는 네 시에 누웠다고 했다.


준비가 여유롭긴 했는데 출발한 시간이 엄청 이른 건 아니었다. 그나마 애초에 목표 시간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잡아서 딱 적당한 시간에 출발했다. 아이들 아침은 빵으로 해결했다. 가는 차 안에서 조금씩 나눠주고 먹으라고 했다. 아이들의 기대에 찬 여러 계획의 소리로, 차 안에는 여행의 설렘이 가득했다.


“소윤아. 너무 기대해서 실망하는 거 아니야?”

“왜여?”

“아,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기도 하거든”

“아니예여. 너무 좋을 것 같아여”


그러다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원래대로라면 비행기 출발시간보다 50분 전에 도착이었다. 해외여행도 아니니 매우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는데 20분이 늘어났다. 아내는 굉장히 초조해 했다.


“여보. 괜찮아. 국내선인데 30분 전이면 충분하지 뭐”


아내는 휴대폰을 보다가 더 초조해졌다.


“여보. 30분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티켓이 사라진다는데?”

“어? 그래? 아닐 거 같은데”


막연하게 국내선이니 30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를 너무 오랜만에 타서 그런가 아내 말을 들으니 약간 불안해지기도 했다. 운전하느라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사색이 되었을 거다. 아내의 숨소리와 음성으로 추측이 가능했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줄어서 10분 정도의 여유가 생기긴 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아내와 아이들부터 내렸다. 짐도 엄청 많았는데 일단 다 내렸다. 아내는 급히 수하물 부치는 곳으로 갔고, 난 주차장에 주차를 하러 갔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아내가 너무 불안해 하니까 덩달아 초조하기는 했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 여보. 괜찮대요”


걸음의 속도를 조금 늦췄다. 아내는 한결 여유롭고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아이들과 함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 봐. 괜찮다니까”


소윤이는 비행기에서 먹을 간식을 사고 싶어 했는데, 너무 급하게 수속을 밟느라 미처 편의점에 들르지 못했다. 소윤이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비행기에 타서 뭘 먹고, 뭘 하면서 즐거움을 추구할지. 시윤이는 그런 거 없다. 그냥 순간순간의 재미를 찾는 거다. 아니면 누나를 따라 하거나. 소윤이는 아내, 시윤이는 나를 닮았다.


아무튼 약간의 소동은 있었지만 무사히 비행기에 탔다. 서윤이는 처음, 시윤이와 서윤이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방을 드는 게 버거울 정도로 많은 걸 챙겼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즐길거리도 적잖이 챙겼다. 안타깝게도 제주도는 너무 가까운 곳이었다. 뭔가 하지도 않았는데 ‘곧 착륙’한다는 음성이 들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허탈했을 거다. 비행기를 타는 게 워낙 오랜만이라 비행시간이 그 정도로 짧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을 거다. 서윤이는 엄청 좋아했다. ‘비행기에 탄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매우 신이 났다. 비행시간이 워낙 짧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아했다.


짐이 꽤 많았다. 많은 짐과 세 명의 자녀를 싣고 다닐 차부터 찾았다. 렌터카 업체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어제의 늦은 취침과 짧아도 어쨌든 세 자녀를 대동하는 여행길, 어느덧 오후로 접어든 시간 따위가 중첩되어 묵직한 피로감이 찾아왔다.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게다가 배도 고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좋았다. 그냥 여행도 아니고 결혼 10주년 여행인 데다가 언제나 만족스러운 제주도라서 그랬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꽤 힘들고 지겨웠을 텐데 잘 인내했다.


렌터카를 찾아서 짐을 싣고 모두 자리에 앉고 나서야 비로소 ‘가족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그전까지의 과정도 설레고 즐거웠지만 우리 가족만의 시간은 아니었으니까. 우선 밥부터 먹으러 갔다. 아내가 미리 찾아 놓은, 숙소 근처의 돈까스 가게였다. 맛있었다. 실제로는 맛이 조금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느끼지 못했을 거다. 배가 고파서 웬만한 건 다 맛있었을 거고, ‘제주도 하늘 아래’라는 사실도 모든 감각을 긍정적으로 바꿨을 거다. 아무튼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샀고, 근처에 있는 공원을 잠시 걷기로 했다. 이름은 공원이었지만 작은 동산 혹은 숲에 가까운 곳이었다. 여러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우거져서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람도 없어서 엄청 조용하고 신비로운 곳에 우리 가족만 있는 느낌이었다. 안타깝게도 얼마 안 가서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는 오늘도 비가 오고, 내일도 비가 오고, 모레도 비가 오고, 마지막 날도 비가 온다고 했다. 각오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정말 비가 오니 아쉬웠다. 급히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한층 여행의 느낌이 진해졌다. 아내와 나는 물론이고 자녀들도 만족했다. 여기저기 둘러보기 바빴다. 숙소의 곳곳을 구석구석 살폈다. 아내와 나는 한층 더 깊고 진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마침 침구류가 매우 깨끗하고 보송보송했다. 누우니 천국이 임한 기분이었다.


“여보. 안 돼. 일어나”

“어? 왜?”

“아 그렇게 누워 있다가 잠들 거 같아”

“잠깐 자도 되지 뭐”

“아니야. 지금 자면 감당이 안 될 거 같아. 일어나 얼른”


그때 잠들었으면, 아내 말대로 언제 일어났을지 모른다. 아내가 잘 막아줬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이미 숙소의 곳곳을 파악하고 놀고 있었다. 사실 따로 놀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신이 났다. 다들 2층에 가서 책을 펴고 읽었다. 집에도 있는 책이 있다고 하면서. 아내와 나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온전한 휴식이라고 하기에는 자녀들이 수시로 와서 ‘숙소에서의 발견’을 공유하고, 또 각자의 필요나 요청사항을 끊임없이 전달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잠깐 쉬다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피곤에 허덕이는 아내에게는 잠시나마 눈을 붙이라고 했다. 아내와 나의 일용할 야식을 비롯해 숙소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때 요긴한 식재료를 조금 샀다. 집에 와 보니 거실 탁자에 아내의 큐티 책과 펜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또 부질없는 시도를 하다가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곤히 자고 있었다.


저녁은 숙소로 돌아와서 먹었다. 아이들은 주먹밥, 아내와 나는 라면. 간단히 해결하고 아이들은 욕조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했다. 꽤 커다란 탕처럼 생긴 욕조라서 셋이 놀기에는 괜찮았다. 둘만, 아니 하나만 들어가도 꽉 차는 간이 욕조에 셋이 들어가서 부대끼던 집과 비교하면 호텔 수준이었다. 서윤이가 제일 좋아했다. 물을 먹고 넘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방 뛰었다. 난 화장실 한 쪽 편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서 아이들을 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괜찮은데 서윤이가 걱정이 됐다. 집에서 목욕하다가 넘어진 아이가 일어나지 못해서 그대로 하늘나라로 갔다는 얘기를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불시의 사고를 막기 위해 파수꾼이 됐다. 아내는 거실에서 여유롭게 좀 쉬라고 했다.


“아빠. 저는 이제 나갈래여”


의외로 소윤이가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말로는 재미있다고 하면서도 먼저 나오겠다고 했다. 시윤이는 누나를 따라 결정했다.


“시윤아. 시윤이는 더 할 거야?”

“누나 나가면 나가고 누나 더 하면 저도 더 할래여”


시윤이도 누나를 따라서 나왔고 자연스럽게 서윤이도 끝이었다. 그래도 서윤이는 더 하겠다고 떼 쓰고 그런 게 없다.


침실은 두 개였다. 집에서처럼 방 하나에서 아이들이 자고, 나머지 방에서 아내와 내가 자려고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자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모두 한 방에서 자기로 했다. 그렇다고 같은 시간에 자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은 먼저 재웠고, 아내와 나는 ‘여행의 밤’을 즐기려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 체력이 문제였다. 엄청 졸렸다. 차마 영화는 못 보고 TV에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과자를 먹고 나니 잠이 좀 깨긴 했지만 그저 TV를 보며 웃고 떠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건 어려웠다. 예능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이라는 걸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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