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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1. 2023

제주도 여행 2일차

23.03.23(목)

아이들이 먼저 일어났다. 아내가 가장 힘겨워 했고. 내가 일어나서 아이들 아침을 챙겼다. 아이들은 집에서 챙겨 온 성경도 읽고, 큐티도 하고, 필사도 했다고 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나보다 낫다는 생각도 했고. 엄마와 아빠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해치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스스로의 의지를 발휘했다는 점 자체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여행이지만 아침은 계란밥이었다. 아내와 나는 따로 밥을 먹지 않고 대충 때웠다. 커피를 비롯한 이것저것으로.


잠깐 가정예배를 드렸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생각은 했는데, 아침부터 알아서 하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고 실천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내와 나도 큐티를 하고 간단하게 느낀 점을 나눴다. 아이들과 예배를 드릴 때 항상 조심하는 게 있다. 모든 길이 설교 혹은 훈계로 통하지 않도록 하는 거다. 내 소감을 나누다가, 아이들의 소감을 듣다가, 전체 내용을 정리하다가, 자꾸 자녀를 향한 권면의 탈을 쓴 훈계와 설교로 흐르려고 할 때가 많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얘기를 해도 그렇게 된다. 오늘도 계속 신경을 쓰긴 했지만, 아마 그랬을 거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기예보가 틀리길 바랐지만 대한민국의 과학 기상의 기술력은 위대했다. 오차 없이 비가 내렸다. 바베큐도 따로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비가 언제 그칠지도 모르고 그친다고 해도 언제 또 다시 내릴지 몰랐다. 대신 마당에 나가 버너로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 무렵에는 잠시 비가 그친다는 예보도 있었고, 실제로 빗줄기가 약해지기도 했다. 온통 비였던 예보 덕분에 아이들 우비와 장화까지 챙겨왔다. 아이들은 우비와 장화를 입고 마당에 나가서 놀았다. 마당에 잔디밭이 있었는데 다 젖어서 우비와 장화가 필요했다. 비도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난 또 마트에 갔다. 고기를 비롯해서 구워 먹을 때 필요한 이것저것을 샀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강력하게 요청한 마시멜로와 소시지도 샀다. 감사하게도 비가 잠시 그쳤다. 날이 꽤 쌀쌀했지만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아이들은 계속 놀게 하고 난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아내는 식사를 하기 위한 이것저것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그냥 놀면서 먹게 했다. 한 차례 비가 와서 야외에 있는 탁자와 의자가 다 젖기도 했고, 여행이니 자유롭게 놀면서 먹으라고 하고 싶었다. 사실 아내와 나도 그게 더 편하다. 집에서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면, 그게 제일 편할 거다. 뭔가 가르치고 훈련을 시키려고 하니까 힘과 노력이 들어가는 거지. 고기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맛도 맛이었지만 간편하게 버너를 활용한 게 아주 좋았다. 마침(?) 고기를 다 먹었을 때 쯤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아이들도 여행이 아니라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놀면서 먹기’에 매우 만족했다. 여행에서만 가능한 ‘구운 마시멜로 먹기’도 좋아했다.


많이는 아니어도 여전히 비가 내렸고 날이 갤 기미는 없었다.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초단기 강수 예측을 확인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비가 덜 오는 지역은 어디인지, 비가 멈출 예정인 지역은 어디인지 확인했다. 여행 카페에 실시간으로 ‘여기는 해가 쨍쨍 떴어요’ 이런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너무 멀지도 않으면서 숙소 근처보다는 날씨가 괜찮을 만한 곳을 골라서 출발했다. 안개가 자욱했다. 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깔려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안개 구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잠시 엄청 화창하고 맑은 하늘이 보였다. 목적지를 바꿔서 푸른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갈까 하다가 원래 계획대로 진행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대체로 기분이 좋았지만, 차에 앉으면 자꾸 투닥거렸다. 집에서는 각자 분리된 자리에 앉다가 벤치형 뒷자리에 앉으니 자리를 가지고 티격태격 했다. 자녀들이 다투는 꼴 보기 싫어서 큰 차 산다더니 정말이었다.


아내와 내가 결혼 첫 해에 갔던 카페가 아직도 있었다. 그때의 추억을 가지고 다시 방문했다. 동네나 카페나 그때에 비하면 왠지 모르게 활력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10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근처에 있던 숙소에 묵었다고 하는데 그건 잘 기억이 안 났다. 카페에서의 기억은 선명했다. 아내와 나 모두 그 동네를 무척 좋아했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그걸 어떻게든 설명해 주려고 애를 썼다. 물론 녀석들은 큰 관심이 없었다. 간식으로 챙겨 온 캬라멜과 아내가 사 준 아이스크림에 훨씬 집중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일탈과 개방’이 이번 여행의 큰 즐거움일 거다. 군것질을 많이 허용했다. 여행하는 동안 허용해 준다고 집에 가서도 그 기조가 이어지는 단계는 넘어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네 산책도 했다. 날이 너무 흐려서 제주바다의 참 매력은 만끽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바닷가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넘쳐나는 흥과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종일관 까불고 흥분했다. 아무리 여행이어도 허용 가능한 범위라는 건 존재한다. ‘이제 적당히 해라’, ‘선은 넘지 말아라’, ‘자제해라’ 이런 말은 참 많이 했다. 아내도 나도. 자녀들과 걷다 보니 ‘아, 그냥 나 혼자 하염없이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력하게 들었다.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가는 사치를 부릴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상상만 해도 좋았다.


아내는 빵 가게에 들러서 빵을 샀다. 미리 찾아 본 곳은 아니었고 걷다 발견한 곳이었다. 꽤 많이 샀다. 참아왔던(참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빵 욕구를 폭발시키듯, 한 보따리를 샀다(이렇게 말하니까 또 너무 많은 것 같네. 그냥 두어 개 보다는 많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자연드림에 들러서 순살 치킨을 샀다. 숙소에서 나와서 카페로 가면서 자연드림에 들렀었는데 그때 아내가’


“치킨 사서 애들 이따 저녁으로 줄까?”


라고 물어봤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다 식을 테니 다른 걸 먹이자고 대답했다. 막상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니 아이들 저녁으로 마땅히 먹일 게 떠오르지 않았다. 자연드림에 전화를 해서 치킨을 예약하고, 거의 문 닫을 시간 즈음에 가서 찾았다. 다들 엄청 맛있게 먹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내와 나에게도 아이들 저녁 준비와 진행을 매우 간편하게 만드는 한 수였다.


치킨을 먹고 나서는 TV를 틀어줬다. 각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하나씩 보여줬다. 서윤이는 ‘뚜기와 따기’, 시윤이는 ‘슈퍼윙스’, 소윤이는 ‘옥토넛’을 골랐다. 안타깝게도 서윤이가 고른 ‘뚜기와 따기’는 없어서 ‘뽀로로’로 대체했다. 요즘 아이들이 어느 수준의 애니메이션 혹은 영상을 보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보통 소윤이나 시윤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보는 영상은 아닐 듯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워낙 영상에 노출이 안 되다 보니, 그 정도도 충분히 재밌게 본다. 심지어는 서윤이가 고른 뽀로로도 재밌게 본다.


아이들이 영상을 보는 동안 아내에게는 욕조에 물을 받고 잠깐 들어가라고 했다. 원래 어젯밤에도 그렇게 할까 싶었는데 너무 늦고 피곤해서 여력이 없었다. 아내는 원래 ‘목욕’, ‘찜질’ 같은 것에 별로 욕구와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 오늘도 크게 반기는 건 아니었지만 잠시 분리되어서 쉰다는 것에 의미를 두라고 했다. 물은 내가 미리 받아뒀다. 아내가 어쨌든 혼자만의 여유와 쉼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윤이가 자기도 목욕을 하러 가겠다고 했다. 자기가 고른 뽀로로 영상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러겠다고 했다. 영상을 안 보고 목욕을 하러 가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옷을 벗겨서 아내가 있는 탕에 넣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TV를 봤다.


고른 영상을 다 보고 나자 소윤이와 시윤이도 탕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서윤이는 여전히 잘 놀고 있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합류했다. 졸지에 나의 자유시간이 됐다. 아내와 아이들은 꽤 한참 탕에 있었다. 덕분에 나도 꽤 한참 TV를 보며 쉬었다.


“여보. 여보”

“어, 왜?”

“이제 애들 나가야겠다”

“알았어. 씻겨서 내보내”


아이들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준비해 놓고 한 명씩 받았다.


“여보. 나 쉬는 거 맞지?”


아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게 말했다. 쉬는 듯 쉬는 게 아닌 듯. 이게 아이들과 함께 쉬는 시간의 본질이다.


오늘은 아이들을 눕히고 영화를 봤다. 아내와 나는 저녁을 따로 안 먹었더니 영화를 볼 시간 즈음에는 배가 고파졌다. 편의점에 가서 아내가 먹을 떡볶이를 샀다. 난 핫바를 샀다. 아이들에게 ‘일탈과 개방’이 즐거움이라면, 아내와 나에게는 ‘야식과 연등’이 여행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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