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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2. 2023

달려라 시유니

23.03.27(월)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을 하는 날이었다. 나도 아침에 잠깐 교회에서 일을 했다. 잠깐 일정이 있어서 나갔다가 점심시간 즈음에 돌아왔다. 나와 K도 엄마 선생님들, 자녀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날씨가 무척 좋았고, 벚꽃은 여전히 풍성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엄마선생님들은 어린 자녀들을 재우는 게 주요 일정이었다. 낮잠을 자지 않는 자녀들은 K와 내가 잠깐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원래 계획되지 않았던, 갑작스러운 아빠들의 합류였다. 당연히 엄마 선생님들은 매우 환영했다.


K와 내가 자녀 여덟 명을 데리고 나왔다. 벚꽃이 아름답게 폈으니 좋은 날씨와 함께 누리며 산책을 할 생각이었다. 다만, 자녀들은 아직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꽃’만으로는 완전한 만족을 느끼기 어려운 나이였다.


“저기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아여”


교회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꽤 놀았다. 여느 때처럼 얼음땡이나 잡기 놀이를 했는데, 다른 날과 비슷하게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서로 조롱하는 듯한 표정과 행동(장난이지만), 강력한 우기기, 자기에게 유리한 규칙을 그때 그때 생성하기, 고의로 잡히거나 고의로 안 잡기 등이 난무했다. 큰 자녀들만 따로 모아서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 태도를 다시 한 번 알려줬다. 다들 너무 신이 나서 진지하게 듣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얘기했다.


교회 근처에 있는 대학교로 갔다. 거기도 마찬가지로 벚꽃이 가득했고 푸른 나무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자녀들도 뭘 안 하고 그냥 걷기만 해도 깔깔거렸다. 꽃잎 주워서 깔깔거리고, 나뭇가지 주워서 깔깔거리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유머를 주고 받으며 깔깔거리고. 아무튼 엄청 웃어댔다.


넓은 운동장에 갔다. 요즘 달리기를 하는 K가 자녀들에게도 ‘한 번 뛰어 보자’고 하고는 뛰기 시작했다. 자녀들도 K를 따라 뛰었다. 어떤 자녀는 처지고 어떤 자녀는 치고 나가고. 시윤이는 가장 앞에서 뛰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더니 곧바로 두 바퀴를 뛰었고, 그렇게 세 바퀴, 네 바퀴도 뛰었다. 잠깐 쉬었다가 두 바퀴를 더 뛰었다. K의 말로는 거기가 300미터가 넘는다고 했다. 시윤이가 엄청 느리게 뛴 것도 아니었다. 새삼 놀라웠다. 여러 경험으로 시윤이의 체력과 지구력이 조금 좋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그 큰 운동장을 여섯 바퀴나 뛰다니. 내가 시윤이 속도에 맞춰서 한 바퀴를 뛰어봤는데 숨이 찼다. 시윤이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집중할 때 나오는, 시윤이 특유의 ‘약간 화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가끔 시윤이를 데리고 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순전히 나의 바람이지만, 왠지 시윤이 속에 있는 스트레스도 풀릴 것 같았다. 소윤이는 확연히 달랐다. 한 바퀴를 채 못 뛰고 헉헉거렸다. 아내를 닮아서 선천적으로 호흡기 쪽이 약하다. 심폐지구력이 매우 약한 것 같다. 이게 살면서 큰 어려움을 초래할 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하게 ‘조금 좋아지면 좋겠다’라는 바람은 있다.


엄마 선생님들의 커피를 사서 교회로 돌아갔다. 우리가 돌아갔을 때는 낮잠을 잤던 자녀들이 대부분 깨어 있었으니까, 밖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거였다. 엄마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때보다 훨씬 더 고마워했다. 예상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하면서.


자녀들을 다시 엄마 선생님들에게 넘겨주고 K와 나는 업무로 복귀했다. 다른 엄마 선생님들은 가고 아내와 K의 아내만 남아서 나와 K의 퇴근을 기다렸다. 일을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에게 오더니


“아빠. 오늘 00이네 집에 가서 저녁 먹으면 안 돼여? 제발여”


라고 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일단 얼버무렸다. 아내들과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 건지 아니면 그야말로 자녀들만의 생각이었는지 파악이 안 된 상황이었다.


“어? 갑자기? 음, 일단 엄마한테도 물어봐”


아내에게 뛰어갔던 소윤이와 시윤이가 다시 나에게 와서 얘기했다.


“아빠. 엄마는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하셔여”


아내도 나와 비슷한 듯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일단 저녁은 어떻게 하든 산책부터 하기로 했다. 근처의 공원(이지만 바닷가와 숲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으로 갔다. 벚꽃이 엄청 풍성했다. 어제도 벚꽃을 보고 왔는데, 질리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거기에 바다의 풍경은 언제 봐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자녀들은 언제나처럼 깊은 흥분과 흥으로 이리저리 날뛰었지만, 전혀 마음에 거슬리지 않았다. 광활한 대자연 속에 있어서 마음이 넓어졌나.


저녁은 K의 집에서 치킨과 떡볶이를 먹었다. 자녀들이(내 자녀나 K의 자녀나 할 것 없이) ‘저녁도 꼭 같이 먹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강력하게 요청했다. 치킨과 떡볶이를 먹고 난 뒤에는 자녀들에게 영상을 틀어줬다. 요즘은 자녀들이 약간 ‘루틴’처럼 당연하게 요구하는 듯한 태도가 없지 않지만 일단 보여줬다. 오늘은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줬다. 그것도 충분히 재밌게 봤다. 자녀들에게 영상을 보여주느라 어른들이 억지로 기다린 건 아니었다. 사실 어른들에게도 수다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로지 식사가 목적이었다면, 밥만 먹고 부지런히 헤어졌겠지만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집에 돌아오니 피로가 폭풍같이 몰아쳤다. 아내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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