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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2. 2023

우연인 듯 우연 아닌

23.03.28(화)

일을 마치고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어디서 일을 하느냐는 아내의 문자에 답장을 했다. 잠시 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예요?”

“나? 지금 000. 여보는 어디야?”

“아, 우리는 남구야”

“아, 진짜? 우리도 남구에 있었는데”

“아 그래? 왜 연락 안 했어요”

“아까 메시지 보냈는데”

“이쪽으로 다시 올 생각은 없죠?”

“우리는 벌써 000까지 왔는데”


아내는 K의 아내와 자녀들을 만났다고 했다. 만나려고 만난 건 아니었고, 각자 다른 이유로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다가 때와 장소가 맞아서 만난 거라고 했다. 그렇다고 또 정말 놀랍도록 우연히 만난 건 아니었을 거다. 워낙 연락을 자주 하니까 서로의 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을 테고, ‘시간이 되면 보자’ 정도를 기약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K와 나는 아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놀이터에 있었다. 자녀들은 어제처럼 강력한 요청을 했다.


“아빠. 우리 저녁 같이 먹어여. 네? 제발여. 네?”


‘제발’의 남용은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걸 모르나 보다. 아무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예전에 우리 가족끼리 갔던 가게로 갔다. 그때도 맛있기는 했는데 굳이 일부러 찾아갈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무척 친절하셨다. 어린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우호적이셨다. 아이들 먹을 게 없다고 하시면서 계란프라이까지 해 주셨다. 꼭 먹을 걸 더 주셔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친절하셨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왔을 때도 똑같았다는 게 기억이 났다.


“아빠. 저녁 다 먹고 00해수욕장에 가자여. 산책하러여. 제발여. 네?”


수용이 불가능한 요구였다.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바로 근처에 공원이 있다고 해도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였다. 대신 식당 근처 동네를 조금만 걷기로 했다. 유흥가라 걷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20분 정도 걸었다. 자녀들은 산책하기 적합하지 않은 곳에서도 나름대로의 재미를 만들었다. 엄청 까불었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헤어졌다. 어제의 피로가 해소되지 않고 오늘까지 누적된 듯했다. 차에 앉자 졸음이 쏟아졌다. 아내에게 운전을 맡기고 난 눈을 붙였다. 그냥 감겼다. 붙이고 말 것도 없이. 아내가 자연드림에 들러서 장을 보는 동안에도 난 차에서 잤다. 장을 보고 나서는 또 K네 집 앞으로 갔다. K의 아내가 아내에게 주려고 빵을 샀다고 했다. 그것까지 받아서 집에 오니 역시나 늦은 시간이었다.


아내도 나도 정신을 못 차렸다.


“아, 왜 이렇게 피곤하지?”

“여행 갔다 와서 제대로 안 쉬고 계속 늦게 들어와서 그런가 봐”


아내는 K의 아내가 사 준 빵을 먹으며 기운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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