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Dec 03. 2023

따로따로 데이트

23.04.01(토)

#따로따로 데이트

##D+2948, D+2166, D+1093 - 23.04.01(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축구를 하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통화를 했는데 소윤이 목소리도 들렸다. 목소리부터 달랐다.


“소윤아. 괜찮아?”

“네. 괜찮아여”

“진짜? 완전히?”

“네. 지금은 하나도 안 힘들어여”

“숨 쉬는 건?”

“거의 안 힘들어여”

“소윤아. 엄마랑 데이트 하고 싶어서 거짓말 하면 안 돼. 힘들면 힘들다고 해야 돼”

“지이이이인짜. 지이이이인짜 괜찮아여”


아내가 보기에도 멀쩡해 보인다고 해도 집에 도착해서 직접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쌍꺼풀이 짙어졌고 얼굴에 피곤함이 잔뜩 내려앉기는 했지만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아픈 걸 억지로 참고 숨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소윤이가 나아졌으니 원래 계획대로 아내와 소윤이가 데이트를 하면 됐는데, 다른 변수가 생겼다. Y네 가족이 근처에 오게 돼서 가능하다면 오후에 만나자고 했다. 소윤이에게, 엄마와의 데이트와 Y네 가족(반가운 Y의 자녀들도 함께)을 만나는 것 중에 선택하라고 했어도 아마 Y네 가족을 만나는 걸 택했을 것 같다. 소윤이에게는 다른 선택지를 제공했다. Y네 가족을 만나는 건 아내와 나의 선에서 정했다. 소윤이에게는 짧게라도 엄마와 데이트를 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날로 다시 잡을 것인지를 고르라고 했다. Y네 식구와 만나기로 한 시간을 고려하면, 아내와 소윤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대략 세 시간 정도였다.


“소윤아. 오늘 짧게 데이트 해도 금방 또 데이트 할 수 있기는 해”


‘금방’이 세월아 네월아가 될 가능성도 컸지만, 어쨌든 ‘짧은 데이트로 어렵사리 얻은 데이트 기회비용을 상실한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얘기를 해 줬다. 소윤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오늘 데이트를 하겠다고 했다.


데이트가 끝나고 Y네 식구를 만나러 가는 동선을 생각하면 나도 시윤이, 서윤이와 나가 있어야 했다. 시간을 생각하면 그냥 집에 머물면서 서윤이를 재우는 것도 좋아 보였지만 그럼 아내와 소윤이가 우리를 데리러 다시 집으로 와야 했다. 모두 함께 나왔다. 아내와 소윤이를 먼저 내려주고 나와 시윤이, 서윤이도 멀지 않은 곳에 가서 주차를 하고 내렸다(그렇다고 걷다 보면 만날 만한 곳에 간 건 아니었다. 아내와 소윤이의 데이트 시간은 철저히 보장했다).


공원이었다. 시윤이는 자전거를 한 대 빌렸고 서윤이는 차에 있던 킥보드를 꺼내줬다. 며칠 전부터 킥보드 타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아내와 소윤이가 데이트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나는 시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운동장이나 공원에 가려고 했다. 서윤이는 자기가 킥보드를 잘 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평소에도


“아빠. 저 킥보드 잘 타자나여”


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적극적으로 호응했고. 오랜만에 타서 그러는지 생각보다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직 방향 전환도 원활하지 못하고. 서윤이는 자꾸 나를 불렀다.


“아빠아. 아빠아. 저 아직 안 갔어여”

“어, 알아. 아빠도 안 가. 걱정하지 마”


시윤이는 저 멀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고 그랬다. 자전거를 타면서 엄청 활짝 웃고 그러지는 않는다. 재밌어 하는 건 분명하다. 다만, 감정을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아내에게만, 그것도 안 좋은 감정만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건 왜일까. 시윤이는 한 시간을 넘게 자전거를 탔다. 아마 더 타라고 했으면 계속 탔을 거다.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계속 탔다. 은근한 끈기와 꾸준함이 있다. 그걸 잘 이끌어 내면 좋을 텐데.


점심을 먹어야 했다. 아내와 소윤이와 다시 만나기로 한 시간이 임박했을 때였다. 싸고 맛있으면서도 (맛은 조금 없어도 괜찮았다) 간편하고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떠오르지는 않았다. 일단 근처를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얼마 안 가서 돼지국밥 가게가 보였다.


“시윤아. 우리 돼지국밥 먹자”


시윤이는 ‘돼지국밥’이라는 단어는 들어봤고 먹어도 봤지만, 호불호를 표현할 만큼의 경험은 없었을 거다. 돼지국밥과 순대 국밥을 한 그릇씩 주문했다.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돼지국밥을 나눠주고 난 순대 국밥을 먹었다.


“아빠. 저 순대 주세여”

“아빠. 저도 순대 주세여어”


시윤이와 서윤이 모두 순대를 잘 먹었다. 순대는 거의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줬다. 시윤이와 서윤이 모두 엄청 잘 먹었다. 서윤이도 내가 먹여주니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나도 배부르게 먹었다. 앞으로 애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소윤이는 소품 가게에도 가고 카페에도 갔다고 했다. 짧았지만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 듯했다.


Y네 식구를 만나기 위해 한 시간 정도 이동했다. 날은 무척 좋았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소윤이 얼굴에 피곤이 너무 진해서 걱정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얼굴도 멀쩡해졌다. 피곤이 걷힌 느낌이었다.


“소윤아. 조금이라도 힘들면 얘기해”


물론 소윤이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진짜 그래 보였다.


오후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Y네 식구를 만났다. 산책을 했다. 자녀들은 역시나 잘 놀았다. 걸을 때는 걸으면서, 쉴 때는 뛰면서.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조금 걸으니 금방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근처의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Y의 첫째와 둘째, 소윤이와 시윤이는 한 식탁에 앉혔다. 반찬에 생선이 있어서 살을 발라주려고 했는데 괜찮다고 했다. 자기들이 알아서 발라먹겠다고 했다. Y의 막내와 서윤이는 어른들의 식탁에서 함께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해 질 녘 Y네 가족은 부모님을 뵈러 가야 해서 바로 헤어져야 했다. 아쉬우니 식당 근처를 조금 또 걸었다. 자녀들은 그 틈을 활용해 또 열심히 뛰고 놀았다.


Y네 식구와 헤어지고 나서 우리 가족끼리 따로 밤 산책을 좀 하려고 했다. 생각했던 곳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차로 30분이었다. 들렀다 가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잠시 고민을 했는데 이미 약속을 하기도 했고 나도 바로 집에 들어가는 게 뭔가 아쉬워서, 가기로 했다.


아내는 도착하자마자 보인 샌드 가게에 들어가자고 했다. 샌드 몇 개를 샀는데 사장님이 아이들을 너무 예뻐해 주셨다.


“저도 다자녀예요”


마치 ‘해병대’ 같은 걸까. ‘다자녀’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반갑고 공감이 되고 그렇다. 사장님은 샌드 두 개를 얹어 주셨다. 공짜로 두 개의 샌드를 얻어서가 아니라, 굉장한 환대를 받은 것 같아서 기분 좋게 산책을 시작했다.


산책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사람이 엄청 붐비는 곳이었다. 꽤 늦은 밤이었는데도 사람이 북적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십원짜리빵’을 사 먹었다. 십 원 짜리 모양을 본 떠서 만든 빵인데, 속에 치즈가 들어 있어서 난 안 먹었다. 너무 뜨거워서 손에 쥐여주고 먹으라고 할 수가 없었다. 몇 걸음 걷다가 아내가 먹여 주고, 다시 몇 걸음 걷다가 아내가 먹여 주고를 반복했다.


잡화점에도 들렀다. 잡화점, 소품 가게, 문방구 이런 곳은 소윤이가 언제나 원하고 즐거워하는 곳이다.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만 들어가서 골랐다. 그리 넓은 곳이 아니었다. 꽤 한참 골랐다. 30분 가까이. 자기 용돈을 가지고 직접 결정해서 사는 재미가 있나 보다. 통 크게 동생들에게 선물 할 때도 많고. 그 좁은 곳을 몇 바퀴나 돌면서 고민하는 소윤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다. 시간에 쫓기거나 너무 피곤했으면 그 따위 여유가 없었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피곤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여유로웠다.


집에 돌아오니 타격이 왔다.


“우와. 너무 피곤하다”

“그러게”


다 놀고 와서야 ‘소윤이 아직 다 나은 게 아닐 텐데 너무 무리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정사정 없는 동생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