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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5. 2023

오랜만에 쉼표 없는 하루

23.04.03(월)

아내와 아이들은 낮에 문구점에 다녀왔다. 내일이 서윤이의 생일인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서윤이의 선물을 사야 한다고 했다. 정작 아내와 나는 아무 생각도 준비도 없었다. 소윤이는 아기자기한 선물 네 가지를 골랐고, 시윤이는 머리핀, 아내는 큐브를 샀다. 큐브는 서윤이가 고른 거라고 했다. 지난 번에 소윤이가 자기 용돈으로 산 큐브가 집에 있는데 또 고른 거다. 할 때마다 언니나 오빠, 특히 오빠와 실랑이를 벌이는 게 싫었는지, ‘완전한 자기 소유’의 큐브를 가지고 싶었나 보다. 그래 봐야 우리 집에 ‘완전한 소유’는 없는데.


아내는 장도 보고 왔다. 내가 아내와 아이들보다 먼저 집에 왔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고난주간 특별 저녁예배를 가야 했다. 아내와 나는 찬양단이라 한 시간 먼저 가야 했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의 요청대로 쌀을 씻어서 밥을 안쳤다. 끝내야 하는 일이 남아서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일을 하며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금방 왔다. 다른 날과 비슷하게 아이들은 무척 신이 났고 아내는 한껏 지친 모습이었다. 아내는 도착하자마자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했다. 나도 돕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일이 금방 끝나지 않았다. 돕기는커녕 아내가 저녁 준비를 마치고 상을 다 차렸을 때까지도 마치지 못했다. 겨우겨우 일을 마무리 하고 식탁에 앉았다.


매우 속도감 있는 저녁 시간이었다. 부지런히 저녁을 먹고 쉴 틈 없이 준비해서 다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늦은 밤에 교회를 간다는 사실에, 교회에 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냥 신이 났다. 아내와 내가 연습을 하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서윤이도 3층에 가서 놀았다. 아내나 내가 동행하지 않으면 소윤이와 시윤이가 있어도 서윤이는 보내지 않는 편인데 (사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처치홈스쿨 선생님들이 계셔서 보냈다. 예배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을 때는 모두 내려왔는데, 다들 땀 범벅이었다.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머리가 흠뻑 젖어 있었다.


사실 오늘 내내 얼른 저녁 예배에 가고 싶었다.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결단 덕분에 마음에 큰 기대와 소망이 있었다. 마음과 육신은 별개이던가. 막상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는데 조금씩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예배를 마치고 기도하는 시간에는 더 심해졌다. 혼수상태에 가까워졌다.


“아빠. 아빠”

“어?”

“아빠. 잤어여?”

“어? 아니야. 기도…”

“안 잤어여?”

“조금?”


자면 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조금’은 뭘까. 아무튼 정신을 못 차렸다. 그에 비해 아내는 엄청 열심히 기도를 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피곤한 걸로 따지면 결코 나에게 뒤지지 않을 텐데. 아내라도 열심히 기도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데리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내가 기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자녀들은 그 시간(매우 늦은 시간)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 놀았다. 집에 돌아오니 무척 늦은 시간이었다. 당연히 예상했지만, 막상 시계를 보니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출근했다가 퇴근했는데 바로 자야 할 시간’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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