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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5. 2023

조용히 넘어가는 생일

23.04.04(화)

서윤이의 생일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 비하면 아직 마냥 어리다는 생각이기도 하고, 따로 챙기고 그럴 여력이 없는 때이기도 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서윤이의 생일을 맞았다. 다행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제 생일을 그냥 넘어가는 건 물론이고 대충 챙기면 서운해 할 텐데, 서윤이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생일을 좋아하고 기대하기는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안아주니까 엄청 좋아했다. 어제 산 선물을 드디어 받는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서윤이도 자기 생일이 뭔가 좋은 날이라는 건 안다. 소윤이를 비롯해서 교회의 다른 언니와 오빠들이 축하 받는 걸 봐서 그런 듯하다.


서윤이의 생일이었지만, 서윤이를 위한 일정은 없었다. 아내는 낮에 Y의 아내와 자녀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Y의 아내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아내는 아침부터 서둘렀다. 안 그래도 촉박하고 시간이 부족한 아내에게 미안한 부탁을 했다. 일 할 때 필요한 걸 챙기지 못해서 아내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전화로 얘기를 했다. 아내가 매우 당황하거나 내키지 않을 때 나오는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예상은 했다. 아내의 반응이 어떨지는. 그만큼 미안한 부탁이기도 했고. 충분히 이해했다. 아내가 잠시 후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오전 시간이 분주한 상태이다 보니 약간 당황해서 조금 무뚝뚝하게 이야기 했네요. 미안해요. 기쁘게 전해주러 갈게용”


나도 아내에게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물건을 전해줬다. 아내도 나도 바빠서 차에 탄 채로 그야말로 물건만 주고받았다.


“서윤아. 생일 축하해”


막간을 이용해 서윤이의 생일을 한 번 더 축하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잦은 축하가 다였으니까.


Y의 아내와 자녀를 만나러 K의 아내와 자녀들도 함께 갔다고 했다. Y의 아내와의 만남은 금방 끝났지만, 그 후로도 계속 거기 머물렀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K의 자녀들과 함께 놀았고. 오늘은 특별히 모래놀이를 허용해 줬다고 했다. 게다가 물을 쓰는 것까지. 이건 엄청난 걸 의미한다. 물과 모래의 만남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다.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지만,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 해’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를 만나자마자 오늘 모래를 가지고 빵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하아. 오늘 쉽지 않았다”


아내는 오늘 하루를 이렇게 정의했다.


저녁은 K네 식구와 함께 교회에서 먹기로 했다. 어차피 저녁에 예배를 드려야 하니 기왕 함께 있었던 참에 다시 집에 가지 않고 교회에 머물기로 한 거다. 나와 K도 일을 마치고 교회로 갔다. 자녀들은 떡국, 어른들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서윤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아내가 집에서 가렌드를 챙겨왔다. 벽면 한 쪽에 ‘HAPPY BIRHTDAY’와 숫자 ‘4’ 풍선을 붙인 게 전부였다. 서윤이를 그 앞에 앉히고 케이크에 초를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K네 식구도 함께 한 덕분에 나름대로 풍성한 축하였다. 서윤이는 좋아했다. 언니와 오빠가 준비한 선물을 받는 것도 좋아했다.


케이크는 초코케이크였는데, 자녀 여섯 명이 달려드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서윤이와 K의 막내도 이제는 엄연한 ‘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메뚜기 떼가 달려든 논이나 밭이 쑥대밭이 되는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눈 깜짝 할 사이에 케이크는 자취를 감췄다.


오늘은 아내도 힘에 부쳤는지 어제보다는 기도를 많이 못했다. 조금 빨리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 와서 시간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피로도는 어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누적되어 더 피곤한 느낌이었다. 엄청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내는 아이들을 씻겨야(샤워)겠다고 했다. 낮에 모래를 가지고 놀았으니 깨끗하게 씻기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낮에 아이들이 어떻게 놀았는지 보지 못한 나는, 그냥 재워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찝찝할까 싶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다 씻겼다. 난 잠시 방전되어 충전하는 중이었다.


다 씻겨서 눕히고 나니 열 한 시가 넘었다.


“와아. 열 한 시. 힘드네”

“그러게”

“하루가 꽉 찬 느낌이네”


지친 몸과 마음을 힘겹게 가누고 있는 아내와 나에게 영상이 하나 왔다. 함께 예배를 드린 처치홈스쿨 선생님이 보낸 영상이었는데, 서윤이가 찬양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냥 찬양을 하는 게 아니라 온 몸과 표정으로, 아주 진지하게 찬양을 하는 모습이었는데 웃기면서도 기특하고, 귀엽고 그랬다. 그냥 보고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내와 나는 몇 번을 돌려봤다.


“서윤이 미역국도 못 끓여줬네?”

“그러게”


세 살 때까지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했으니까, 올 해까지는 아직 열심히 효도하거라. 만 세 살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미역국은 네가 아니라 엄마가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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