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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6. 2023

안 가면 안 돼요?

23.04.07(금)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 즈음에 잠시 집에 들렀다. 밥을 혼자 먹어야 해서 간단하게 빵으로 때우려고 빵 가게에 갔다가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빵을 전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갓 나왔을 때 먹으면 세상 둘도 없이 맛있는 소금빵과 서윤이가 좋아하는 소보로 빵을 사서 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아빠의 등장을 매우 반겼는데, 아내가 아이들보다 세 배 정도는 더 반가워 했다. 빵만 주고 가려고 했는데 아내가 붙잡았다.


“여보. 조금만 더 있다가 가요. 바로 가야 돼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내는 아예 점심도 먹고 가라고 했다. 나 때문에 상을 차리고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그냥 가겠다고 했는데, 오늘따라 아내가 간곡하게(?) 붙잡았다.


“그래. 그럼 그냥 집에 있는 참치랑 김치 놓고 먹자”


남편에게 따뜻한 집 밥 한 끼 먹이고 싶은 아내의 마음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어떤 이유로든 남편의 체류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마음이 컸을 거다.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내가 먹으려고 차에 두고 왔던 빵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주고 나왔다. 아내는 밥을 다 먹고 나갈 때도


“여보. 안 가면 안 돼요?”


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저 웃자고 던지는 농은 아니었을 거다. 그래도 한 서너 시간 뒤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짧다면 짧은 그 사이에도, 심심하다며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방바닥을 뒹구는 시윤이 사진을 받았다. 아내의 육아 일상에서는, 빙산의 일각의 일부분도 안 되는 모습일 거다.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 그 바쁜 와중에도 저녁 반찬으로 제육볶음과 잡채를 준비했다. 아무런 날도 아니었다. 그냥 4월의 어느 날일 뿐이었다. 그런 평범한 일상에 제육볶음과 잡채를 마치 평범한 음식인 것처럼 준비하다니. 맛이야 말 할 것도 없다. 오늘은 잡채도 완벽했다. 젊은 주부의 어설프고 허전한 풋내 나는 잡채가 아니었다. 완숙한 어느 중년의 주부가 만든 잡채와 비슷했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아내의 주부로서의 능력치는 증가하고 있다.


오늘은 저녁 예배 때 찬양단을 서지 않아도 되서 매우 여유로웠다. 한 시간 정도 더 생긴 건데 체감상으로는 서너 시간이 비는 것처럼 여유가 생겼다. 다녀와서도 마음이 편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성금요일’에 걸맞지 않는 마음가짐이긴 했지만 금요일이기도 했고 특별 저녁 예배의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그런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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