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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6. 2023

부모님을 찾습니다

23.04.09(주일)

“아빠. 일곱 시예여. 청소해야 되지 않아여?”


소윤이가 나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소윤이의 목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한 달에 한 번 모두 모여 청소를 하는데 항상 주일 아침이다. 나가지 않으면 적은 금액이지만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도 벌금이지만, 청소를 핑계로 한 번씩 얼굴도 보는 거고. 그렇다고 엄청 긴밀한 소통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제는 아예 알람 맞추는 걸 잊고 잤다. 소윤이 덕분에 겨우 시간을 맞춰서 나갔는데 청소는 거의 막바지였다. 죄송한 마음에 짧고 굵게, 열심히 하고 들어왔다.


“소윤아. 소윤이 덕분에 벌금 면했네”


청소 덕분에 주일 아침이 길어졌고 여유롭게 교회에 갈 준비를 했다.


부활절이었다. 몇 주 동안 혼자 앉아서 예배를 잘 드리던 서윤이가, 오늘은 찬양 시간 마지막 즈음에 유유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내 옆에 서서 아내 손을 잡았다. 방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찬양을 열심히 하는 건 아니었다. 엄마 따라 시장에 나온 모습이었달까. 아내는 끝까지 서윤이 손을 잡고 찬양을 불렀다. 서윤이를 비롯해 어린 자녀들을 당신의 손주 혹은 자식, 조카처럼 예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교회라 가능한 일이었다. 혹여 누군가는 예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실까 봐 항상 조심스럽다. 오늘은 서윤이가 너무 자연스럽고 아무렇지도 않게 침투(?)한 탓에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점심 먹고 나서는 아무런 일정이 없었다. 오후 예배도, 목장 모임도, 성경 공부도 없었다. 처치홈스쿨 식구들을 비롯해서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두 가정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 K가 알려준 새로 생긴 카페로 갔다. 보통 카페는 아니었고 아주 넓은 정원이 있는 한옥 카페였다. 자녀만 열 두 명인 대규모 모임이었지만, 카페가 워낙 넓었다. 정원에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무리의 자녀들이 막 뛰어 노는 게 부담스럽거나 미안하지 않았다. 날도 좋았다. 꽤 한참 있었다. 어른들은 두 곳에 나뉘어 앉았다. 한 무리는 실내에, 나머지 무리는 바깥에.


근처에 산책할 만한 성곽길이 있어서 잠깐 걸었다. 관리가 썩 잘 되는 곳은 아니었지만 날이 너무 좋고 지대가 높아서 산책할 맛이 나는 곳이었다. 시간이 좀 늦어서 많이 걷지는 않았고 한 30분 정도 걸었다. 다 함께 저녁까지 먹을까 하다가, 어른과 아이를 합쳐 스물 세 명이라는 규모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저녁은 가정별로 알아서 해결하기로 했다. 단체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우리는 K네 식구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근처에 있는 작은 쇼핑몰에 가서 장을 보고,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었다. 그저께 쯤 갑자기 라면 욕구가 충만해졌던 나는 라면을 시켰고 다른 어른들은 순두부찌개, 제육볶음 같은 걸 시켰다. 라면이 제일 맛있었다. 순두부찌개에서도 라면 맛이 났다.


밥을 먹은 자녀들은 바로 옆에 있는, TV와 게임기가 있는 놀이 공간에 갔다. K의 막내를 제외하고는 다 갔다. 바로 옆이었고, 첫째 자녀들도 있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른들도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라 바로 갈 수 있었고. K와 아내는 잠깐 고기를 사러 갔고, 나와 K의 아내가 자녀들이 있는 곳 앞에 서서 기다렸다. K의 아내는 휴대폰을 보고, 난 주변을 서성이며 구경인 듯 구경 아닌 구경을 하고 있는데 방송이 들렸다.


“다섯 살로 보이는 민트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보호자께서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아마 처음에는 안 들렸을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집중하게 됐다. 사람이 워낙 없는, 한산한 쇼핑몰이라서 ‘누가 아이를 잠깐 잃어버렸나 보네. 금방 찾겠지 뭐’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서윤이가 오늘 무슨 색 원피스를 입었더라? 민트색 비슷한 거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못 느끼고 지나서 생각해 보니) 희미하게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어떤 긴 호흡의 생각이나 추론의 과정이 아니고, 뇌리를 스치듯 혹은 본능적으로 자녀들의 신발을 확인했다. 서윤이의 신발이 없었다. 안에 들어가서 보니 서윤이도 없었다. 그때 방송이 한층 더 선명하게 들렸다. 주변을 살펴 보니 방송하는 곳이 보였다. 그리로 막 뛰어가는데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가까워질수록 서윤이의 울음소리라는 확신도 커졌다. 아니,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서윤이는 신발 파는 매장의 매대 사이에 서서 펑펑 울고 있었다. 서윤이가 엄청 화가 나거나 떼를 쓸 때 보여주는 최대치의 악다구니를 쓰며 울고 있었다. 바로 가서 서윤이를 안았고, 서윤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혼자 서성이는 서윤이를 직원분들이 발견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보호 장소로 데리고 가려고도 해 봤는데 아마 요지부동이었던 것 같다.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간다. 그러다 더 많은 사람이 둘러싸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고 그때부터는 엄청 울어젖힌 거다.


“아니, 애가 어쩜 그렇게 똑똑해요. 사탕 준다고 가자고 그래도 안 가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소윤이 때는 엄청 교육을 시켰다. 혹시 길을 잃어버리거나 모르는 사람이 유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윤이는 한 번도 말을 해 준 적이 없다. 매주 보는 교회의 성도님들에게도 낯을 가리는 특유의 성격이 도움이 된 건가. 아무튼 아찔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 정말 한 순간이라는 걸 실감했다.


나도 모르게 소윤이와 시윤이를 책망하려는 마음이 올라왔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항상’ 동생을 돌봐야 하는 책임이 있고, 아까도 서윤이 잘 챙기라는 의례적인 이야기도 하긴 했었다. 사실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책임을 따지자면 부모인 나에게 있는 것이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잘못이 없다. 뭐 보험사에서 교통사고 과실을 매기듯 파고들면 아예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소윤아, 시윤아. 이건 아빠가 무조건 잘못한 거야. 아빠가 서윤이를 더 신경 써서 챙겨야 했는데 안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아빠도 이렇게 실수하니까 소윤이랑 시윤이가 도와줘야 돼. 엄마나 아빠도 언제든 실수를 하기 때문에 너네가 엄마, 아빠 대신 서윤이 잘 봐 주고 그래야 된단 말이야. 알았지? 아까도 영상 보는 데 정신 팔려서 서윤이 없는지도 몰랐잖아”

“아빠한테 있는 줄 알았어여”

“그래, 맞아. 아빠도 너네랑 있는 줄 알았어. 이건 아빠가 잘못한 거지.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 써 줘”


어릴 때 성탄절만 되면 보던 ‘나 홀로 집에’의 도입부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서윤이만 두 번째다. 아주 잠깐이나마 행방을 잃었던 게. 셋째라 그런가 방심이 빈번하다.


꽤 늦은 시간이었다. 다른 날이었으면 집에 가서 씻고 자기에도 이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자녀들은 멈춤이 없었다. 또 어디를 가자고 했다. 커피를 사서 몇 번 갔었던, 자녀들은 짚라인을 타며 놀고 어른들은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자녀들을 돌보기도 했던 놀이터에 가자고 했다. 엄청 피곤하기는 했는데, 자녀들의 순수한 요청이 너무 강력하기도 했고 어른들도 어찌 보면 자녀들과 비슷한 심정이기도 했다.


“얘들아. 너네는 그렇게 같이 놀고도 또 아쉬워?”

“네. 제발 가자여. 제발여”

“하긴. 어른들도 비슷하지 뭐”


결국 갔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사서 놀이터로 갔다. 자녀들은 아빠들(나와 K)에게 ‘아빠 피하기 놀이’를 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그것까지 호응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자녀들은 자기들끼리 잘 논다. 도대체 ‘지침’이라고는 없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잘 논다. 생각보다 한참 놀고 돌아왔다. 서윤이는 출발하기 직전에 똥을 싸서 그걸 처리했다.


“와, 여보. 놀이공원에 다녀온 것 같아. 엄청 즐겁긴 했는데 진짜 피곤하네”

“맞아. 나도 그러네”


엄청나게 묵직한 피로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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